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로부터 시작, 기업의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적정 형량이 10년 이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6일 오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 5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3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번 재판에서는 양측이 이 부회장의 양형에 대해 팽팽하게 맞섰다.
■ 이재용 변호인단 "강한 질책에 거부 못해"…정경유착 부정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의 강한 질책에 수동적 입장에서 지원한 것이며, 단독 면담을 앞두고 청와대에 현안을 건의하지 않았고 결국 현실적인 청탁이나 그로 인한 특혜가 전혀 없었다고 변론했다.
변호인 측은 "최서원은 기업들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는 업체를 설립해 대통령에 전달, 대통령은 기업 총수와의 면담 또는 안종법을 통해 요구를 전달하는 범행 수법을 취했다"며 "이는 국정농단 사건 전반에 공통적인 부분이고 국정농단이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으로부터 시작, 기업이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승마지원의 경우 1차 단독 면담 후 10개월간 지원이 전무하다가 2차 면담 때 대통령의 강한 질책을 직접 받고 나서 신속하게 이행하게 된 것"이라며 "마필의 경우에도 삼성 소유라고 명시적으로 표시했다가 최씨가 강한 불만을 표출한 이후에야 소유권도 아닌 실질적 처분 권한만을 이전했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모바일 헬스케어, 삼성 반도체 평택 공장 등 명백한 그룹 현안도 이재용 부회장의 개인 현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논리라면 어느 기업 현안도 다 총수 경영능력과 관계 있으나 개인 현안이라고 할 수 있어 특검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룹 혹은 개인 현안으로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또 특검 측이 사건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계속적 검은거래'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특검은 장기간에 걸쳐 지원했다고 했지만, 대금을 나누는 방법이지 유착관계의 의미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어 "피고인이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과 삼성SDI가 보유한 주식 가치를 합산해 최소 8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 계산법에 기반한 것"이라며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어떻게 이 부회장 개인이 취득했다고 볼 수 있겠나"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특검은 피고인이 언제 무슨 청탁을 어떻게 했다는 건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주장하지 못했고 증거 역시 말할 것도 없다"며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이 공모한 국정농단 사건 중 하나일 뿐 다수의 기업이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지원한 것"이라고 결론을 제시했다.
■특검 "李 적정 형량 10년 이상…적극적 뇌물 공여 행해"
이날 이 부회장 측의 변호에 앞서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 등 개인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뇌물공여를 행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가중·감경요소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에 대한 적정 형량은 징역 10년 8개월에서 16년 5개월"이라고 주장했다. 특검이 구체적 구형 의견을 밝힌 건 아니다.
승계작업에 대해 대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을 승계작업 일환으로 인정했다고도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SK, 롯데 등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롯데는 아주 소극적이었고, SK는 지원도 하지 않았다"며 삼성의 상황과 구분했다.
■ 새해 1월17일 다음 재판 개시…손경식 CJ 회장 증인 심문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의 '수동적 대응' 관련 변론에 대해 "피고인 측은 향후 정치 권력자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으면 뇌물 공여를 할 것인지,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음 기일 전에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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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다음 재판은 새해 1월17일 오후 2시5분 같은 법정에서 이뤄진다. 해당 재판에는 손경식 CJ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관련 심문이 진행된다. 손 회장 외 증인으로 신청됐던 김화진 서울대 로스쿨 교수, 미국 코닝사 웬델 윅스 회장에 대한 증인 채택은 보류됐다.
한편,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 8월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제공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과 마필 구매비 34억원 등을 뇌물로 판단하고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