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14일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인해 앞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전문인력 보호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산업연구원은 "중국이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발표하자 미국은 중국 기업의 해외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과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 등에 제동을 걸어왔다. 최근 미국이 화웨이를 타깃으로 강력한 추가제재에 나서면서 이제 중국은 반도체 자체 생산을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중국은 전문인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측,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물론 중국 기업의 국내 '전문인력 빼까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일례로 삼성전자 고위 임원이 2016년부터 총 3회에 걸쳐 반도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47개 자료를 유출했다가 기소된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중국 반도체 기업 에스윈이 장원기 전(前) 삼성전자 사장을 부회장으로 영입, 장원기 전 사장이 논란이 일자 스스로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문제는 중국 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파이낸셜타임스(중국 데이터 조사업체 치차차 자료 인용)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국에서 반도체 업종으로 사업등록을 마친 기업수는 1만3천개 이상으로, 올해 월 평균 등록업체 수가 작년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신규 등록업체 대부분은 반도체 사업 경험이 없어 국내 전문인력 빼가기가 이전보다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아가 정부가 2030년 인공지능 반도체 선도국가 도약을 목표로 내건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2020년 10월 12일 발표)' 역시 전문인력 유출을 위한 대비책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AI 반도체 발전전략을 내놓았지만, 아직 한국의 AI 반도체 기술력은 해외 선진국가(미국)와 비교해 경쟁열위에 있고, AI 반도체를 핵심국가기술로 지정할 만한 기술력도 없다"며 "전문인력 보호가 아닌 전문인력 자체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전문인력 유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으로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업체 BOE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BOE는 지난 2002년 현대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의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하고, 10.5세대 초대형 생산라인을 앞세워 글로벌 LCD 시장에서 한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빼앗은 이력이 있다. 지난 5월에는 한국에 '65인치 대형 OLED 패널 10년 이상 경력자를 구한다'는 채용공고를 내기도 하는 등 OLED 시장에서도 한국을 추월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삼성디스플레이의 '퀀텀닷'에 대한 사업재편 요청을 승인했지만, 수요공급 기업 간 이견으로 시장진입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위기감을 더한다. 이는 BOE가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학술대회인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에서 관련 기술을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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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가 주도하는 '폴더블 디스플레이' 기술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BOE는 이미 화웨이에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납품한 전례가 있고, 중국 2위 디스플레이 업체인 CSOT도 관련 기술확보를 위해 국내 기업들과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나아가 CSOT의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최고기술책임자는 김우식 전 LG필립스(현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이 맡고 있다.
중국 소식에 정통한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BOE, CSOT 등의 주요 기업들을 국내 대기업과 경쟁가능한 종합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노선을 정하고, 자국 디스플레이 사업 구조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OLED는 물론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준비하는 차세대 자발광 디스플레이(QD-OLED, QNED, 마이크로 LED 등) 기술이나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는 신시장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생태계 조성에 나서는 등 상황이 가볍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