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최초 폴더블폰이 불러올 ‘승자의 저주’란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보기에 따라 제목이 섬뜩하다. 또 잔치하는 집에 재 뿌리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글을 다 읽지도 않고 그렇게 오해하는 독자도 많았다. 그런데도 이 제목을 고집했던 건 아주 오래 고민한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올바른 관점으로 누군가는 삼성전자의 질주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생각을 한 건 이미 3년 전부터다. 2015년 9월에 쓴 <삼성에 묻는다, 폰을 왜 접으려하나’>는 제목의 칼럼이 처음이었다. 한 번으로 부족해 2018년 8월에 같은 제목으로다시 썼다. 제목은 다르지만 위 칼럼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이어지는 칼럼을 통해 삼성전자에 말하고 싶었던 바는 최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쟁자를 압도할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거였다.
#‘승자의 저주’는 지나친 출혈 경쟁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기술 산업에서 ‘최초’를 내세운 많은 상품에서도 목격되기 때문이었다.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칼럼의 고민 방향이었다. 3년 전에는 ‘쓰임새’에 대한 천착을 강조했었다. 2000년대 중후반 노키아나 삼성전자가 애플에 진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쓰임새에 대한 고민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 거다.
#폴더블이 대세라면 애플도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폰에서 보여준 것처럼 기술 중심의 회사들을 가만히 지켜본 뒤 특유의 장점을 기반으로 플랫폼과 생태계를 내세워 일거에 뒤집기를 시도할 것이다. 삼성이 폴더블폰을 출시할 때는 이 상황까지 대비해 그야말로 ‘초격차 전략’을 구사했으면 했다. 애플에겐 이 기술이 없는 만큼 시간은 충분하다고 봤고 비장의 무기를 장착했으면 했다.
#피처폰 시대와 달리 스마트폰은 디스플레이가 전면을 차지하고 이를 접어야 하는 만큼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았다. 삼성은 갤럭시노트7 배터리 화재 파동을 겪으며 이미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 파동은 치명적이었고 중국에서 한때 1위를 달렸던 삼성전자가 0%대 점유율까지 추락한 직접적 원인이었다.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삼성 제품은 무모한 ‘모험’이란 딱지가 붙을 수 있다.
#‘쓰임새’와 ‘완성도’란 두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장장 7~10여년의 개발 끝에, 그리고 제품 출시 임박이라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 지 3~4년 만에, 제품을 공개하고 출시를 목전에 뒀다. 그런데도 마음 한 쪽에서 뭔가 불안했고, 위 칼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막판 경각심을 높이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면 했다. 갤럭시 폴드가 한국 산업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쓴 것처럼 ‘최초’와 ‘시장 선도자(First Mover)’가 반드시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최초’와 ‘시장 선도자’가 일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는 구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시장을 장악하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술의 삼성’이 시장선도자가 되기 위해서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화두임에 분명하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쓰임새’란 고차원적인 우려보다는 기본에 가까운 ‘완성도’에서 탈이 나고 말았다. “우리는 베타테스터가 아니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의 조롱은 다분히 ‘악의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냉철한 판단은 돋보였다. 고백하지만, 그 기자의 지나친 조롱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여러 시간 부끄러워한 끝에, 삭제하였다. 독자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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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출시 연기 결정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실리를 택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평가하는 게 아니다. ‘정직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사주는 것이다. 높은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이의 ‘정직한 결정’이라 함은 소비자를 감동시키지 못 하는 상품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은 품질경영을 강조했던 이건희 회장이 애니콜 수십만 대를 모아서 불태워버렸던 일화를 다시 뼈저리게 상기해야 한다.
#지난 칼럼에서 시장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모방’과 ‘예술’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기술은 반드시 모방된다. 그것도 누군가는 예술적으로 모방한다. 예술적인 모방은 창조가 된다. 애플이 가장 잘 하는 일이다. 그런데다가 그 예술에 능한 자가 소비자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는다. ‘기술’과 ‘최초’ 위에다 ‘예술의 환상’을 덧붙이는 게 삼성에게 주어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