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핵심SW' 국산 기피 여전…"발주자 딜레마 풀어줘야"

공공기관 ERP 국산화 비율 겨우 2%

컴퓨팅입력 :2020/08/10 09:53    수정: 2020/08/11 08:59

임유경, 김민선 기자

"공공기관이 혁신성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문재인 대통령, 2018년 8월 공공기관 워크숍 모두발언 中)

"기업이 도전적 시행착오를 축적할 수 있게 정부가 혁신 지향적 공공구매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 2019년 5월 산업경쟁력포럼 기조발표 中)

120조원 규모에 이르는 공공조달 시장이 국내 중소중견 기업 혁신 제품의 수요처가 돼 줘야 한다는 게 정부 공공조달 정책의 큰 줄기다.

하지만 국내 중소·중견 소프트웨어(SW) 기업들에게 공공은 여전히 진입장벽 높은 시장이다. 국산 SW 품질에 대한 발주기관의 의구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DBMS, WAS, ERP 등 그동안 글로벌 기업이 압도적인 강세를 보여온 '핵심 SW'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중요한 시스템인데 다른 공공 기관에서 사용하는 사례가 없어 불안하다"는 게 이들 기업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반응이다.

민간에서 혁신 성장이 일어날 수 있게 공공이 수요처가 돼 줘야 한다는 정부 기조와 실제  SW 발주 기관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발주기관을 탓하기도 어렵다. 아직 검증이 필요한 국산SW를 선택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발주기관이 다 감당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발주기관 입장에선 이미 많이 쓰이는 외산 SW를 도입하는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산 SW 도입에 따른 리스크를 덜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국산 SW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발주자 딜레마를 풀어 줄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2019년 패키지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

DBMS 12%, ERP 0%…공공기관, 핵심SW 국산 도입율 처참한 수준

국내 패키지 SW 시장에서 공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IDC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조8천200억원 규모 국내 패키지SW 시장에서 공공이 차지한 비중은 13.6% (6천557억원)로 나타났다.

국내 SW 기업들이 공공 시장을 레퍼런스 확보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수요처로 보고 적극 공략하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 SW 기업에게 공공 시장 진입이 녹록지 만은 않다. 특히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이 절대적 강세를 보여온 핵심 SW 분야에서 국내 SW 기업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프트웨어 유형별 국산화 현황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9년 공공부문 정보자원 현황통계'를 보면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전체 SW 중 국산 SW는 절반이 안 됐고, 특히 핵심 SW인 DBMS와 WEB·WAS의 국산화 수준은 각각 12%, 36%로 크게 떨어졌다.

ERP의 경우 지난해까지 매출 1천억원 이상 공기업 35 곳 중 국산 제품을 쓰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올해 한국동서발전이 더존비즈온의 엔터프라이즈급(대기업용) ERP 도입을 결정하면서, 국산화 비율이 0%에서 2%로 올랐을 뿐이다.

다른 산업군의 중소·중견 기업들이 보통 공공 수요를 바탕으로 기초 체력을 키워 나가는 것과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중요한 시스템인데 국산은 좀"…막연한 우려로 배제된 국산 SW

공공기관은 "검증이 덜 됐다"는 이유로 국산SW 도입을 꺼린다. 시스템을 잘 구축해 감사 받을 때 문제 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검증되지 않은 국산SW를 선택했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한다.

한 SW 업계 관계자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다 외산을 사용하고 있고 민간에서 국산을 쓰는 곳은 대부분 작은 곳이다 보니 국산SW를 도입했을 때 잘 작동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 국산은 검토 대상에서 처음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게 국내 SW 기업들이 가장 답답함을 호소하는 부분이다.

더존비즈온 ERP를 도입한 정부 기관 현황(사진=더존비즈온 홈페이지 캡처)

또 다른 SW 업계 관계자는 "국내 SW 기업들이 상당기간 연구개발에 투자해 글로벌 기업 제품 수준으로 품질을 끌어 올렸지만 '국산SW는 덜 중요하고 이용자가 적은 경우에만 쓴다'는 선입견에 발목이 잡혀 있다"며 "검토 대상에 포함돼 제품을 소개할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국내 SW 기업이 한 단계 성장하려면 공공기관이나 민간 대기업 중 하나라도 판로가 열려야 하는데, 지금은 양쪽에서 모두 레퍼런스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배제되는 상황이다.

"발주 기관 딜레마 풀어야 국산SW 기피현상 사라진다"

공공 조달의 목표가 '정부혁신'뿐 아니라 '산업육성'에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공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공공기관이 국산 SW를 꺼리게 만드는 '위험부담'이 여전하다는 데 있다. 다른 기관에서 쓰고 있지 않은 국산 SW를 도입했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발주 기관이 떠안게 된다. 검증 안된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가 무엇인지, 시스템 도입에 비리가 있던 것은 아닌지 감사에 걸리는 상황이 최악이다. 외산 SW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기관이 쓰고 있는 제품이니 적어도 이런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에 실질적으로 국산SW 도입 시 우려되는 위험부담 문제를 풀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산SW 도입을 꺼려 하는 가장 큰 이유가 '프로젝트 실패'에 대한 우려인 만큼 그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인공지능·빅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는 "외산SW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지나가는데 국산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묻는 상황이 생긴다"면서 "결국 책임 이슈를 피할 수 있어야 혁신적인 기술을 자유롭게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 위험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국산SW 도입 지원센터 같은 실질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업계 의견도 있다.

한 SW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국산 SW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에 이후 모든 책임을 다 지게하는 구조"라며 "국산 SW 기업의 판로도 열어주고 공공기관들의 부담도 덜어주려면 국산 SW를 문제 없이 쓸 수 있게 돕는 기술 지원센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학교나 연구기관이 지원센터 역할을 맡아 줄 수 있다"며 "공공기관 레퍼런스를 가지고 민간에 판매를 했을 때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지원센터에 지급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모든 구성원이 '윈윈(win-win)'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동서발전의 박일준 사장은 공공기업에 "위험 부담이 조금 있더라도 공공부분이니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관련기사

한국동서발전은 올해 국산 ERP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면서 시스템 구축에 제반되는 DBMS, 웹서버, 데이터연계솔루션 등 5종의 SW 모두 국산 제품을 채택했다. ERP는 더존비즈온, DBMS는 알티베이스의 HDB, 웹서버와 애플리케이션서버는 티맥스소프트의 웹투비와 제우스, 데이터연계 솔루션은 인젠트의 이크로스비지가 적용된다.

박 사장은 "품질 떨어지고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도입할 수 없겠지만 국산SW는 어떤지 한번 점검해 보는 것까지는 의욕적으로 해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동서발전도 국내 기업 여러 곳을 만나 세세하게 짚어보니 국산SW로도 할 만하다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