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래디컬 마켓' 핵심기술 될 수 있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생산적인 블록체인 담론을 위하여

데스크 칼럼입력 :2019/10/15 14:37    수정: 2019/10/15 22:5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시장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1인 1표를 바탕으로 한 다수결원칙’이 오히려 약자를 소외시킨다. 부의 편중 때문에 자원이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늘 따라다니는 비판들이다. 이런 비판은 21세기들어 더 힘을 얻고 있다. 물론 비판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건 대안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획기적인 방안은 없을까?

수 많은 나라와 정부들이 노력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사회적 약자들의 상실감은 임계점을 넘었다.

에릭 포스너와 글렌 웨일의 ‘래디컬 마켓’은 이런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내놓은 해법은 상당히 ‘래디컬’하다.

'래디컬 마켓'은 데이터를 노동으로 인정할 경우 부의 편중을 해결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래디컬 마켓 홈페이지)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공동소유 자기평가제’다. 내가 갖고 있는 주택의 가격을 스스로 책정하는 방식이다. 그리곤 책정한 가격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자산을 낮게 평가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소유 자기평가제엔 대비책이 있다. 책정된 가격에 구매하겠다고 할 경우 해당 자산을 바로 넘겨줘야 한다. 따라서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선 꽤 높은 가격을 매겨야 한다. 그 뿐 아니다. 타인의 번영은 곧 나의 번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유의 개념도 조금 달라지게 된다.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는 사유 재산세 때문에 생긴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유대를 강화할 것이다. 현재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나의' 소유물과 '타인의' 소유물 간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 것이다." (354쪽)

■ 부의 편중과 소수자 소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제곱 투표’도 흥미롭다. 매년 유권자들에게 일정 수의 ‘투표권’이 부여된다. 그런데 사용 방법이 조금 독특하다. 모든 선거에 한 표씩 쓰지 않아도 된다. 관심 없는 투표는 건너 뛰어도 된다. 그냥 기권이 아니다. 안 쓴 투표권은 모아뒀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행사하면 된다.

그런데 왜 ‘제곱 투표’라고 하는 걸까? 투표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투표권 100개를 행사할 경우 10표, 9개를 행사할 경우 3표만 인정된다. 무더기 표를 어느 정도 제어하기 위한 장치다.

데이터 활용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저자들은 데이터를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부분을 직접 읽어보자.

“데이터 공급이 노동임을 인식하지 못하면'가짜 실업'이 발생한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이유는 사람이 쓸모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공급하는 값진 투입 요소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여흥의 부산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300쪽)

물론 이런 제안들은 그대로 실행하기 쉽지 않다. ‘공동소유 자기평가제’만 해도 그렇다. 저자들은 ‘공동소유 자기평가제’를 도입하면 세금이 훨씬 더 많이 걷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확보한 세금은 공공 복지에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집 가격을 정하도록 하면 일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소유권보다 사용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점 역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많다. 기득권층이 쉽게 용납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 래디컬 마켓에서 블록체인은 어떤 역할을 할까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주장에 유난히 관심을 가진 인물이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다. 덕분에 이 책은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부테린은 왜 ‘래디컬 마켓’에 열광한 걸까? 물론 그는 여러 가지 이유를 꼽았다. 그런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경매’다. 이 부분이 블록체인 기술의 기본 작동 방식과 잘 연결된다는 것이다.

부테린은 블록체인이 래디컬 마켓의 근간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래디컬 마켓’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블록체인 공동체에서도 계속 연구돼 왔던 것들이란 설명도 함께 곁들였다.

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이란 기대를 받아 왔다. 아직 설익긴 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기술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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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지점에선 블록체인의 진짜 가치를 한번쯤 따져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블록체인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혁신 기술’이란 추상적인 평가보다는, ‘진짜 가치(real value)’란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더 효과적일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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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래디컬 마켓’을 이끌어낼 블록체인의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무엇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지디넷코리아 주최로 16일부터 사흘 동안 코엑스에서 열리는 ‘블록체인 서울 2019’가 의미 있는 행사가 되리라 믿는다. (☞ 블록체인서울 2019 바로가기)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