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6년 개정안만 30개...어디로 갈까

[이슈진단+] 전면적 개편이나 사업법 통합 필요

방송/통신입력 :2020/09/28 16:30    수정: 2020/09/29 10:12

김태진, 박수형, 선민규 기자

2014년 10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된 지 만 6년이 됐지만 여전히 존폐 논란이 뜨겁다. 법 시행 당시부터 갈등을 빚어온 소비자, 이동통신사, 제조사, 유통업계 그리고 정부와 국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현재까지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여전히 통신비 인하를 체감할 수 없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유통점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20대 국회에서 총 26건의 법안이 발의됐고(1건만 통과되고 25건은 자동폐기), 21대 국회에서도 이용자보호와 차별방지를 위해 분리공시 도입 등을 담은 4건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향후 단통법이 어떻게 변화돼야 하는지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을 살펴봤다.

단통법은 법 명칭 그대로 단말의 유통구조를 개선해 이동통신사들의 이전투구식 마케팅 경쟁을 방지하고, 여기에 쓰일 재원을 소비자들에게 공평하게 쓰일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특히,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 시 지원되는 공시지원금과 요금할인액을 더해 마치 ‘공짜폰’인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마케팅 허위광고를 막고, 저가 요금제 가입자에게도 공평하게 지원금을 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도 이동통신시장의 불법 보조금은 여전하고 ‘싸게 사면 불법’인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단통법 도입 초기 ‘전 국민 호갱 만드는 법’까지는 아니어도 시장을 효과적으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또 번호이동 위주의 통신시장이 기기변경 시장으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대리점‧판매점은 존폐 기로에 섰고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특수채널만 판을 치고 있다. 단통법은 소비자도 유통업계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계륵이 됐다.

■ 경쟁 사라진 시장…“공시 유지 기간 단축 등 마케팅 규제 완화 필요”

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 3사의 마케팅 경쟁은 둔화됐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이동통신업계 마케팅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10%를 넘었지만,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업계의 마케팅 비용의 연평균 증가율은 감소 또는 보합 양상이다.

경쟁사 가입자를 유치하는 번호이동과 기존 가입자를 지키는 기기변경의 가입 유형에 차별을 두지 못하게 한 점이 마케팅 경쟁 둔화의 동인이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번호이동이 신규가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기기변경 가입자가 번호이동 가입자 수를 크게 앞서고 있다. 올해 상반기 통계를 보면 번호이동 가입은 약 276만건, 기기변경 가입건수는 452만건 가량이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마케팅 경쟁을 하지 않아도 가입자 수는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이 된 셈이다. 최근에는 5G 상용화로 설비투자가 늘어난 것이 마케팅 경쟁 둔화에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5G 요금제에 단말 구입비만 증가한 셈이 됐다.

올 상반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운용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 협의회가 이통사 간 마케팅 경쟁 활성화를 법 제도 개선 과제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통사 간 마케팅 경쟁이 활성화돼야 이용자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염수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경쟁 촉진을 위해 가입 유형 간 합리적인 차등을 허용하고 추가 지원금의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며 “공시 유지 의무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으로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남승용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은 “서비스 경쟁이나 품질 경쟁으로 이용자 효용 가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판단이 된다면 마케팅 규제 완화를 통한 이용자 이익을 찾아내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불법 보조금 주는 특수채널…합법 판매하면 폰팔이 오명

단통법은 국내 이동통신 산업의 부흥을 함께했던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점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큰 변화는 유통점 간 차별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이통 3사는 단통법 시행 이후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일부 ‘특수 채널’을 중심으로 고액의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가입자를 모았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오프라인 대리점이 영업 일선에서 이탈하면서 중소 판매점의 폐업 속도는 빨라졌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통3사가 주도하는 특수 채널은 단통법 시행 이후 3배 가량 늘었다. 이와 비례해 중소 유통점이 폐업하는 비중도 증가했다. 단통법 이전 4만 여개에 달했던 단말기 유통점 수는 지난해 2만5천여개로 줄었다. 현재 3개월 내 단말기를 1대 이상 판매한 유통점은 1만5천여개에 불과하다.

유통업계는 단통법 이후 단말기판매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됐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과거에는 일부 판매점만을 대상으로 붙여졌던 ‘폰팔이’란 오명이 단통법 이후에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판매점들로 확산됐다는 뜻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통법 이후 정상적으로 법을 지키며 영업하는 판매점까지 폰팔이로 매도됐고, 젊은이들이 유입을 꺼리는 시장이 됐다”며 “이통사의 특수 채널 운영에 따른 판매 부진에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지면서 중소 유통점은 버틸 수 없는 구조가 됐다”고 토로했다.

■ 호갱 줄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단통법은 이용자의 ‘정보 격차’를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과거 깜깜이 식으로 운영되던 보조금이 ‘공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는 휴대전화를 비싸게 구입하는 소비자와 저렴하게 구입하는 소비자 사이 금액 격차를 줄어들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공시지원금이 보조금 경쟁의 하한선 역할을 한 까닭이다. 덕분에 이용자는 남들보다 유독 비싸게 휴대폰을 구입하는 ‘호갱’이 줄었다.

그러나 호갱은 줄어들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단통법 이후에도 공시지원금을 웃도는 불법 보조금은 여전하다. 불법 보조금을 향한 과정은 온라인을 통해 한층 은밀해졌다.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업체를 찾기 위해 이름·직장 등 개인정보를 인증하고 SNS에 가입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 역시 단통법 이후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구매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단통법의 최대 성과는 지원금이 아닌 매월 납부하는 요금에서 일정 금액을 할인받는 ‘선택약정할인’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단통법 이전에는 모두가 보조금을 받고 단말기를 구매했다. 보조금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다. 반면, 선택약정할인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조금이냐 요금할인이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할인율이 25%까지 커진 선택약정할인으로 소비자 편익이 높아진 것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 팀장은 “단통법이 도입된 이후 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불법보조금의 편차가 줄어든 점은 이용자 입장에서 긍정적”이라며 “반면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 단통법, 전면적 개편이나 사업법 통합 필요

21대 국회에는 총 4건의 단통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4건 모두 현행 공시지원금의 출처가 이동통신사인지 제조사인지 알 수 없도록 돼 있어 약정 해지 시 과다한 위약금을 부과 받을 수 있어 이를 분리해 공시하자는 내용이다.

불투명한 공시제도로 인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약받고 있고, 제조사의 장려금을 공시할 경우 향후 출고가 인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까지 발의된 단통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나온 완전자급제처럼 전면적 개정이나 폐지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일부 개정을 통해 보완하자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통사들도 일부 개선에 찬성하고 있다. 6년 동안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켜온 측면이 있는 만큼 대대적 손질보다 일부 보완을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면적 개정 등을 할 경우 다시 과도한 마케팅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의 불만이 부각돼 있는 면이 크지만 지원금 공시로 보다 투명한 마케팅과 약정요금할인에 따른 이익도 크기 때문에 전면적인 개정보다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원금과 장려금 차등 규제 도입 논의가 오가고 있는데 통신사간 마케팅 경쟁만 심화되면서 이용자 차별이 다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단말기 제조사는 분리공시 도입 분위기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에서도 단말기 공급 영업을 하는데 국내에서 기업 간 거래 내용이 공개되면 수출 판매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다. 법 시행 이전과 똑같이 분리공시 도입 반대 입장이 굳건하다.

반면, 일각에서는 단통법 제정 당시 한시법으로 마련됐고 불법행위에 대한 규제 목적, 공정경쟁 시스템 구축, 소비자 편익 증진 등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한 만큼 전면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개정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전기통신사업법에 통합하는 식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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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단통법으로 시장을 규율하는데 한계를 나타냈고 이를 통한 경쟁촉진도 쉽지 않다”며 “단통법을 존치시킨다고 미비한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통법이 소비자 편익을 증진시키고 공정경제 체제를 구축한다는 목적이 있었는데 부합했느냐를 보면 아니다”라면서 “입법의 책임이 있는 국회와 정부가 이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목적을 재설정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태진, 박수형, 선민규 기자tjk@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