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은 사법 문제...사업자 책임 떠넘기기 실패할 것”

인기협 긴급토론...‘n번방 방지법’ 현실성 실효성 의문

인터넷입력 :2020/04/28 20:41    수정: 2020/04/29 08:33

“의무를 부과하려면 가능성 있는 걸 해야 한다. 할 수 없는 걸 부과하면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현재 텔레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대화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다. (n번방 방지법은) 모든 통신 내역을 사업자가 검열하란 얘기다. 이 같은 의무와 책임을 왜 사업자에게 떠넘기나.”

‘n번방 방지법’(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 관련 법안)에 나온 대책을 놓고 실현 가능성이 낮고, 사업자가 전 이용자들의 통신 내역을 검열하라는 것과 같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n번방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미봉책에 가까운 대책들만 국회에서 중복적으로 쏟아졌다는 지적이다. 기존 법안으로도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규율할 수 있음에도 정부와 사법기관들이 이를 게을리 하고, 사업자한테 그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28일 오후 선릉에 위치한 앤스페이스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란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날 토론회는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최민식 교수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 법안 실효성 검토’란 주제 발표로 시작됐다.

최 교수는 디저털 상착취 범죄 대응 방안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법제 개선 검토가 필요하지만, 현재 다수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과 같은 정제되지 않은 개정안은 지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최민식 교수

최민식 교수는 “n번방 관련한 법안들이 경쟁적으로 나오는데 이는 중복 규제다. 국회나 정부가 법제화에 나설 것이 아니라 서로 조율함으로써 효율적인 대책이 되도록 정확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디지털 성 범죄에 대한 실제 집행이 가능하도록 법제를 검토해야 하며, 기존 법으로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와 공적 영역간의 협력, 이용자의 미디어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진근 교수는 인터넷의 움직이는 정보를 필터링 해야 하는 대책이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개정안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ISP)가 성적촬영물 발견 시 삭제, 전송방지, 중단 기술적 조치에 대한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 맞지도 않지만, 실현조차 불가능하다는 지적이었다.

정 교수는 “n번방을 계기로 ISP가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ISP는 통신의 보조자로서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한 협력자가 돼야 한다”면서 “저작물 침해와 달리 디지털 성범죄는 오래 지켜보면서 증거 수집이 충분히 돼야 하는데, 인지하자마자 차단하면 제대로 된 검거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만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ISP가 협조할 수 있도록 하고, 적절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문제 해결의 포인트를 잡아 해결해야지, 만리장성을 쌓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황용석 교수는 입법안의 효과를 고려해야 하는데, n번방 방지법은 이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고,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다는 문제를 꼬집었다.

황 교수는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지, 또 실제적으로 구제 효과가 있는지,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지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감청 결과를 낳을 경우 헌법과 충돌해 위헌적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김현경 교수는 그 동안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형량 집행이 너무 약했다고 비판했다. 성 범죄물 제작과 유통으로 인한 수익은 엄청난데 1~2년 형량만 채우면 된다는 보상심리가 있으니 n번방 사태와 같은 범죄가 예방될 수 있냐는 얘기였다. 또 그는 실효성 측면에서도 n번방 방지법의 허점이 많다고 쓴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어떻게 이런 범죄에 대해 사법부가 1~2년 버티고 나오면 되는 정도의 형량을 갖고 집행했는지 의문이다. 이게 핵심적인 문제”라면서 “법이 제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타당성과 실효성이 있어야 하는데 n번방 방지법은 타당성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동조를 하겠지만, 실효성 측면에서는 법안 내용의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법안 적용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서버 담당자 연락처도 모르는데 해외 사업자에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해외서 발생하고 여파는 국내서 발생하는데 이번 대책은 미봉책이고 미흡하다”고 역설했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는 n번방 사태를 두고 사법 기관이 그 동안 잘 대응해 왔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가의 형사사법 정책과 시스템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그 책임을 사업자에게 돌리고, 행정적인 질서를 도입해 해결하려는 것은 엉뚱한 처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구 변호사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야 하는데 완전히 다른, 엉뚱한 처벌을 하려 한다”면서 “형벌이 높지 않아도 검거가 확실하면 범죄는 억제된다. 인터넷도 범죄인의 검거가 잘 되고, 사법기관이 이렇게 잘 잡고 있다는 걸 알리면 n번방과 같은 사태는 예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주범부터 잘 잡히고 있는 걸 보면, 그 동안 형사 사법 기관의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사업자를 규제해서 잡겠다는 건 가장 효과가 없을 것이고, 실패한 처방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 “성 착취물과 관련한 수시기관의 감청을 허용하면 기지국 단에서 잡아낼 수 있어 훨씬 쉽게 수사할 수 있다”면서 “오프라인에서처럼 디지털에서의 잠입수사가 도입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는 사업자가 몰카와 같은 불법 촬영물을 발견하고, 즉시 삭제하거나 기술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어떻게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 이뤄진 촬영인지 확인이 어렵고, 모든 정보를 다 모니터링 해야 하는데 기업에 의한 사적 감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극소수 범죄자를 잡기 위해 만리방화벽을 쌓고 모든 인터넷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맞는 방법인가”라며 “기술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현재 불법 촬영물을 완벽히 길러내는 기술은 없다.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촬영물이 진짜 성 착취물인지, 몰카인지, 연출된 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 김가연 변호사, 구태언 변호사, 최인식 교수, 이상직 변호사, 김현경 교수, 황용석 교수, 정진근 교수.

끝으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박성호 사무총장은 “n번방 방지법은 실현 불가능한 의무강제고,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가 아닌 텔레그램 n번방처럼 특정 당사자에게 폐쇄적으로 유통되는 정보여서 개정안은 규제 대상을 명백히 오인한 문제가 있다”면서 “웹하드 같은 특수목적 온라인 서비스와 일반 온라인 서비스를 동일시해 규제 방식을 통일하겠다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촬영물인지 여부의 판단을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문제, 이용자의 통신이 서비스 사업자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로 이어져 개인의 기본권(통신의 비밀)이 침해될 문제가 있다”며 “강제수사권 또는 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의심만으로 사적 영역에 관여하게 됨으로써 부가통신사업자가 이용자의 소송과 고소·고발에 직면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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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는 지난 23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확정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관련 법안(n번방 방지법)을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에 전달하기로 했다.이는 20대 마지막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 의무를 웹하드 사업자(40~50개)에서 모든 부가통신사업자(약 1만5천개)로 확대했다. 성 범죄물을 신고하거나 발견 시 삭제하던 수준을 넘어, 파일 업로드·전송 시점에서 걸러내고 삭제하는 '사전 대응'을 요구했다. 나아가 이를 위반하면 실제 손해액 몇 배에 이르는 '징벌성 과징금제'를 도입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