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윈도95 탄생 25돌…"라떼는 말이야"

PC시대의 영광과 상처

데스크 칼럼입력 :2020/08/25 10:26    수정: 2020/10/05 13:3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마이크로소프트(MS)가 24일(현지시간) 흥미로운 영상을 하나 공개했습니다. 38초 짜리 짧은 영상입니다.

영상 맨 앞부분에 ‘start’ 버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디자인이 아주 고풍스럽습니다. 요즘은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카드 게임과 지뢰찾기 게임도 눈에 띕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요즘 게임과는 많이 다른 게임이지요. 하지만 40대 이상에겐 추억을 자극하는 게임입니다.

이쯤 얘기하면 짐작했을 겁니다. 8월24일은 윈도95 탄생 25돌입니다. MS가 공개한 영상은 윈도95의 25번째 생일 축하 선물입니다.

도스 시대 종언 고했던 명품

요즘 기준으론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윈도95 탄생 축하라니? 하지만 그 무렵엔 윈도 새 버전 공개 전후로 엄청난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요즘 아이폰이나 갤럭시 새 모델에 대한 관심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윈도가 더 많은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릅니다.

PC 시대를 지배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도 윈도95는 각별한 존재였습니다. 몇 가지 혁신적 기능들이 포함된 때문입니다.

윈도95는 운영체제(OS)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도스(DOS)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긴 했지만 윈도95는 이전 버전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이 처음 도입됐구요, 멀티태스킹도 가능해졌습니다. 당시 PC 사용자들은 저절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해주던 윈도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윈도95 출시 행사 당시 'start me up' 노래에 먖춰 춤을 추던 빌 게이츠(오른쪽)와 스티브 발머.

윈도95가 특히 달라진 부분은 직관적인 이용자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이전 모델까지 사용됐던 '프로그램 관리자'를 시작 메뉴, 작업줄 같은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바꿨습니다. 한 마디로 ‘시작 버튼의 원조’인 셈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마우스 오른쪽 버튼 기능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도 윈도95였습니다. 도스 때부터 한계로 여겨져 왔던 ‘이름 8자 + 확장자 3자’란 파일 이름 한계도 깼습니다. 긴 파일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다고 윈도95에 영광스러운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격동기에 태어난 때문에 ‘사악한 짓’에 동참했던 아픈 상처도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 공세에 맞섰던 운영체제…끼워팔기 아픈 상처도 

윈도95가 탄생했던 1995년은 IT 역사에서 엄청난 변혁기였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PC에서 인터넷으로 막 넘어가던 무렵이었습니다.

‘PC 황제’ MS에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징적 존재가 윈도95 발표 직전 기업공개(IPO)를 단행한 넷스케이프였습니다. 실리콘밸리 첫 IPO 대박 사례로 꼽히는 넷스케이프는 MS를 위협하는 ‘앙팡 테리블’이었습니다.

결국 MS는 윈도95를 내놓으면서 역사에 기록될 ‘반독점적 행위’를 합니다. 익스플로러 끼워팔기를 한 겁니다.

1995년 등장했던 넷스케이프. 한 때 MS를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였다.

MS는 처음엔 '플러스 포 윈도95'에 익스플로러를 넣어서 배포했습니다. 이후 MS는 OEM PC업체들에게 윈도를 공급하면서 아예 익스플로러를 기본 탑재해서 제공했습니다. 반면 넷스케이프를 쓰려면 일삼아 내려받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 전개된 얘기는 잘 아실 겁니다. 미국 법무부가 1998년에 MS를 제소합니다. 그 유명한 브라우저 전쟁입니다.

소송에선 MS 분할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운영체제와 상용 소프트웨어를 나눠야 한다는 판결이었지요. 하지만 창업자였던 빌 게이츠가 200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윈도95는 그 모든 소란에서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아픔을 갖고 있긴 하지만 윈도95는 MS 역사에선 각별한 작품입니다. 윈도95 홍보 문구대로 배우고, 탐구하고, 즐기고, 연결하고, 조직하는 모든 활동의 시작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윈도95는 3년 뒤 윈도98이 등장하면서 무대의 중심에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윈도95는 명실상부한 GUI 기반 운영체제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 만들어졌던 ‘시작 버튼’은 우여곡절 끝에 윈도10에서 새롭게 부활했습니다.

한 때 벼랑 끝 내몰렸던 MS, 클라우드 퍼스트로 화려하게 부활  

윈도95를 출시하던 25년 전 MS는 천하제일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MS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친구인 빌 게이츠로부터 MS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스티브 발머는 팀 쿡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MS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하게 약화된 건 스티브 발머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장의 문법이 또 다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넷스케이프의 공격’은 윈도를 앞세워 막어낼 수 있었지만, 아이폰의 공격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넷프케이프와의 전쟁은 PC 내에서 벌어졌지만, 아이폰과의 싸움은 아예 무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2014년 발머의 뒤를 이은 사티나 나델라 CEO가 취임 직후 “우리 산업은 전통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혁신만 존중할 따름입니다”란 이메일을 보낸 건 당시 MS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전 5년 전 윈도95 탄생 20주년 때도 추억하는 글을 쓴 적 있습니다. 당시 전 이렇게 썼습니다.

‘PC 시대 최강’으로 한 때 ‘악의 축’으로까지 불렸던 MS. 그리고 그 기반이 됐던 윈도95. 애증이 대상이던 윈도95는 쇠락한 후손들 때문에 쓸쓸한 기념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5년 사이에 또 다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MS는 ‘클라우드 퍼스트’ 구호와 함께 멋지게 부활했습니다. 25년 전처럼 ‘원톱’은 아니지만, 애플, 아마존 등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시가총액도 1조6천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더 고무적인 건 지금은 ‘대외적인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 달 열린 미국 하원의 반독점 청문회 땐 IT 빅5 중에선 유일하게 소환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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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에선 거대 IT기업들의 ‘반독점 행위’가 뜨거운 이슈입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은 매서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상 MS만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입니다. 최근의 부활이 더 높이 평가되는 건 이런 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윈도95를 기념하는 소박한 영상 속에서 MS의 또 다른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