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이 데이터 분석 등에 탁월한 외부인재를 영입하는 등 '데이터가 이끌어가는 회사'로 바뀌기 위한 힘쓰고 있다. 수십년간 쌓여있던 데이터가 새로운 고객 확보와 수익성을 강화할 '무기'가 됐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에서 데이터로 변화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인 인물들을 직접 만나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신한은행 -김철기 빅데이터센터 본부장
② KB국민은행 -윤진수 데이터전략본부 전무(KB금융지주 데이터총괄책임자 겸임)
③ 우리은행 -황원철 최고디지털책임자(CDO·상무)
④ 하나금융지주-김정한 최고데이터책임자(CDO·부사장)
⑤ NH농협은행-이상엽 빅데이터전략단장
⑥ 한국카카오은행
NH농협은행의 이상엽 빅데이터전략단장은 위치 기반 오프라인과 온라인 연계 서비스(O2O)를 제공하는 핀테크 업체 '얍'에서 부사장으로 재직, 신기술의 최전방에 서있었다. NH농협은행으로 이직을 하겠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어찌 핀테크에서 NH농협은행을 가겠느냐'고 놀랐다고 한다. 이상엽 단장 역시 반신반의했지만, 바깥에서 보는 NH농협은행과 안에서 겪은 NH농협은행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젊고, 빠르고, 열정적이라는 것.
NH농협은행 이상엽 빅데이터전략단장은 이를 원동력으로 은행의 '데이터 테크(Data Tech)'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객이 아직 결정하진 못했더라도 마음을 먼저 읽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해주고 비대면 채널의 상품 가입률을 높이는 '황금 경로'를 만들겠다는 부연이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NH농협은행 본사에서 이상엽 단장을 만나 NH농협은행의 빅데이터의 차별점, 빅데이터로 달라질 미래상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은행 사업모델 변혁기…속도 낸다
NH농협은행 이상엽 단장은 현재를 은행의 비즈니스모델이 역사적으로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단장은 "은행은 상품 제조와 유통까지 수직적 통합이 된 곳인데 시대가 변하면서 비효율화가 발생하고 규제와 정책이 풀리는 상황과 직면하고 있다"며 "은행 변화의 핵심은 데이터라고 보인다.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은행의 가장 큰 숙제고 빅데이터전략단도 이 과제를 풀어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의 가장 큰 기회이자 위기는 오픈뱅킹"이라며 "거래 정보 접근권과 계좌 접근권이 열리면 은행 역사에 굉장히 큰 변혁이며 예대마진 중심의 은행 비즈니스 모델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도 오픈뱅킹을 올해 안으로 추진하겠다는 방향이기 때문에 이상엽 단장은 방향은 물론이고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마이데이터 등 오픈 뱅킹 시대에선 누가 빨리 고객의 니즈를 감지하고 가장 좋은 제안을 선호하는 채널을 통해 빨리하느냐가 핵심 역량"이라며 "속도의 차이는 즉 성과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전략단은 은행 내 마케팅부문에 있다가 2018년 초 디지털금융부문으로 소속이 변경됐다. 디지털과 데이터를 한 데 묶어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다. 빅데이터전략단은 빅데이터기획팀·빅데이터분석팀으로 구성됐으며 기존 업무 효율화와 다양한 신규 사업 모델 개발·머신러닝 등을 활용한 분석 모델 등의 업무를 진행 중이다.
■ 200~300개 변수·시나리오로 상품 추천 알고리즘 개발
이상엽 단장은 고객이 고민 중인 상품,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상품을 더 빨리 읽어 추천할 수 있게끔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상품을 어떻게 하면 잘 팔까' 보다는 '김농협(가명) 고객은 지금 어떤 상품이 필요할까'로 고객 접근 방식이 변하고 있다"면서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매일 약 30만건 이상의 고객 주요 행동이 체크되고 있고 수백개의 변수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추천 상품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목돈이 들어온 고객, 첫 급여 이체가 발생한 고객, 보험금이 입금된 고객, 최초 산부인과에서 결제한 고객 등 다양한 고객 행동을 수집하고 이중 200~300개의 변수를 통해 추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 단장은 "영업 사원이 고객을 보는 측면이 제각각 다르고 관점도 제한적이다보니 상품 추천에 대한 품질과 균일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며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추천 모델은 상품 추천의 질과 균일성을 보장해 직원들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NH농협은행은 'CRM(고객관계관리)360'이라고 불리는 솔루션을 통해 영업점을 지원하고 있다. 이상엽 단장은 "흩어져 있는 고객 기본·추천·섭외 정보와 디지털 성향, 이탈 가능성 등 다양한 정보를 모아서 직원들이 한눈에 보기 쉽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이상엽 단장은 비대면 채널에서 금융 상품 탐색만이 아닌 금융 상품 가입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황금 경로를 빅데이터를 통해 개척하고 있다. 이상엽 단장은 "NH농협은행은 애플리케이션(앱)과 웹을 통해 월 평균 3억건 이상의 접속이 발생하는데 이런 접속을 세일즈로 바꾸느냐가 향후 핵심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상품을 비대면 채널서 상품을 조회한 고객의 80% 이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이탈하는데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가입 상담과 가입까지의 비대면 고객의 경로를 세세하게 분석해 이탈 이유와 함께 대응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데이터 테크 시대…'플랫폼적 사고' 필요
이상엽 단장은 금융과 유통 등 산업별 경계가 점점 없어지는 '탈경계' 시대를 데이터가 중요한 '데이터 테크'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데이터 테크' 시대가 온다고 했다. 즉,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요구에 부응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다"며 "금융도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에서 벗어나 은행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과 그 고객들이 이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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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장은 이어 "알리바바가 오프라인에 진출하고 금융업을 하게 될 지 누가 예측했겠는가.경계가 점점 없어지는데 그 기본 바탕엔 데이터와 기술이 있었다"며 "움직임, 그 자체가 데이터다. 데이터가 한두개 모이면 별로지만 수억개씩 모이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하는 큰 유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상엽 단장은 빅데이터 전략 수립을 실행하기 위해 데이터에 친숙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직원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NH농협은행을 '올랩'이라는 데이터를 쉽게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는 "실제로 빅데이터 분석을 실습해보는 것이 중요한데, 분석 환경은 똑같지만 데이터만 실제 데이터가 아닌 '빅데이터 분석 샌드박스'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