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그동안 삼성에 비판적 입장에 있었던 각계 전문가를 구성원으로 했다. 삼성이 변화의 이정표를 세우려 문을 열었다.
김지형 변호사는 9일 법무법인(유)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구성 등을 발표했다.
김 변호사는 "무엇이 계기든 삼성이 먼저 벽문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향한 신호"라며 "위원회는 삼성과 우리 사회에 가로막힌 벽을 부수고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게 하는 채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위원장 수락에 앞서, 위원회의 구성부터 시작해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달라고 조건을 제시했다"며 "삼성은 제시한 조건을 수용했고, 여러 번 다짐과 확약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은 2020년 사회적 이슈 한가운데 서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경영권 확보 과정에서 편법 승계란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설비 근로자 피해 문제, 노조 와해 등으로 사회적 이슈의 중심이었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지난해 10월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3차 공판에서 오는 17일 4차 공판기일까지 주문사항에 대한 답을 제출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 8월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제공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과 마필 구매비 34억원 등을 뇌물로 판단하고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액은 86억여원이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 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혐의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연결시켜 수사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의 약속대로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삼성 계열사에 준법감시인 제도를 운영하는 등 자구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 이사회와 독립되는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적극적 선택이다.
김 변호사는 "우리는 기업으로서 삼성의 성공을 바라지 삼성의 실패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며 "삼성의 문제에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비판적 시선은 삼성의 최고경영진을 향하며 최고경영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고경영진이 변해야 삼성이 변하고, 삼성이 변해야 기업 전반이 변하고, 기업 전반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며 "삼성이 위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더욱 뻗어 나가기 위해 삼성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는 향후 삼성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쳐 활동하게 된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이 참여해 위원회의 준법감시를 받게 된다. 위원회는 이사회에 속하지 않으며 회사 외부 독립기구의 위상을 갖는다.
위원회는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김 변호사를 포함한 6명이 외부인사로 채워졌다. 법조, 시민사회, 학계, 회사 등 네 그룹으로 나뉜다. 독립성과 전문성에 주안점을 둔 인선이다.
위원회는 계열사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주요 의결, 심의사항에 법 위반 위험요인 유무를 사전 혹은 사후에 검토한다. 법 위반 위험요인을 인지할 경우 조사와 보고를 시행하고, 위반사항 확인 시 시정과 제재 요구 조치를 강구하며 재발방지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김 변호사는 향후 '예방-대응-회복' 등 각 단계 전반에 걸친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열사의 준법감시 프로그램과 시스템 작동을 감독하고, 삼성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강력한 방안도 갖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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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준법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법 위반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의 공정거래 분야, 뇌물수수나 부정청탁 등 부패행위 분야는 물론이고,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에서 법 위반 리스크 관리도 준법감시 대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