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벌이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소송의 첫 판결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양사의 법적 공방은 지난 해 4월부터 1년 반째 이어져왔다. 핵심은 SK가 LG로부터 인력·기술 빼가기 등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 소송 진행 과정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문제는 양측의 입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현재까지 줄곧 평행선을 달린다는 점이다. 양사 모두 이미 미국 내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거나 또 앞으로 예정 중인 만큼, 이번 소송의 승패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현지시간으로 26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영업비밀 침해소송 최종 판결을 내린다. 당초 이달 5일 예정이었던 판결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3주가량 연기됐다. 국내 시간으로는 27일 오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시차를 고려하면 판결까지 닷새 가량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ITC 판결 경우의 수...●LG화학 승소 ●추가 행정명령 없이 종결 ●추가 조사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최종 판결 시나리오는 ▲LG화학 승소(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 유지) ▲추가 행정명령 없이 종결 ▲추가 조사로 인한 판결 연기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가장 확률이 높은 건 ITC가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내린 조기패소 예비결정을 그대로 확정할 가능성이다. 즉, LG의 승소다. ITC는 이미 예비결정에서 'SK가 악의적이고 광범위한 증거 훼손과 포렌식(과학적 증거물 분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 모독 행위를 했다'는 LG화학의 주장을 인정했다. 최종판결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오면, LG배터리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에 자사 배터리 셀·모듈·팩의 미국 내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이같은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건, 앞서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ITC의 예비결정이 뒤집혔던 전례가 없어서다. 미국 행정부가 수입금지 조치가 공익에 반한다고 판단할 경우 60일 내로 거부권(Veto·비토)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공익과 영업비밀 침해의 경중을 따지기가 어려워 가능성이 낮다. SK이노베이션은 즉시 항소를 제기할 것으로 관측되나, 조지아 공장 등 현지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합의를 위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ITC가 예비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면서도 수입금지 조치 등 추가 행정명령 없이 소송을 종결할 가능성이다. 이 경우는 ITC가 예비결정 이후 진행한 재검토 과정에서 '영업비밀 침해'와 '증거인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 배터리 1·2공장 건설 등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다는 점을 고려, 예비결정에선 검토하지 않은 '공익성'이 최종판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현지 주정부도 SK이노베이션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공로가 크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바 있다.
마지막은 추가 조사 가능성이다. 이 경우는 두 가지 전망으로 다시 나뉜다. ITC가 예비결정에 수정 지시를 내려 소송을 전면 재조사할 가능성과, 예비결정을 인정하는 한편 수입금지 조치가 합당할지 여부를 토론해 조사할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예비결정을 내린 행정판사가 재조사에 들어가 소송 자체가 원점으로 회귀하거나, 승·패소는 확정했지만 수입금지 논의는 그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LG화학도 항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화학-SK이노, 마지막 극적 합의점 찾을까
다만, 업계는 양사가 결국엔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가 집중하는 전기차 시장은 '제2의 반도체'라 불릴 정도로 미래 먹거리인 동시에, 열매를 맺기까지 수 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G는 올해 처음으로 배터리 사업에서 흑자를 맛봤고 삼성과 SK 사업도 흑자 전환이 머지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도 "투자금을 고려한 손익분기점은 아직 멀리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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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는 현재도 합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사장)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0'에서 LG화학과의 협상을 통해 소송전 장기화를 막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그는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대화를 지속하려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LG화학도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수반되면 합의의 문은 열려 있다"고 여러차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으론, 이번 소송을 기점으로 배터리 업계에서 '영업비밀 침해', '기술 유출' 등 공방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비교해 국내는 영업비밀 침해 등의 손해배상소송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주요 수출품인 메모리반도체와 비교하면 생산설비 구축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비밀·기술 특허와 같은 무형의 재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