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뭘 배우고 있을 지 궁금하다

[이균성의 溫技] 독일 벤치마킹 방법

데스크 칼럼입력 :2019/03/20 14:32    수정: 2019/03/21 09:32

#정치에서 극중(極中)이라는 건 참 애매하다. 좋게 보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중도(中道)가 되겠다는 의지 표명일 것이다. 나쁘게 보면 아직 본인의 중심(中心)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주체로서 자기 철학을 전개하기보다 타자의 눈치를 보며 중간에서 뭔가를 도모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정치인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서 이 낯선 용어를 화두로 제시했다.

#그의 화두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 않다. 진보는 물론 보수(특히 국정농단 사건으로 초토화된 세력)마저 전혀 극복하지 못했고, 양쪽에서 떨어져 나온 정치인을 모아 새 정당을 만들었지만, 이어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그와 개혁 보수를 주장하는 이가 함께 만든 당은 아직까지도 내부 노선 싸움 하느라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그런 당이 어찌 국민 통합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극중은 그래서 안철수식 정치 실험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그는 대선 패배 후 급조된 국민의당 대표가 되기 위한 전당대회 출마 선언문에서 극중과 관련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에 도움이 되는 길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 선의(善意)는 믿는다. 하지만 그걸 하기 위한 노선, 즉 방법론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치 철학의 부재와 현실 정치 경험의 부재 탓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前) 대표

#안철수 근황이 다시 궁금한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안철수의 선의조차 없는 정치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파당을 나눠 싸우는 기술로만 무장한 모리배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둘째, 그가 공부하러 간 곳이 독일이기 때문이다. 독일이라고 해서 지상천국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에 얽힌 온갖 문제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그 나라보다 마땅한 곳도 없어 보인다.

#안철수가 공부하러 간 곳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다. 그는 대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적임자’라며 다른 후보와 차별화했다.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택한 곳이 독일 특히 막스플랑크 연구소라는 건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이 시대 대통령은 테크노크라트일 필요가 크다는 신념에서 정치를 시작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철학과 이론을 무장하기에는 이곳이 안성맞춤인 거다.

#그는 독일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고 그걸 산업에 어떻게 연결시키는지를 집중 탐구할 듯하다. 그걸 꿰뚫는 인재가 리더가 되는 걸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거기다 한 가지를 덧붙였으면 하다. 테크노크라트는 엔지니어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대정신으로 사회 전체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은 발전과 편리를 낳지만 동시에 엄청난 갈등도 불러오는 탓이다.

#카풀 논란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곧 노동자와 기업 사이에 큰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기술이 노동을 소외시키는 탓이다. 그가 눈여겨봤으면 하는 두 번째 대목이 이 지점이다. 독일 ‘인더스트리4.0 추진체계’ 말이다. 기술혁명 과정에서 노동을 소외시키는 게 아니라 노동자를 주체로 인식하고 적극 참여시키는 방법을 배우기 바란다.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 회장과의 대화를 추천한다.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을 제치고 유럽 경제 맹주로 자리매김하면서도 사회 혼란이 적은 까닭을 이해하고 이를 우리 경제에 접목시키기 위해 이 두 분야, 즉 과학기술 대계(大計)와 노사 협력방안에 대한 탐구로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기왕 독일에 갔으니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길 권한다. 지속성장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할 사회문화적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지의 문제가 그거다.

#키워드는 3개 정도다. 명백히 잘못된 과거에 대한 확실한 청산, 민족의 통일, 그리고 교육이다. 우리 사회가 독일보다 못한 측면이 있다면, 앞에 쓴 두 가지도 해당되겠지만, 아래 세 가지는 그야말로 비교불가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그들은 이미 통일을 이룩했고, 뼈를 깎는 인내로 학살과 독재의 과거를 청산했다. 이 모든 게 교육에 힘 있는 바 크다. 국민이 부와 함께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다.

관련기사

#우리 사회 유력자는 주로 미국이나 일본 통이다. 그러면서 두 나라를 싫어하는 자와 좋아하는 자로 나뉘어 싸우는 형국이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밝은 자는 드물다. 독일 전문가는 더 드물다. 여행을 가도 겉 풍경만 보고 온다. 안철수는 그러지 말길 바란다. 분단과 학살의 아픈 과거를 청산함으로써 극복하고 과학기술 대국을 건설한 것만으로도 독일은 공부할 가치가 크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독일에서 답을 찾으면, 그건 극중(極中)인가, 좌(左)인가, 우(右)인가. 그가 돌아올 자리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