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들을 발표한 가운데, 디지털 성범죄 영상의 유통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려는 법안 개정에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사단법인 오프넷은 20대 국회가 강행하려는 일명 ‘n번방 방지법’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 국회에서 기본권 침해 등 우려가 없는 법안이 마련되도록 현 개정안의 입법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n번방 사건으로 지난달 23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또 같은 달 29일 국회 역시 n번방 방지법이라 불리는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 및 형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나아가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디지털 성범죄 영상의 유통 차단 의무를 부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본회의 통과를 앞둔 상태다.
기본적으로 오픈넷은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한 입법 취지와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또 디지털 성범죄 영상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인터넷 사업자들의 책임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네이버, 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를 지우는 것에 반대다. 이런 유통 방지 의무가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처럼 비공개 대화방 서비스에도 적용될 경우 이용자의 통신비밀, 사생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다.
오픈넷에 따르면 개정안 제22조의5 제2항은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른 불법촬영물, 제14조의2에 따른 딥페이크 영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하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만약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의 내용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지만 같은 조항에 대한 현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참고하자면 이런 기술적 조치에는 크게 ▲정보의 제목, 특징 등을 비교해 해당 정보가 불법정보임을 인식할 수 있는 조치 ▲불법정보를 이용자가 검색하거나 송수신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가 있다.
이 중 정보의 제목, 특징 등을 비교하는 기술적 조치는 키워드 필터링과 해시값/DNA 필터링 두 가지가 있다. 키워드 필터링은 정보의 제목이나 파일명 등이 특정 키워드를 포함하는지를 비교해 필터링하는 기술이고, 해시값/DNA 필터링은 동영상의 해시값이나 DNA 등 특징을 분석해 만들어진 데이터베이스에 기반 한 필터링 기술이다.
오픈넷은 “어떤 방식의 필터링을 적용하든 사업자가 불법촬영물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공유하는 정보를 다 들여다봐야 한다”며 “사업자가 대화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이는 헌법 제18조가 보호하는 통신비밀의 침해이자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의 녹음 또는 청취를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미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7조의 '기술적 조치' 의무 조항이 비공개 카카오그룹에 적용돼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가 기소된 사례가 있음에 비춰본다면 개정안의 기술적 조치 의무가 사적 대화에 대한 감시를 독려할 위험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면서 “종단 간 암호화 등 암호화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위 같은 기술적 조치를 취하라고 한다면, 사업자는 이용자의 통신 내용 감시를 위해 암호화 기술을 무력화시켜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불법정보를 검색하거나 송수신하는 것을 제한하는 기술적 조치도 사업자가 이용자들이 어떤 정보를 검색 또는 송수신하는지 알아야만 할 수 있다”며 “합법정보의 검색 또는 합법정보나 대화의 송수신까지 제한될 수 있다. 이 경우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통신의 자유 침해가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이에 개정안이 이와 같이 비공개 대화방을 통한 소통까지 사적 감시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유통 방지 의무를 부담하는 부가통신사업자의 범위를 대통령령이 아니라 법률에서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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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은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하고자 하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 그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 “그러나 현재 개정안의 문언만으로는 유통 방지 의무를 지는 부가통신사업자의 범위를 예측하기 어려워 자칫 이용자의 통신 비밀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나 여당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의 구두해명으로는 그런 오해를 막을 수 없다”며 “정부는 유통 방지 의무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밝힐 것과 20대 국회는 현 개정안의 입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