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자의 e知톡] '새 n번방 금지법'에 우리가 "NO” 해야 하는 이유

"실효성 없고 기본권 침해 소지 커”

인터넷입력 :2020/05/06 11:22    수정: 2020/10/05 13:55

얼마 전 전국민의 공분을 산 ‘n번방’ 사건의 후속 대책이 엉뚱한 곳에 불똥을 튀기는 모습입니다. 그 불똥이 번져 자칫 이용자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성 착취 영상물이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유통돼 피해를 키웠으니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를 사전에 감독하고 조치하라는 입법안이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등 그 책임을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따져 묻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인터넷 기업과 단체 등은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을 우려하는 동시에 현실성과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을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나 사법 기관이 해야할 일을 사업자에게 떠넘긴다는 지적입니다.

불법적인 성인물이나 텔레그램에서 문제를 일으킨 n번방 같은 성착취 영상물이 인터넷 공간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사업자들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사업자가 아닌, 사용자인 우리가 왜 “NO”를 해야 한다는 걸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n번방 금지법’은 크게 두 가지 법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지난 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과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법이 대표적인 첫 번째 n번방 금지법입니다.

이 법안 통과로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을 소지하거나 구입, 저장, 시청한 경우, 또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촬영물로 협박한 자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또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이 현행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높아집니다. 아울러 아동과 청소년 대상 성착취물로 얻은 재산상 이득은 몰수나 추징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눈여겨 볼 n번방 금지법은 앞선 내용과 다른,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입니다. 국회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논의해 법안 통과를 준비 중인 법안으로, 이원욱 의원 등 13인이 개정안 발의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가리켜 쉽게 ‘n번방 금지법2’로 부르겠습니다.

n번방 금지법2에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이 성적촬영물 발견 시 삭제, 전송방지, 중단 기술적 조치 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파일 업로드, 전송 시점에서 걸러내고 삭제하는 ‘사전 대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징벌적 과징금을 물게 됩니다.

얼핏 봐서는 사업자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가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자료 이미지(제공=이미지투데이)

먼저 n번방 사건이 일어난 공간은 해외 메신저 서비스인 텔레그램입니다. 폐쇄적인 인터넷 공간에 성착취 영상물을 올려 이용자를 끌어 모아 문제를 일으킨 경우입니다. 블로그나 카페처럼 오픈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자들도 쉽게 들여다보기 힘든 곳에서 범행이 이뤄진 경우입니다.

그런데 n번방 금지법2가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경우 사업자들은 사용자들이 인터넷에 업로드 하거나 사용자끼리 주고받는 모든 영상물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만약 성착취 영상물이라 판단되면 이를 즉각 중단 시키거나 삭제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해당 영상물이 단순 성인물인지, 아니면 아동이나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착취물인지 구분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검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 삭제 조치하고 보니 ‘성적 착취물이 아닌 연출된 성인물’일 경우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업자에 대한 이용자의 소송과 고소, 고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의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에 휩싸일 소지도 다분해 보입니다.

만약 카카오가 내 개인 카카오톡 대화창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면, 네이버가 내 블로그 게시물을 비롯해 메일을 빠짐없이 검열한다면 어떨까요. 그럼에도 여러분은 n번방 금지법2에 찬성하는 입장이신가요?

나아가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회는 해당 법안을 해외 사업자들도 동일하게 지키도록 한다는 계획이나, 현실은 다릅니다. 만약 해외 사업자들이 국내법을 잘 지키고, 우리 정부의 요구에 순응했다면 수년 간 지적 받아온 법인세 납부 문제도 이미 해결되지 않았을까요? n번방 금지법2를 텔레그램이나 구글 페이스북에 의무화 시켜 이를 지키도록 하고, 위반 시 과징금을 물리겠다는 얘기는 마치 우리 정부가 방위비를 인하하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결국 국내 업체들만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을 열심히 검열하고, 그에 따른 잡음과 비판을 견디다, 사회적 문제 발생 시 공분과 징벌적 과징금만 떠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법 기관과 정부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업자 탓만 하면 되는 '손 안대고 코풀기' 권법이 가능해 집니다. 그 사이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보안 담당자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해외 서비스만 세를 불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자료 이미지(제공=이미지투데이)

이 같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목한 전문가들의 멘트로 n번방 금지법2, 우리가 "NO"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할까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야 하는데 완전히 다른, 엉뚱한 처벌을 하려 한다. 형벌이 높지 않아도 검거가 확실하면 범죄는 억제된다. 인터넷도 범죄인 검거가 잘 되고, 사법기관이 이렇게 잘 잡고 있다는 걸 알리면 n번방과 같은 사태는 예방됐을 것이다. 사업자를 규제해서 잡겠다는 건 가장 효과가 없을 것이고, 실패한 처방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법무법인 린 구태언 변호사)

관련기사

“극소수 범죄자를 잡기 위해 '만리방화벽'을 쌓고 모든 인터넷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맞는 방법인가. 기술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현재 불법 촬영물을 완벽히 걸러내는 기술은 없다.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촬영물이 진짜 성 착취물인지, 몰카인지, 연출된 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오픈넷 김가연 변호사)

“불법촬영물인지 여부의 판단을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문제, 이용자의 통신이 서비스 사업자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로 이어져 개인의 기본권(통신의 비밀)이 침해될 문제가 있다. 강제수사권 또는 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의심만으로 사적 영역에 관여하게 됨으로써 부가통신사업자가 이용자의 소송과 고소고발에 직면할 위험도 있다.”(한국인터넷기업협회 박성호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