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가 강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균성의 溫技]혁신의 속도와 방향

데스크 칼럼입력 :2019/12/12 10:04    수정: 2019/12/12 10:23

기사를 연결시켜주는 렌터카 서비스인 ‘타다’의 경우 강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강도는 사회적으로 척결되어야 한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타다는 오히려 강도와 달리 선한 의도로 태어났다. 이동 수단에 불편을 겪고 있는 국민한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사업 모델이다. 예를 들면, 승차거부 없는 자동배차, 쾌적한 환경, 친절한 서비스 등이 그런 것이다.

타다는 그러나 합법과 불법의 담장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비스 자체를 놓고 검찰이 기소를 하고 위법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만 봐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새 법이 만들어졌고 그 법이 현재의 타다 서비스 모델을 상당히 제한하는 쪽으로 명문화된 것 또한 그렇다. 사업자의 선한 의도가 법과 규제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게 현실인 셈이다.

VCNC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사진=지디넷코리아)

사업자와 이 서비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래 지향적인 세상이라면 국민한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행위를 장려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장려는 법과 제도의 신속한 혁신을 의미할 것이다. 그게 곧 진보일 터다. 그런 진보의 의견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발전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사회든 진보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사회는 어느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거나 천지개벽하듯 급변하지 않는다. 가끔 급변하는 사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회는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걸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발전을 의미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혼란을 뜻하기도 하는 거다. 사회가 그 혼란을 감내할 수 없다면 변화는 위험의 다른 이름이다.

변화는 그 점에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지만 ‘관리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속성을 갖는다. ‘방향’과 ‘속도’가 그것이다. 어떤 변화는 방향 자체가 감내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그럴 경우 변화는 사회가 더 성숙될 때까지 유보되어야 한다. 방향에 대한 합의가 있더라도 속도를 놓고 갈등할 수도 있다. 이 때에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변화는 늘 까탈스럽다.

타다를 둘러싼 갈등은 두 번째 범주에 속한다. 타다가 선한 목적으로 태어났고 국민한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장려돼야 한다. 문제는 이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대립하며 기존 ‘사회적 합의’, 즉 법률에 의한 규제산업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선의이고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는 피해를 입힌다면 그 현실 또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충분한 것이다.

타다의 경우 기술을 근거로 한 새로운 상품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스마트폰과는 다른 것이다. 그동안 밋밋한 디자인이던 스마트폰을 접는 방식의 폴더블로 변화시켜 사용성을 높인다면 이를 누가 막을 것이며 장려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 변화의 경우 방향과 속도에 대해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왜? 법률에 의한 건 아니지만 방향과 속도를 높이는 게 ‘암묵적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타다는, 다시 말하지만, 기존 규제산업에 속하기 때문에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일 순 있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인 셈이다. 이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기업가의 숙명이기도 하다. 왜? ‘기업의 혁신 속도’와 ‘사회의 혁신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차이를 좁히는 데 기업이 갑(甲)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카카오와 타다의 다른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카오는 사업을 접는 것까지 포함해 고민한 끝에 ‘속도조절’을 택했다. 기존 사업 모델을 고집하며 사회적으로 갈등하는 비용보다 자신의 속도부터 먼저 조절함으로써 타협하는 모델의 비용이 더 적을 것으로 최종 판단한 거다. 타다는 속도를 조절할 바엔 사업을 접겠다고 판단하는 쪽이다. 그 차이는 뭘까. 단지 기업 규모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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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이가 앞으로 5년 혹은 10년 뒤에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변화는 그 방향성이 옳기만 하다면 일시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버텨내는 과정에서 성숙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는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속도보다는 방향이 먼저다. 속도에 매몰되면 방향이 왜곡될 수도 있다. 그 판단이 기업가의 안목을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선하게 태어났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많은 사람이 원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일단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