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직원에게 명예롭게 물러날 기회를 달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근로자들이 희망퇴직 활성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현업에서 배제된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인사 적체를 해소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취지에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국책금융기관 노조협의회는 최근 금융위원회에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개편 방안'을 제출했다.
노조가 내놓은 개편안은 임금피크제 기간(3~4년) 중 1년만 일한 뒤 희망에 따라 잔여임금을 받고 퇴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다. 즉, 제도를 개선해 직원의 희망퇴직을 독려하자는 얘기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국책은행에서 '노조'가 이처럼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존 명예퇴직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영업 현장의 비효율화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국책은행 임직원 대부분은 명예퇴직보다 임금피크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 규정에 따라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만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어서다. 주요 시중은행이 직전 월급 36개월치를 퇴직금으로 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기업은행은 지난 2015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명예퇴직 제도를 중단했고 산업은행은 2014년, 수출입은행은 2010년 이후 명예퇴직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경영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노조 측은 지적한다.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보통 지원업무로 전환되는 만큼 결국 유휴인력이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김형선 노조협의회 의장(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부서장까지 맡았던 사람이 다시 현장으로 나가서 실무에 임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당사자 역시 정상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그 자리를 신규 인력으로 채워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게 공공기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2022년 각 국책은행의 임금피크제 직원 비중을 ▲산업은행 18.2% ▲기업은행 12.3% ▲수출입은행 7% 등으로 추산했다.
관건은 공을 넘겨받은 금융위원회의 행보다. 이번 제안이 성사되려면 공공기관 지침을 개정해야 하는데, 기재부를 설득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져서다.
물론 금융위의 생각도 노조와 다르지 않다. 퇴직금을 올려서라도 희망퇴직을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수출입은행장 시절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자리를 젊은 직원으로 채우면 여러모로 긍정적일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다만 공공기관의 희망퇴직을 활성화하면 추가 예산이 필요할 것이란 우려에 기재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금융위는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문제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국책은행 희망퇴직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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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위원장은 "임금피크제 잔여임금을 모두 지급하더라도 성과급을 제외하는 만큼 그 금액은 실질급여의 78%에 불과하다"면서 "추가 재원 없이 은행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금융위가 검토를 거쳐 기재부 등과 협상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노조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번 사안을 공론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