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지 리포트’를 아시나요?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지요. 하지만 한 때는 엄청나게 유명한 매체였습니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특종 보도하면서 스타로 떠올랐지요.
당시 클린턴 성 추문 사실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먼저 알고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추가 확인하느라 미적대는 사이에 ‘드러지 리포트’가 먼저 보도하면서 ‘세기의 특종’을 독점했습니다. 클린턴 성추문 보도 덕분에 ‘드러지 리포트’은 하루 아침에 유력 언론으로 떠올랐습니다. 수 백만명의 방문자가 몰려드는 인기 사이트가 된 겁니다.
'1인 미디어 원조' 매트 드러지, 알고리즘 지배 언론시장에 불편한 심기
‘드러지 리포트’는 매트 드러지가 발행하는 1인 미디어입니다. 클린턴 성추문을 비롯한 특종 보도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사실은 ‘뉴스 모아주는 사이트’입니다. 일종의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전성기 때 드러지 리포트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링크한 기사에 엄청난 트래픽 폭탄을 선사했습니다. 페이스북이 득세하기 전 ‘최고 뉴스 트래픽 제조기’였습니다. 매트 드러지는 초기 1인 미디어 혁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러지의 심기가 편치 않습니다. 알고리즘과 거대 소셜 미디어가 미국 인터넷을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드러지 리포트’의 위세가 예전같지 않은 데서 생긴 불만일 테지요.
드러지가 구글 뉴스나 페이스북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미국 IT 전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드러지는 2015년엔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구글 뉴스는 자동 편집되는 뉴스 사이트야. 그런데 멍청이들은 거기 사람(손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고 있다구. 당신들은 자동 편집된 뉴스에 노출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어. 끔찍해.”
그는 또 이런 경고도 했다고 합니다. 역시 악시오스가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페이스북 상에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마라. 그들의 기획에 인질로 잡혀 있다.”
발언들을 통해 드러지가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란 새로운 흐름에 많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드러지 얘기 접하면서 움베르토 에코를 떠올리다
그는 왜 이렇게 불만을 갖고 있는 걸까요? 미디어 시장의 파괴자가 또 다른 파괴자에게 최고 자리를 내준 불편함 때문일까요?
그보다는 ‘인공지능(AI)’에게 밀려났다는 자괴감이 작용한 때문은 아닐까요? 뉴스는 인간의 손길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은 아닐까요? 예측 가능한 데이터보다는, 인간의 감이 더 낫다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요?
드러지 얘기를 접하면서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가 떠올랐습니다. 2016년 작고한 에코는 위대한 작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기호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에코는 1990년대 후반 (아날로그) 도서관의 장점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인터넷 검색의 한계에 대해 얘기한 적 있습니다. 검색에선 '뜻밖의 만남'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기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우연하게 눈에 띈 자료에서 훨씬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지요.
전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뉴스에 대한 드러지의 불만도 비슷한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인공지능(AI)이나 알고리즘이 득세한 이후 숨은 보석 같은 뉴스가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경우가 예전보다 줄어든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이젠 '알고리즘이 득세하는 뉴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느낌은 여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엉뚱하게도 드러지의 불평 섞인 얘기에 살짝 공감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뉴스엔 '인간의 손길과 감성'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일테지요.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저도 어쩔 수 없는 구세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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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매트 드러지 얘기를 다룬 '드러지 혁명(The Drudge Revolution)'이란 책이 이번 주 미국에서 출간된다고 합니다. '돈키호테' 드러지가 어떻게 주류 미디어 시장을 흔들었는지, 그 숨겨진 얘기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