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조던의 '더 라스트 댄스', 미디어시장의 라스트 댄스

제리 크라우스를 위한 변명

데스크 칼럼입력 :2020/06/22 15:22    수정: 2020/10/05 13:4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활약을 다룬 ‘더 라스트 댄스’를 흥미롭게 봤다. 필 잭슨 감독을 비롯해 스카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토니 쿠코치 등 전성기 시카고 불스 팀을 이끈 추억의 스타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금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으로 변신한 ‘식스맨’ 스티브 커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마이클 조던은 특별한 존재다. NBA 역사를 ‘조던 이전’과 ‘조던 이후’로 나눠도 무방할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더 라스트 댄스’는 조던이 선수로 뛴 (사실상의) 마지막 해를 세밀하게 다룬 다큐멘터리란 점에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NBA 올드팬들에겐 “그래, 그 땐 그랬지”란 추억을 되살려주는 효과도 컸다.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활약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 (사진=ESPN)

그러다보니 조던의 관점이 다큐멘터리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실에 앉은 마이클 조던이 제작진이 보여주는 ‘그 때 영상’을 태블릿으로 확인하면서, 자기 얘기 덧붙이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 제리 크라우스는 '최고 팀'을 망친 악당일까

그런데 난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른 인물에 주목했다. 몇 안 되는 ‘조던 안티’ 중 한 명인 제리 크라우스 단장이다.

크라우스는 '더 라스트 댄스'에서 사실상 유일한 악당이다. 조던을 비롯한 시카고 불스의 핵심 선수들은 시종일관 제리 크라우스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영상 중엔 조던이 노골적으로 크라우스 단장을 놀리는 장면도 눈에 띈다.

내가 크라우스 단장을 유심히 본 건 ‘지금 통하는 비즈니스’와 ‘앞으로 해야 할 비즈니스’란 영원한 숙제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된 1997~1998 시즌 시카고 불스 팀은 기로에 서 있었다. ‘지금 당장의 성과’와 ‘미래 기반 다지기’란 상반된 가치가 정면 충돌하고 있었다.

필 잭슨 감독을 비롯해 조던, 피펜 등 핵심 선수들은 ‘한 번 더 우승’을 외쳤다. 하지만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승리하는 팀’을 고민해야 하는 단장의 입장은 달랐다. 최고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에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려야 했다.

(사진=넷플릭스 방송화면 캡처)

그 과정에서 제리 크라우스 단장은 꽤 많은 악역을 담당한다. 시즌 직전 우승 감독인 필 잭슨과 재계약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NBA 역사상 최고 스몰 포워드이자 조던 못지않은 팀 공헌도를 자랑하는 스카티 피펜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지금 당장 통하는 선수를 팔아서 장기적으로 승리하는 팀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전략이었다. 현재의 성과에 눈이 멀어 미래를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조던은 단장의 이런 행보가 못마땅하다. ‘현재’에 충실해야 우승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제목인 ‘더 라스트 댄스’는 필 잭슨 감독이 시즌 초 선수단 운영 계획을 밝힌 문건의 제목이기도 하다. 베스트 멤버로 뛰는 마지막 해인 만큼 멋진 마무리를 하자는 의미다.

■ 현재 통하는 비즈니스 vs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필 잭슨 감독과 조던은 ‘라스트댄스’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유타 재즈 팀을 꺾고 NBA 파이널 3연패에 성공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이뤄낸 3연패에 이어 두 번째 위업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라스트댄스’를 외친 조던의 관점이 옳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시카고 불스 팀의 역사를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더 라스트 댄스’를 끝낸 시카고 불스는 급속하게 해체됐다. 필 잭슨 감독을 비롯해 조던, 피펜, 로드맨 등 특급 선수들은 모두 팀을 떠났다.

그 이후 시카고 불스엔 긴 암흑기가 찾아왔다. 그때 이후 20년 동안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간간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예전의 위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 라스트 댄스'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제리 크라우스 단장. (사진=넷플릭스 화면 캡처)

그 과정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미디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오버랩해 봤다. 물론 직접 비교는 힘들다. 미디어 산업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 같은 탄탄한 존재라고 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실적 때문에 미래에 대한 준비에 제대로 착수하지 못하는 건 비슷해 보인다. 지금 당장 통하는 수익 모델을 소홀히 하기 힘든 상황, 그래서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제약이 많은 상황은 그 시절 시카고 불스와 비슷해 보인다. 누군가 제리 크라우스처럼 개혁하려고 해도 쉽게 동의를 이끌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내가 ‘더 라스트 댄스’에 열광하면서, 한편으론 씁쓸한 느낌을 금치 못했던 건 그 때문이다. 현재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디어 산업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더 라스트 댄스’에서 몇 안 되는 악역인 제리 크라우스에게 강하게 공감했다. IT 기자가 뜬금 없이 ‘제리 크라우스를 위한 변명’을 쓰게 된 것도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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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그렇다고 마이클 조던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최고 멤버'들과 함께 우승하는 걸 목표로 삼는 건 선수 입장에선 당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카고 불스는 미래를 포기한 대가로 NBA 역사상 흔치 않은 '쓰리핏'을 이뤄냈다. 그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미디어 비즈니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