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소위 통신 3법(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에 국내 CP(콘텐츠 사업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을 놓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이용료를 회피하기 위해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한 상황에서 인터넷기업들이 이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글로벌 대형CP를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통신 3법 중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글로벌 CP에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 일정 기준 이상의 CP의 서비스 안정 수단 조치 의무 등이 포함됐다. 이는 글로벌 CP들에게 국내 CP들과 동등하게 망 이용료를 지불토록 하고, 서비스 품질관리 의무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12일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이 제시한 통신 3법에 대한 질의서에 대해 반박하면서 “침소봉대식 해석과 근거 없는 선입견만으로 문제를 삼고 있다”며 “범국가적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플랫폼 사업자의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한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3개 단체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통과시킨 통신 3법에 대한 재검토를 주장하며 질의서를 보냈다.
■글로벌 대형CP 유럽서는 망 품질 관리
먼저, 인터넷기업들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제22조의 7)에 포함된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서비스 안정수단’의 확보란 표현이 모호해 실제 적용에 혼선이 예상된다며, 안정수단의 구체적 내용과 범위를 따져 물었다.
요지는 망의 품질은 ISP가 책임져야 하는데 CP에게 이를 떠넘기려는 처사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정상 수석은 “유럽연합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정에서 업무나 엔터테인먼트용 인터넷 사용량 급증에 따른 네트워크 과부하 가능성을 우려해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에 대해 속도를 낮춰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며 “실제 글로벌 CP들은 스트리밍 품질을 낮췄고 넷플릭스는 유럽의 통신 네트워크에서 트래픽을 사실상 25%까지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CP들도 전기통신서비스의 품질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준 사례”라면서 “서비스의 안정수단 확보는 ISP뿐만 아니라 CP들도 품질 관리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전기통신사업법에는 모든 전기통신사업에 대해 품질 개선 노력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는 향후 집행기관에서 정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넷기업들이 부가통신사업자 관리영역 외에서 발생한 서비스 불안정의 경우 ISP를 상대로 그 원인 파악을 위해 조사할 수 있는 방안이나 구체적 권한이 있는지, 또 그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 대처가 가능한지 등을 묻는 질의에도 안 수석은 “ISP의 문제로 발생한 책무에 대해서는 이미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규정하고 있다”며 “집행기관이 ISP가 책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과 미이행 시 과태료 부과 조치에 대한 사항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수혜기업들 무책임한 처사 비판
특히, 코로나19 사태에도 국내 CP들이 ‘언택트(비대면)’ 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n번방 방지법, ’글로벌 CP 규제법‘, ’넷플릭스 갑질 방지법‘ 등으로 불리는 법안을 도입하려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이기적인 주장이란 지적이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통신업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기업 주가가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크게 줄어든 것과 비교해 온라인 쇼핑, 간편결제, 웹툰 등 비대면 사업을 영위하는 인터넷 기업들은 오히려 그 가치가 폭등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말 이후 대다수 기업들이 폭락한 주가를 회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업계 대표주자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18만원대, 16만원대에서 모두 21만원대로 폭등했다. 특히 지난해 시가총액이 10위였던 네이버는 최근 35조원을 넘어서면서 삼성전자 우선주를 밀어내고 4위로 올라섰다.
반면, 같은 기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23만원대, 2만6천원대, 1만3천원대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21만원대, 2만3천원대, 1만3천원대(이상 5월12일 기준)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n번방 방지법의 경우 국내 CP들이 주장하는 논리도 범죄 예방 측면과 검열이란 규제 사이에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내 CP를 타깃으로 한 법안이 아닌 만큼 과장된 주장이란 지적이다.
안정상 수석은 “전기통신사업법 초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인식’한 경우란 부분에 대해 CP들이 문제를 제기해 ‘유통되는 사정을 신고, 삭제요청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 단체의 요청 등을 통해 인식한 경우’로 삭제하고 수정했다”면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포함된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도 전기통신사업법과 중복 규제란 이유로 삭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 조치도 n번방 사태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최소한으로 반영한 것이고 국내 CP들이 우려하는 인공지능 등을 통해 모든 이용자의 게시물이나 콘텐츠를 들여다봐야 한다거나 민간사업자에게 사적 검열을 강제할 만한 근거가 되는 규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소모적 논쟁으로 본질 회피해선 안 돼
전문가들은 n번방 사태로 문제가 된 텔레그램, 망 이용료를 회피하려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의 취지를 훼손해 국내 CP들이 소모적 논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국내 CP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고 글로벌 CP에게 책임을 부여하려는 것이 이번 법안들의 본질”이라면서 “넷플릭스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를 무시하고 민사소송으로 규제를 벗어나려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인데 이를 국내 CP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논점을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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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계자는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로 시작한 글로벌 CP들의 플랫폼 독점이 이제는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 등으로 확대돼 여러 산업을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글로벌 CP들이 무임승차를 국내 CP들이 방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정상 수석은 “그동안 인터넷 기업들을 규제하고 통제하려고 시도할 때 지원과 육성을 강변하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면서 “외부의 전문가, 학계, 언론 등을 내세워 지적과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제3자의 입을 빌어 문제를 제기하고 직접 나서지 않는 인터넷 기업들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