경총 "집단소송법 제정안, 국내 투자환경 악화시킬 것"

"미국도 남소 억제 집중하는데, 확대 도입해 과잉소송 우려"

디지털경제입력 :2020/11/08 12:53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모두 활용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산업 및 경제규모 차이뿐만 아니라 법체계와 법문화도 근본적으로 달라, 미국식 법제 차용은 우리 소송법체계와 소송실무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확대 도입을 위해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2건에 대한 의견을 6일 법무부(상사법무과)에 제출했다고 8일 밝혔다. 

경총은 정부의 2개 법(안) 동시 입법 추진이 “어느 때보다 저성장·디지털 기술 진전에 맞춰 기업들이 전략적인 경영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서 오히려 도전적인 혁신기술과 신상품 및 서비스 개발을 주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집단소송법 제정안, 브랜드 타격과 무리한 기획소송 등 초래"

집단소송법은 피해자 50인 이상인 모든 손해배상 청구를 집단소송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상법 개정은 모든 상거래에서 상인의 위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의 5배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집단적 피해의 효율적인 구제 도모를 입법취지로 하나, 경총은 다음의 사유로 동 제정에 반대했다.

(자료=경총)

우선 경총은 "제정과 함께 입법예고된 상법 개정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의 소(訴)가 집단소송으로 제기될 경우에 해당 기업은 소 제기가 알려지면 브랜드와 주가폭락, 신용경색, 매출저하로 이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로 경영상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송대응력이 취약한 중소·벤처·영세 기업들은 막대한 소송비용 등 금전적 부담으로 인해 생존 위협을 더 크게 받고,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경총은 "법조 브로커, 직업적인 소송원고 등장, 변호사업계의 과당경쟁적 소송,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는 외국의 집단소송 전문로펌까지 가세해 무리한 기획소송이 남발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정이 원고와 원고측 소송대리인에 대한 자격요건도 없애고, 피고측 소송대리인이 없더라도 소송이 진행될 수 있어 직업적인 원고와 사건 수임에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 등에 의한 소송 제기를 부추기는 요인을 제공할 수 있어서다. ‘소송 전 증거개시절차’를 악용해 구체적 소송 근거를 확보ㆍ축적하는 ‘투망식 소송’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 

다음으로 소송 전 증거조사, 자료 등 제출명령, 주장 및 입증책임 완화, 국민참여 재판(배심원) 등으로 인해 기업의 영업비밀 등 핵심 정보의 유출 가능성도 크며, 기업의 신기술, 신제품 및 서비스 개발은 물론 국가 차원의 신산업 촉진에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자료=경총)

아울러 "미국도 집단소송 남소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들을 보완하고 있다"며 "반면정부 제정은 소송허가에 대한 불복 제한과 함께 남소를 유인하는 원고의 주장ㆍ입증책임 대폭 완화 등을 규정함으로써 미국보다 기업의 법적 리스크가 훨씬 더 증가된다"고 주장했다. 

경총에 따르면, 미국에서 1995년부터 2014년 초까지 제기된 집단소송은 4천226건으로 40% 이상의 상장기업이 집단소송을 경험했다. 이 중 합의된 소송 건수는 1천456건, 총 합의금 규모는 680억달러였지만, 집단소송 소식이 알려진 후 주가가 누적 기준 4.4%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총 2천620억달러의 주주 가치가 손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끝으로 경총은 "정부 제정처럼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그대로 법률로 수용한 사례는 영미법계 국가에서도 드물다"며 "대륙법계 체계에 기반한 우리나라도 유럽이나 일본처럼 미국식이 아니라 공동소송, 제한적인 단체소송제 등 현행제도들을 보완ㆍ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현행 소비자기본법상 분쟁조정제도, 행정기관들의 각종 분쟁해결 지원 및 개입 절차, 기업의 소비자불만해결시스템 등을 통한 기존 피해구제방식이 제정(안)의 집단소송보다 기간이나 절차 측면에서 신속하고 용이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료=경총)

■ "상법 일부개정법률, 부당 소송 남발과 법체계적 안전성에 혼란 초래"

경총은 상법 일부개정법률이 영리활동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통한 수익추구 유인을 억제할 필요성과 산재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운용의 통일성 확보와 실효성 제고를 입법취지로 하나, 다음의 사유로 반대했다.

경총은 "B2C(기업과 소비자간), B2B(기업과 기업간)로 거래된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서 악의적 의도를 가진 소비자나 업체가 소송 제기를 빌미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소송이 남발되고 악용될 가능성이 현재처럼 특정 분야별 개별 법률에 의한 방식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선진국보다 반(反)기업정서가 훨씬 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소 제기 대상이 확대되고, 소송 요건이 완화될수록 소송이 남발되면서 국내 기업의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할 것"이라며 "오랜 기간 쌓아온 글로벌 경쟁력마저 일시에 훼손될 수 있어 기업은 방어적 경영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기업 일수록 소송리스크가 훨씬 더 크고, 전국 사업체 약 410만개 중 99.5%인 종업원 99인 이하 중소ㆍ영세 사업체일수록 상대적으로 법률리스크 대처에 매우 취약해 소송 가능성이 시장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폐업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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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구분하는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의 법체계적 안정성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발생한 피해의 실손해를 배상하는 민사책임(전보적 배상)법체계에 영미법계 국가에서 판례 등으로 인정하는 형사처벌적 성격의 금전적 배상책임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대륙법계인 우리나라 민ㆍ형사법 체계상 혼란과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것. 

경총은 “팬데믹 장기화로 인한 국내외 경제 및 기업 여건들을 고려해 2개 법(안)의 동시 입법 추진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집단적인 피해구제제도에 관한 입법례를 심도 있게 검증ㆍ연구하고 변화 추세를 봐야 한다"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확대 도입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