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침탈, 피할 수 없는 경제전쟁이다

[이균성의 溫技] 야만적 침략에 맞서야

데스크 칼럼입력 :2019/08/02 11:33    수정: 2019/08/02 15:30

#많은 종교와 많은 선지자는 인간을 적(敵)으로 삼지 말라고 가르친다. 선(善)이나 정의(正義) 같은 인간적 가치를 핑계로 누군가를 악(惡)으로 규정한 순간 규정한 그 자가 먼저 악인(惡人)이 될 뿐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것은 교과서 속 윤리(倫理)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인간은 다른 인간을 끊임없이 적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선(善)과 정의(正義)를 주장하는 것은 위선일 수 있다.

#사실이 그렇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다. 인류 역사는 그게 종족이든 민족이든 종교든 이념이든 문화든 특정의 가치를 놓고 편을 나누어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를 죽여 왔던 기록에 다름 아니다. 그런 행위는 늑대나 사자 따위가 생존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일과 눈곱만큼도 차이가 없다. 인간도 결국 동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편이 누구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잘 따지는 일이다.

경제 침략 진두지휘하는 아베 (사진=일본 외무부)

#인간은 그러나 동물이면서도 여타 동물과는 다르다. 선(善)과 정의(正義)를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인간만이 경험과 기억을 기록하고 재생하면서 경험과 기억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역사가 쌓이면서 확장된 경험과 기억은 생존 싸움 못지않게 협동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히틀러의 독일이 처절하게 반성했던 것도 확장된 경험과 기억 덕분이다.

#일본은 이점에서 독일과 완전히 다르다. 독일이 확장된 경험과 기억을 통해 뼈아픈 제노사이드를 완벽하게 청산하려 최선을 다해왔다면, 일본은 오히려 끊임없이 향수에 젖어 있다. 침략과 학살의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으며, 되레 전쟁을 일으키는 게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치려 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듯하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일본에 의한 침략과 수탈의 피해자였던 우리의 정부는 일본의 무지막지한 야만성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그들을 비교적 관대하게 대해왔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해방 후 형성된 냉전시대라는 국제정세가 첫 번째 이유다. 이 구도 속에서 남한은 자연스럽게 일본과 함께 미국 편이 됐다. 6.25 전쟁 이후 일본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아야할 형편이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국제 정세 속에서 그 두 가지 이유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1978년 사회주의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고, 1991년 냉전의 한 축인 사회주의 소련이 해체됐으며, 이후 우리는 이들 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했다. 이미 20세기말에 냉전은 사라졌다. 우리의 최대 수출국은 사회주의 중국이고, 미국과 북한도 수교의 길을 준비해가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올라 섰다.

#일본으로서는 달라진 국제정서와 우리 경제 급성장에 배알이 뒤틀릴만하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나라 일본이 정치 경제적으로도 동북아에서 입지가 약화되는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의 경제 도발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직접적인 도화선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처럼 달라진 국제 정세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카드였을 수 있다. 그들은 동북아 평화를 원치 않는다.

#일본이 2일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키로 결정한 건 우리 사회 일부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더 큰 ‘경제전쟁’을 시작했다는 증표로 해석될 수 있다.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1995년부터 시작된 WTO 체제, 즉 자유로운 세계 무역에 대한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당연히 자국 우선이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힘 있는 바 크다. 그리고 그 첫 총성의 격전지로 한반도를 겨냥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WTO 체제에서도 동북아에서 만큼은 ‘북중러 對 한미일’의 선명한 냉전구도가 형성되는 게 이익이 되지만, WTO 체제를 마냥 거부할 명분이 없어 그동안 야욕을 숨겨왔으며, 美中 무역 갈등을 계기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마침내 결코 반성하지 않는 ‘침략자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침략자가 다시 역사를 100년 전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감성적이고 단선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그건 전쟁에 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발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전쟁이라면 치밀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문제는 일본의 경제 도발이 결국 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WTO 체제 및 동북아 평화경제 체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우리가 이해(利害)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원하고 일본은 그 체제를 깨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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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동반성장해야 한다는 인류애 차원에서나 한민족이 동북아의 여타 국가들과 평화와 번영을 누려야 한다는 민족애 차원에서나 일본은 훼방꾼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적으로 삼은 것이다. 100여 년 전에는 총칼로 짓밟고 학살하며 침탈하더니 이제 경제생태계를 파괴하는 쪽으로 방식만 바뀐 것이다. 민족적 차원에서나 인류 차원에서나 일본을 강력히 징치해야 한다.

#일본에 굴복하면 작은 이득이야 취하겠지만 인류와 민족에 큰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