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발전은 왜 에너지 공기업 첫 국산 ERP에 도전했나

[인터뷰] 박일준 동서발전 사장

컴퓨팅입력 :2020/08/07 13:49    수정: 2020/08/10 09:05

동서발전은 1년전부터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국내 솔루션을 기반으로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공기업의 국산 ERP 도입은 매출 1천억원 이상 공기업 35곳 중 첫 사례다. 사실상 거의 모든 공기업이 글로벌 ERP 솔루션을 쓰는 상황. 전례없는 시도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동서발전의 박일준 사장을 만났다.

박일준 동서발전 사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2008년 구축된 ERP 시스템을 10년째 쓰고 있었고, 바꿀 시기였다"며 "시스템 노후화로 운영비용이 증가하고 있었고, 변화된 업무환경에 맞춰 사용자 편의성과 업무 효율성을 향상시킬 필요도 있었다"고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박일준 사장은 "외산 솔루션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가장 쉬운 선택이었겠지만, 국산 ERP 구축 방안과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국산 ERP 구축이 비용절감과 업무 효율 개선에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며 "사전에 국산 제품에 대한 사전 기능 검증을 시행해 국산 ERP 제품의 완성도와 국내업체의 개발역량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향상돼 시스템 품질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고 밝혔다.

박일준 동서발전 사장

동서발전은 더존비즈온의 솔루션을 토대로 사내 업무프로세스에 특화된 ERP시스템 '큐비스(KEWVIS)'를 구축중이다. 큐비스는 ‘한국동서발전(KEWP)의 비전(Vision)과 혁신(Innovation) 의지를 담은 시스템’이라는 뜻으로, 사내 직원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큐비스 서비스 개시 목표 시점은 내년 2월이다. ERP 솔루션뿐 아니라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DB), 웹, 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 데이터연계(EAI) 등 전 분야에 국내 SW를 적용했다. 더존비즈온 외에 티맥스소프트, 알티베이스, 인젠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공기업의 ERP 시스템 대부분은 10년 전 구축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기업의 ERP는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모든 곳이 SAP ERP를 택했다. 그동안 공기업 ERP 사업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국내 기업의 ERP는 선택되지 못했다.

박일준 사장은 "공공부문이 혁신제품의 초기 판로를 열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었고 국산 SW 품질과 업체 역량이 크게 향상됐다 판단했다"며 "공기업이 앞장서 SW제품의 공공 수요를 적극 발굴하고 국산화 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력과 품질이 우수하다면 동서발전이 앞장서 국산화 기술과 제품을 도입하고, 초기 판로를 제공해 디지털 기반의 일자리를 창출해보자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 쉽지 않은 결정, 꼼꼼한 사전 검증으로

내부적으로 만만치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다. 실무자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는 "발전 산업 자체가 조금이라도 문제있으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며 "또 실무자가 주로 전기분야 전문가다보니 IT분야에 대해선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정부에서 소프트웨어정책국장을 지내면서 국내 SW기업을 많이 만나봤고, 어느정도 지식도 있어서 동서발전이 앞서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동력이었다"며 "아직 결과나온 건 아니지만, 실제로 진행 해보니 회계 같이 중요한 기능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전 검토 과정을 면밀히 진행했다. 동서발전은 총 11명의 업무별 전문가로 구성된 TF를 구성하고 6개월간 국산 ERP솔루션의 기능검증에 나섰다. 그 결과 예산, 자재관리 등 일부 분야에서 ERP솔루션의 기능미비로 도입에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기능 추가․변경 등 보완개발 형태로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외부전문가 자문을 실시해 국산 ERP솔루션 도입 추진 시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를 사전 검토하고 제시된 보완의견을 사업계획에 반영했다.

그는 "국산 ERP솔루션 기능검증 수행 결과, 신규개발 물량 증가라는 위험요인이 사전에 도출돼 일반적인 3단계 감리인 분석, 설계, 종료 단계에 월간감리를 추가해 강화된 감리용역을 병행하며 지속적으로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며 "개발물량 증가에 따라 일부 공정이 지연되는 인사관리, 구매자재 등의 모둘은 인력 보강, 모니터링 강화 등 대책을 수립해 통합테스트 등 후속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해 당초 계획대로 내년 2월에 시스템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서발전은 향후 10년 동안 종전대비 1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동서발전의 종전 ERP 시스템은 2008년 107억4천만원의 구축비용과 지난 10년간 189억원의 유지보수비용을 사용했다. 이를 국산 시스템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9.6억원 이상 절감하는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기간 3년 간 169명의 개발인력 투입을 계획해 용역사업을 통한 간접고용 효과도 기대된다.

동서발전은 신규 ERP 구축을 위해 2018년 6월 고도화추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양한 ERP 패키지 사전 검증과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

작년 8월부터 18개월에 걸쳐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분석‧설계(6개월), 기능개발(7개월), 테스트(5개월) 순의 단계가 진행된다. 올해 1월까지 분석‧설계 단계를 통해 기존 및 현재 ERP시스템의 기능 차이와 동서발전의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해 회계, 구매자재 등 9개 분야에서 총 1천920개의 투비(To be) 프로세스를 도출했다. 도출된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본설계 과정에 착수해 1천742개의 화면을 총 개발물량으로 확정하고 기본설계를 완료했다. 7월말 기준으로 기능개발단계를 수행중이며, 약 6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동서발전

박일준 사장은 내부 직원의 변화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 동서발전은 지난 1월 워크숍을 개최해 ERP설계결과를 현업부서와 공유했으며, 이후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RP전용 사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매월 ERP 뉴스레터(큐비스, KEWVIS)를 발간하는 등 진행상황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시스템 품질과 보안성 확보를 위해 감리용역, 개인정보영향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향후 전사 핵심사용자 93명이 현장 ERP전도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국산, 외산 뭘 쓰든 나아지는게 있어야 직원의 평가가 좋다"며 "쓰는 사람이 불편하면 안되기 때문에 변화관리 기간을 처음부터 잡아서 문제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입장에서 뭐가 편해진다는 걸 교육을 통해 알리려고 하고, 특히 IT를 잘 모르는 현장 직원도 알기 쉽도록 교육하도록 신경쓴다"며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가야 바꾸니 편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엿다.

■ "사례 전파자 자처, 국산 확산 계기되길"

그는 국내 업체 솔루션 도입이 여러 측면에서 이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정책 변경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표준 웹 기반이어서 사용자 편의성도 뛰어나고, 전자정부 표준프레임워크를 준수하므로 시스템 확장성도 높다고 했다. 개발저 저변이 높은 자바 언어를 사용해 유지보수에도 용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사장은 특히 국내 업체의 적극적이고 발빠른 지원을 강조했다.

그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인력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특히 안전인력 보강 때문에 시스템사업에 인력 투입이 고민이었다"며 "이런 고민을 더존측에 전달했더니 추가 인력을 더 투입해 일정을 당겨보겠다는 해답을 제시해줬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공기업으로서 지켜야할 수익의 수준이 있고, 그를 충족한다면 추가 이익을 약간 포기해도 가급적 국산을 쓰자는 생각"이라며 "태양광이든 풍력발전이든 다 국산으로 하려 한다"고 밝혔다.

박 사장의 발언대로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도전보다 안전쪽에 주목하고, 작은 비용이라도 책임시비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

그는 "공기업 속성 상 산출 성과보다 투입 부분에 더 신경을 쓴다"며 "민간기업이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투자를 과감히 하는데, 공기업은 산출 가치를 금액으로 산출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많아서 투입요소를 더 신경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보니 IT시스템을 만들 때 중장기적으로 쓰는 돈에 비해 너무 조심스러워하고, 돈을 더 들이더라도 안정적인 걸 택하게 된다"며 "경영진 의사결정도 아무래도 나타나는 효과에 자신이 부족하면,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려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서발전은 공기업 사이에서 중요 참고사례로 활용되길 자처하고 있다. 현재 공공부문 주관 행사 사례 발표(4회), 벤치마킹 응대(3회) 등을 홯용해 국산 ERP 솔루션 구축 경험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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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동안의 국산 ERP솔루션은 인사, 회계분야에 강점이 있고 그 외의 분야에서는 기능 완성도가 떨어져 공공부문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며 "이 사업을 통해 대형 공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 추가된 솔루션을 개발함으로써 그동안 국산 ERP솔루션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기능의 완성도를 혁신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통해 ERP고도화를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선택지를 넓히고, 국산 ERP솔루션의 공공부문 초기판로를 제공해 국내 SW산업 진흥 및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기여하길 바란다"며 "다른 공기업의 경영자가 동서발전의 사례를 듣고 한번 자세히 알아보라 지시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확산될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