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코로나 얘길 왜 나한테 묻나?"…어느 축구감독의 감동 인터뷰

위르겐 클롭 리버풀 FC 감독의 현명한 대처

데스크 칼럼입력 :2020/03/05 10:49    수정: 2020/10/05 13:4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심각한 일이 발생했을 때, 축구 감독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나처럼 지식 없는 사람들이 얘기해봐야 뭐 하나. 그런 건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FC 감독이다.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 하지만 축구팬들 사이에선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올들어 클롭의 인기는 더 대단했다. 그가 이끄는 리버풀 FC가 프리미어리그 무패 행진을 이어간 덕분이다. 이달 들어 연패에 빠지면서 기세가 한 풀 꺾이긴 했지만, 클롭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재활 공장장’으로 통하는 그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도 든든하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FC 감독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3일(현지시간) 첼시와 FA컵 경기에서 패배한 뒤 가진 인터뷰 시간.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팀이나 당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게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걱정된다. 구단 차원에서 대비하고 있다”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클롭은 단호했다.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보냐”는 답변. 그 다음 말이 더 인상적이다.

“(그 문제에 관한한) 난 야구모자를 쓴 지저분한 수염 기른 아저씨에 불과하다.”

■ 코로나 사태, 그리고 말의 무게와 전문 영역의 한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저명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혹은 각계 유명인사들이 확신에 찬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마도 기자들이 그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것이다. 저명한 인물이니 뉴스 가치도 충분하다.

질문에 무심코 대답했을 수도 있다. 그리곤 기사를 보고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다. 혹은 언론의 속성을 잘 알고, 속에 있던 말 털어놨을 수도 있다.

문제는 코로나19에 관한 한, 그들 역시 전문가가 아니란 점이다. 그저 ‘무기력하게 늙어가는 중년’에 불과하다.

사회가 세분화되면서 전문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언론학자라고 해서 모든 언론 현상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의사라고 내과, 외과, 산부인과에 예방의학까지 통달한 순 없다. 물리학 전공한 카이스트 박사의 의학 지식이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사진=픽사베이)

평소 같으면 자기 분야를 조금 넘어가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재난 상황이라면 다르다. 이런 저런 전문가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일반인들과는 ‘말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분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혼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롭 감독의 인터뷰 영상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자칭' 전문가들의 가벼운 입에 일침을 가하는 듯 해서다.

그는 코로나19에 관한 한 ‘야구 모자를 쓴 지저분한 수염 기른 아저씨’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답변 속엔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자기 말이 갖는 무게와 자기 전문 영역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답변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많이 혼란스럽다.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말을 자제했으면 좋겠다. 저명한 인물의 말이라고 무조건 크게 키우는 것도 조금 자제했으면 좋겠다. 그게 ‘야구 모자 쓴 수엽 덥수룩한 아저씨’ 클롭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덧글]

1. 솔직히 털어놓자. 클롭 감독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축구 감독 중 이름 아는 사람이라곤 조세페 무리뉴, 지네딘 지단 정도다. 기사에 나온 클롭 감독 관련 내용은 전부 검색해서 알게 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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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롭 감독 인터뷰 영상은 한 지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됐다. 그 분께는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할 예정이다.

3. 인터뷰 영상은 말레이시아의 리버풀 FC 서포터들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그들은 이 영상을 올리면서 "이러니 클롭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라고 했다. (☞ 클롭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