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이과 못잖게 문과도 중요하다

[이균성의 溫技] 기술·사회 혁명의 요구

인터넷입력 :2019/11/29 11:17    수정: 2019/12/02 17:14

문과 출신으로 이런 제목의 글을 쓰기가 참 불편하다. 그래도 쓰자고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고, 우리 사회엔 이 이야기가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인공지능(AI) 시대라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AI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리고 AI 전문가는 당연히 이과 출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더 다시 생각해보자. AI 전문가는 당연히 꼭 이과 출신이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더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대답해보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그렇다는 대답은 AI를 기술로만 볼 경우에 나올 수 있다. 유전적 재능과 취향에 따라 선택한 것이라면 이과 출신이 문과 출신에 비해 AI 기술을 더 고도화하는 데 유능할 게 틀림없다. 그 이유로 이과가 문과보다 각광을 받는 것이다.

AI 시대 담론을 불러온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장면(사진=씨넷)

우리 사회의 AI 전문가 양성 담론은 실제로 이런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공계 중심의 전문가 양성 방안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 방안 마련이나 노력 측면에서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는 분석과 비판도 많다. 충분히 근거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을 만회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점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 때문에 빈 구석도 생긴다는 점은 곱씹었으면 한다.

빈 구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한 가지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AI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해서 우리 모두가 개발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점은 명백하다. 오히려 그런 개발자는 전체 인구로 봤을 때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담론에만 매몰되면 AI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다수는 소외되게 마련이다. 소외된 다수를 위한 대안 마련과 담론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을 규정하는 말 중에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라는 게 있다. ‘노동하는 인간’을 뜻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노동권은 곧 생존권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이 생존권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AI는 필경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될 터다. 대체가 아니라 보완이란 주장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보완보다 대체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노동에서 소외된 다수의 생존권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당연히 AI 개발자에겐 그럴 의무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고민할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AI 시대에 이과 못잖게 문과도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이과는 이 문제 해결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AI 기술 개발자 양성이 매우 중요하듯 그 이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풀 존재 또한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호모 라보란스의 위기는 사실 먼 훗날 우리 후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자리 문제는 지금도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 가운데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우선 공약과 정책이 바로 일자리였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정부가 총력을 다해 일자리 창출 정책을 펴지만 크게 개선될 기미는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이 더 가중되고 있는 듯 보인다.

노동권이 곧 생존권이므로, 기술이 촉발한 AI시대의 변화는 단지 노동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관한 모든 영역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노동의 조건과 가치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만큼 그에 맞춰 교육도 일대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단지 AI 기술 교육을 강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AI 시대상을 통찰하고 그 속에서 살아내는 법을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

세금 제도도 일대 개편이 필요할 것이다. 세금은 정부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부(富)와 소득에 부과하는 것일 텐데 앞으로 그 원천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노동으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AI가 창출하는 부는 급격히 늘어날 게 뻔하다. 로봇세라는 말 자체가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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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AI 시대에 접어들수록 AI를 부리는 자와 AI에 노동을 빼앗긴 자의 소득격차는 벌어질 거고, 그 간격만큼이나 복지의 수요가 커질 것이다. 예산 마련과 제도 그리고 인력 문제 등 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것들뿐이겠는가.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 사례를 열거하고 예측하자면 사실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

AI 시대를 대비한 기술 강화 논의는 꽤 많다. 그러나 그 외의 문제는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다들 노동을 잃을 게 너무 분명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호모 라보란스가 안 되면 호모 루덴스(Homo Ludens)도 안 된다. 그래서 문사철(文史哲)은 죽어야 할 때가 아니라 혁명을 해야 할 때다. 더욱 분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