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 부모보다 청소년 손에 더 가깝다

[이슈진단+]음란물 범람 현황과 대책(상)

인터넷입력 :2020/04/13 17:21    수정: 2020/04/14 08:54

소위 n번방 사건으로 음란물과 성착취물의 문제가 커지고 있다. 특히 n번방 사건의 경우 다수의 청소년이 피해자이고, 가해자 또한 성인은 물론이고 청소년까지 포함돼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에 지디넷코리아는 음란물과 성착취물의 범람 현황과 이에 대한 미디어 교육 등의 대책에 대해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 9일, 텔레그램과 디스코드 등을 통해 성착취 영상을 유포하거나 판매해 검거된 피의자 중 10대가 29.4%를 차지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유포자들도 대부분 12세에서 17세 미만이었다. 박사방을 운영해 구속 기소된 조주빈을 도운 공범 중에도 10대가 포함돼 있었으며, 총 확인된 58명의 피해자 중에서는 10대가 30명으로 가장 많았다.

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일찍 접할수록 아이들이 불법 동영상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고, 내 아이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맘카페 등에서는 n번방 청원에 서명을 독려하는 글이 약 2천900건 검색됐다. 해당 글에서는 ‘n번방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자’, ‘우리 아이들을 좀 더 안심하게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9일 발표한 2019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3세 이상 인구의 91.8%가 인터넷 이용자며, 81.2%는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들 중 73.7%가 하루 1회 이상, 주 평균 4.5시간을 동영상을 보는데 사용한다. 스마트폰 사용 통제력을 상실한 과의존 위험군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전 연령대 중 유아동 과의존 비율이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성별로는 남아가 여아 보다 과위존 위험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 미디어 비판 교육 어디서 받을 수 있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절과 단속,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아동부터 청소년까지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통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하면 미디어를 제작하는 것부터 소비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동영상 홍수 시대에 콘텐츠를 분별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목표 중 하나다.

여느 때보다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비판 능력과 유해 판단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지만, 체계적인 미디어 교육이나 이를 위한 법제화가 미디어 소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18년 유은혜 의원(교육부 장관)과 신경민 의원 등이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상태다. 이 법은 미디어교육 전담 기구가 생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는 미디어교육을 담당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도 딱히 없다. 이를 위해 법안을 발의하는 등 미디어 교육 주관 기구를 설립하자는 노력이 있었지만,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자의 미디어 교육 확대와 격차 해소, 공정한 미디어 환경 조성 등을 위해 ‘시청자미디어재단’이라는 공공기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운영하는 교육을 살펴보면, 미디어 체험과 활용 능력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디어의 비판적 이해 능력이나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에 대한 교육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픽사베이)

■ 미디어 비판 교육 부재…”뭘 먹을지 결정할 능력 길러줘야”

전문가들은 제작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디어 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영상 제작이나 활용에 앞서 비판적인 이해 교육이 전제돼야 하지만, 해당 교육에 대한 준비도, 실행도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영상 제작 능력을 키우는 것도 미디어 교육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영상을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이 영상이 좋은 영양소를 갖고 있는지, 내가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교육이 전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영상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게 아닌, 내가 영상을 어떻게 선택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넘쳐나는 정보들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을 먼저 길러야 한다”며 “그러나 청소년들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전주혜 미디어미래연구소 팀장 또한 미디어 비판 교육 부재에 대해 지적했다. 현재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는 대부분 영상 제작 과정이나 진로 체험에 집중돼 있는데, 비판적 이해 능력 교육은 강의 자체도 부족하고 전체 교육 중 차지하는 비중도 작다는 지적이다.

저작권 이슈는 인기가 많지만, 영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소양에 대한 강의는 개설을 해도 잘 듣지 않는 다는 문제도 있었다. 영상 제작이나 활용 교육은 실제 만든 결과물로 성과를 제시할 수 있지만, 미디어 비판 교육은 그마저도 힘들다. 성과 위주로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이 짜여 있는 이유다.

전 팀장은 “비판적 리터러시 부분은 윤리 수업 같은 형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기가 없다”면서 “정규 교과과정에 넣는 것도 관련 법이 통과가 되지 않아 힘들고, 이와 관련 강의할 교사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정현선 경인교대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과정에서 비판적 미디어 교육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교과 내용 자체가 가치 중립적인 내용을 다루도록 지향하고 있으며, 편향된 내용을 다루기 힘든 실정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논란에 대해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탐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교과서 편찬상의 유의점과 검정기준을 살펴본 결과, 교육 내용에는 정치적이나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공정하고 교육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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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논쟁이 있고, 불편할 수 있지만 여러 사회 주제를 갖고 탐구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현 교육 체계와 교과서 관련된 규정 안에서는 힘들다”며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루려고 해도 특정 그룹의 사람을 비난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중립성 위반의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미디어를 통해서 정보를 얻는 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고, 사회에 관여하기 위해서라는 관점을 갖고 미디어 비판 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이런 훈련이 잘 돼 있다면 콘텐츠에 대한 비판 능력을 통해 n번방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기감시’가 잘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