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신용카드가 처음 생겼을 땐, 카드라 하니까 사람들이 '트럼프 카드'를 생각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신용카드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카드를 가진 사람도 없고, 쓸 곳도 없었죠. 지금 암호화폐 시장이 딱 그래요."
황용택 페이코인 대표는 30년 경력의 '카드맨'이다. 1990년대 초 삼성카드에서 시작해 현대카드를 거치면서 카드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신용카드보다 트럼프 카드가 더 유명하던 시절을 경험했던 그는 또 다시 '블록체인'이란 새로운 결제 시장을 마주했다.
블록체인으로 거창한 걸 해보겠다고 뛰어든 건 아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동안 내던 결제 수수료를 조금만 덜 내게 된다면, 그만큼만 세상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블록체인의 본질이 뭔지, 블록체인으로 무엇을 하려느냐는 질문도 수 없이 되뇌었다. 그 때마다 그는 "효율성과 편리함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란 결론에 도달했다.
돌아보니 30년 전 신용카드가,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이 딱 그랬다.
■ 암호화폐 결제 시장, '다날'과 '카드맨'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시장
페이코인은 암호화폐 결제 플랫폼 페이프로토콜을 제공하는 회사로 올 1월에 설립됐다. 통합결제 기업 다날의 자회사이기도 하다.
황 대표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이 신용카드 초창기와 똑같다고 진단했다. 당시 그는 회원 확보와 가맹점 확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떠안고 있었다.
"회원은 가맹점을 찾고, 가맹점은 회원을 찾는 시절이었어요."
지금 암호화폐 결제 시장도 마찬가지다. 가맹점은 암호화폐를 받아야 되냐고 묻고, 암호화폐 이용자는 어느 가맹점에서 쓸 수 있는지 묻는다. 그는 "신용카드가 시장을 키웠던 방식을 암호화폐 결제 시장에도 적용하면 잘 연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다날이 페이코인을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닭이 먼저일지, 달걀이 먼저일지 갈팡질팡한 문제의 답은 결국 가맹점이었다. 황 대표는 "가맹점 망을 잘 구축하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구매자는 경험을 통해서 점차 넘어온다"며 "그런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지만, 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가맹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회원 수도 늘어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결국, 암호화폐 결제 시장도 암호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을 얼마나 늘리느냐가 실제 우리 생활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회원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가맹점을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 페이코인은 회사 이름과 동일한 자체 암호화폐 페이코인(PCI)으로 결제가 가능한 온라인 가맹점 500곳을 확보했다. 도미노피자, 달콤커피 등에서도 실물 결제가 가능하다. 올 상반기 내에는 온라인 상점, 편의점 등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가맹점 수를 8천 개로 늘릴 계획이다.
그는 "가맹점 입장에서는 새로운 결제수단이 나왔을 때 불안한 것뿐"이라며 "가맹점은 결제 대금을 정확히 받을 수 있다는 것만 보장된다면 불안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맹점이 갖는 불안함은 '암호화폐의 현금화' 부분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가격이 수시로 변하는 암호화폐의 불안정한 특성 탓에,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폭락할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바로 그 부분을 우리 페이코인이 보증하는 것"이라며 "가격 변동의 리스크는 페이코인이 진다"고 설명했다. 페이코인이 암호화폐를 받아 현금(법정통화)으로 정산해주기 때문에 가맹점은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날의 자회사라는 점도 가맹점에 신뢰성을 가져다주는 큰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페이코인은 어떻게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정산할까. 가격 변동의 리스크는 어떻게 헤지하는 걸까.
이에 황 대표는 "외환거래에서 환율 방어를 하듯이 그와 비슷한 개념의 내부 알고리즘에 따라 정산한다"며 "자세한 알고리즘은 공개하게 된다면 누군가 이를 이용해 시장을 조작,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 "기회 많은 동남아·일본 시작으로 미국, 유럽까지 확대"
모든 후발 주자가 그렇듯 암호화폐 결제도 결국 기존 결제 시장을 뛰어넘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황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비자와 같은 신용카드도 경쟁자가 될 수 있겠지만, 국내는 외상거래의 니즈가 많기 때문에 초기 타겟 시장은 신용카드는 아니다"라며 "단기적으로는 선불 시장이나 상품권 시장에서 먼저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도 한국보다는 해외를 목표로 잡았다.
그는 "결제 사업자에게 우리나라 시장은 무덤"이라며 "이미 한국의 결제 시장은 기존 결제 수단을 바꾸기엔 수수료나 속도 등의 편리함을 모두 갖춘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따라 페이코인은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속도, 수수료, 비효율성의 문제를 해결한다. 올해 안에 동남아시아와 일본 시장을 진출을 목표로 하며, 내년부터는 미국, 유럽도 진출할 계획이다.
황 대표는 "일본 시장은 현금 아니면 결제가 안 되는 데가 많아 간편 결제에 대한 니즈가 있고, 동남아 시장도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반면, 휴대폰 게임 시장은 크고 있어 암호화폐가 사용되기 쉬운 환경"이라며 "일본과 동남아 시장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은 다날과의 파트너십을 적극 활용한다. 그는 "다날이 해외 진출을 하면서 미국·유럽 시장에도 한국에서의 다날 역할을 해줄 회사들이 여럿 있다"며 "그런 회사들과 연계해 가맹점도 이미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국 시장에서는 가맹점 수수료 1%를 무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키는 데 주력한다.
황 대표는 "극단적으로 보면 암호화폐 결제는 수수료가 없어도 되지만, 구조적으로 원화 정산 등에 따른 리스크 비용이 있기 때문에 현재 수수료가 없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 1%의 수수료를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페이프로토콜 안에서 페이코인 뿐 아니라 모든 암호화폐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 "페이코인, 살아남는 코인 될 것"
황 대표는 코인의 가치를 "사회에 깔려 있는 비효율성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카드회사들은 50-70년 동안 쌓아놨던 인력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에 그 비용을 내라고 한다"며 "우리가 그렇게 많은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결제 시장은 카드사들을 위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은 수수료를 5~10%까지 내는 반면, 페이프로토콜의 수수료는 1%"라며 "많게는 9%까지 깎은 수수료가 바로 코인이 만들어낸 가치"라고 설명했다.
코인의 발행량은 정해져 있는데, 코인의 가치가 계속 상승한다면 그 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이용할까.
황 대표는 이에 대해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슈"라며 "앞으로 지켜봐야 할 숙제이자,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페이코인의 전체 물량 중 90%는 결제 시장에서 돌아가고, 10%는 거래소 시장에서 돌아간다고 하면 안정적일 것 같다"며 "달러처럼 투자가치를 가진 화폐로서 동작하게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페이코인의 고민은 대부분의 암호화폐 업계가 그렇듯 '코인의 생존'이다. 황 대표는 "살아남는 코인이 돼야 한다"며 "결국 실생활에 사용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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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코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편리함과 사회적 비용 절감을 꼽았다. "철학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하기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며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고, 블록체인이 없어도 기존 서비스만큼 편리하게 만들어야 그 가치가 인정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페이코인이 결제 시장에서 암호화폐가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며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코인' 하면 제일 먼저 '페이코인'이 떠오를 수 있도록 국민코인이 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