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일명 ‘실시간 검색 조작 금지법(실검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잉 입법’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은 자유한국당 측에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말한다. 크게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타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한 정보통신서비스 조작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포털을 겨냥한 것이다.
이를 과잉 입법이라 하는 까닭은 이 법에서 단죄하려 하는 행위에 대해 이미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명 ‘드루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이 미비하다면 어떻게 드루킹을 심판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이 사안은 인터넷기업협회가 3일 주장했듯 사법권을 얼마나 잘 발동시키느냐의 문제이지, 새로 법을 만들어 인터넷 기업들의 발목을 묶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사안의 본질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소수 범법 행위자를 골라내 처벌하는 것이다. 이들의 범법 행위로 다수의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 사업자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다수 이용자는 물론 선의의 서비스 제공 사업자도 피해자란 뜻이다. 정부가 할 일은 사법 수단을 발동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이지, 피해자한테 가해자를 골라내 잡아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게 아니다.
가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사법기관이 그를 잡아 처벌하는 대신 오히려 피해자한테 결과까지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게 공정한 세상이겠는가. 정부가 할 일을 방기하고 책임을 민간기업에 떠넘기는 셈이 된다.
이 법은 또 국가 형벌권을 남용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민간 기업에 ‘사적 검열’을 하도록 부추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수사권도 없고 판결권도 없는 민간 사업자가 범법자의 ‘부당한 목적’을 무슨 수로 사전에 판단할 수 있겠나.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과 검찰이 일거수일투족을 털어도 재판정에서 입증하기 쉽지 않은 것이 그 ‘부당한 목적’이란 것 아닌가.
그건 사법기관의 몫이지 민간기업이 할 일이 아니다. 민간 기업은 단지 기술과 서비스로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매크로나 어뷰징 등 서비스의 부당한 이용에 대한 기술적인 대응은 사업자에게는 의무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조건 같은 것이다. 자기 서비스를 엉망으로 만들어 이용자를 떠나게 할 사업자가 누가 있겠는가. 실제로 인터넷 기업들은 쉴 새 없이 이에 대해 다각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그 점에서 매크로 개발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최근 대법원 판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존중한 점에서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매크로를 곧장 정보통신망법이 규제하는 '악성프로그램'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를 단죄하려면 “사용용도 및 기술적 구성, 작동 방식, 정보통신시스템 등에 미치는 영향, 프로그램 설치에 대한 운용자의 동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한 일은 모두 사법 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다. 결국 민간과 사법이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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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그런 점에서 우리 헌법 원칙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민간의 사적 검열을 조장해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범법자를 색출하기 위해 피해자인 민간기업에 가능하지도 않는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우리 헌법과 합치된다고 주장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우려하는 바가 뭔지를 모르지 않지만 이 점에서 엉뚱한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이 사안은 그래서 새로 이상한 법을 만들기보다 세 주체가 각자의 입장에서 더 노력을 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게 옳다. 기업은 서비스 개선을 위한 기술적 노력을 배가하고, 사법기관은 더 준열하게 악의적인 행동을 찾아내 처별하며, 이용자들은 더 성숙한 방식으로 서비스에 참여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