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SW 저작권 9년 전쟁을 겪으며...우리에게 너무 가벼운 소프트웨어 존재

전문가 칼럼입력 :2020/06/04 22:03    수정: 2020/06/05 11:11

최백준 틸론 대표

19년 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터미널 서비스 기반 원격 접속용 웹 프로그램' 개발이 현재까지의 사업으로 이어졌다.

클라우드 발전법이 만들어졌고 지난달에는 소프트웨어인이 갈망하던 SW진흥법도 진통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미래기술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인식 제고가 이뤄졌고, 관련업계 종사자 대우도 점차 향상돼고 있어 다행스럽다.

SW를 개발하고 공급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있어 '개발자'의 위치는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엔지니어 이상이다. 산업의 핵심 근간이며 보유 회사에는 큰 자산이자 비용 투자 객체다. 채용 후 해당 회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개월, 초보자는 몇 년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소프트웨어 회사에 개발자는 수익의 원천이자 투자와 애증의 대상이다. 헤드헌터들은 몇 년의 기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개발자 몸값을 올려 이직시키곤 한다. 그래야 수입이 늘기 때문이다. 이런 개발자를 사주 및 유출, 손쉽게 수많은 수익을 올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난 2012년 10월 영등포경찰서에 SW 저작권 침해 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경찰이 심각히 물어왔다. "압수수색을 해서 주장하는 대로 소스코드가 담긴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무고로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며 굳이 압수수색을 원할 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압수수색을 택했고, 그날 오후 2시 30분 우리가 주장한대로 DVD로 유출된 자료와 그것을 수정해 모 대기업에 납품한 수정본까지 확보했다며 철수한다는 연락이 경찰에서 왔고, 햇수로 9년간 SW저작권 전쟁이 시작됐다.

소프트웨어 저작권협회에 카피 여부 의뢰가 들어갈때마다 2년과 3년, 두차례 걸쳐 거의 5년간 묶여 있었고, 그동안 소스코드 유출을 사주한 우리회사 전직 연구소장은 두 개 회사를 거치며 아류작을 만들었고, 해당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까지 했다. 장물과도 같은 그 제품을 가지고 해당 회사 대표는 그해 6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5억 투자와 10억이 넘는 판매도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계속 드는 질문이 있었다. "절도죄와 장물취득죄로 익히 알고 있으면서,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소프트웨어 가치를 가볍게 보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DVD로 소스코드를 유출한 정황을 수사로 낱낱이 파헤쳤고, 회사를 퇴사하기전부터 사주한 회사의 업무를 보면서 개발에 동참한 흔적들, 사주 회사 대표가 근로계약서를 위조해 3장을 제출한 것이 탄로 난 것과 해당 연구소장이 본인이 직접 해당 개발자를 섭외, 연봉 두 배와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을 진술했음에도, 검찰 재수사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무시됐다. 최근 문제의 개발자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다. 소장을 제출한지 햇수로 9년만에 SW저작권 침해 사건이 올 1월 고등법원에서 완료된 것이다.

법원 판결문은 '프로그램 개발에 드는 시간, 노력, 비용 등을 절약하는 부정한 이익을 얻었다'며 절도 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 범행으로 직접 취득한 이익이 그다지 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정말 그런걸까. 피해 개발사인 우리는 햇수로 지난 9년간 아래의 상황을 지켜보며 말로 할 수 없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봤다.

첫째, 인력과 소스코드를 빼돌린 회사 대표가 고위 공무원, 동종 업계 다수 대표, 글로벌 소프트웨어 임원진 등에 ‘틸론은 곧 망한다. 핵심 개발자와 소스코드를 모두 우리가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상식밖의 언행을 해 우리 회사 이미지와 신뢰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둘째, 이 회사 대표는 우리회사 로고와 상표를 지우지 않고 제품 UI(User Interface)로 그대로 사용했고, 제품 매뉴얼에도 버젓이 사용했다.

셋째, 소송이 진행되자 개발자와 이직을 사주한 전직 우리 연구소장은 타사 부사장과 연구소장으로 옮겨 우리와 동일한 UI 제품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넷째, 틸론에 근무한 적이 있는 이 연구소장은 다른 회사로가 우리와 주력 제품이 겹치는 '데스크톱 가상화'를 주력으로 이 회사를 상장시켰다.

다섯째, 우리 개발자를 사주한 회사 대표는 지금도 DaaS(Desktop as a Service)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의 회장 등을 맡고 있고, 협동조합도 결성하는 등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수천만원의 소송 비용과 인력과 시간 손실, 시장의 신뢰도 하락 등 산정 불가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소스 코드를 빼돌린 개발자만 처벌을 받았다.

소송을 하면서 계속 느낀 것은 수사에 참여하는 인력이 소프트웨어에 갖는 인식이 왜 그리 가벼울까? 하는 것이였다. 현재도, 또 앞으로도 우리와 유사한 소송과 분쟁이 많을 것이다. 4차산업혁명을 논하는 지금 우리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첫째, 소프트웨어 전문 수사인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전문 용어와 구조, 그리고 탈취 과정을 설명하고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한다. 검경 수사도중 소프트웨어 구조와 활용 과정을 이해시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피의자가 진술이나 주장을 전문 용어 나열하면 그의 의도에 쉽게 말려들거나 판단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의료나 미술, 각종 공학등 전문 영역 출신 법률 전문가가 늘고 있듯이 소프트웨어 전문 수사 인력과 판결이 가능한 판검사가 절실하다.

둘째, 소프트웨어 지적자산 평가와 법리적 해석 전문 기관 설립과 외부 전문 감사 인력 풀을 정비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보다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을 마련하고, 소스코드 레벨에서 감사가 가능한 인력 풀을 검경이 보다 손쉽게 접근하도록 제공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를 강화하거나 독립 및 격상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소프트웨어 저작권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사단법인으로 법리적 판단이 아닌 상위 기관 요청에 얼마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세째, 소프트웨어 개발 투자비와 기회 비용을 피해액으로 산정해야 한다. 소스코드는 개발하는 데 막대한 인건비와 시간이 소비 된다. 반면 복제는 용이하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선 개발 투자비용과 사업 기회를 박탈당한 기회 비용까지 피해액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번 판결과 같이 유출자가 취한 이득만을 피해액으로 산정하면 소스코드 탈취를 근절할 수 없다.

넷째, 장물을 통해 이익을 편취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탈취 사업주가 직접 DVD를 건네는 자리에 동석했고, 본인 스스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력과 소스코드를 빼왔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음에도 수사과정에서 간단한 부인만으로 무력화 됐다.)

보통 소송을 하면, 업무 지시는 했지만 탈취한 소스코드 인지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제품화 이후 판매를 했을 경우 이에 대한 처벌과 그에 따른 피해액을 보상하도록 해야 불법 복제를 근절할 수 있다.

다섯째, 지적자산과 특허 침해 처벌과 손해 배상을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야 말로 산업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장기간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와 땀으로 만든 지적 자산에 대해 실물보다 더 혹독한 법의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 수준저작권 처벌 규정을 마련, 지식 산업 전체가 보호 받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피고인을 징역 6개월에 처한다. 소송비용은 피고인이 부담한다.' 이 간단한 문구를 얻기까지 햇수로 9년간의 소송 전쟁을 겪었다. 당시 사업주는 또 다시 동일 사업 아이템으로 잘 나가고 있다. 당연히 반성도 없다. '장물'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또 영위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소프트웨어 산업 후배들에게 국가와 법이 보호해주기 때문에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당한 놈이 멍청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또 소프트웨어는 오픈해서 누구나 ‘공짜’로 쓰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좋은 인재가 SW에 인생을 오롯이 올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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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식 산업 시대다. 전 산업에 걸쳐 가치상승과 고효율을 이루려면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하고 그래야 국가 발전이 이뤄진다. 여기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또 걸맞는 대우를 할때 더 좋은 인재가 투신하고, 대한민국도 컨텐츠와 더불어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와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모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노고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제대로 대우받기 위해선 우리 사회와 법이 먼저 그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 남의 지식과 투자비와 노력을 한 순간에 탈취하는 것이 100만원짜리 물건 훔치는 것 보다 처벌이 더 가벼워선 안된다. 소프트웨어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대한민국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을까.

최백준 틸론 대표가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