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의 溫技] 김정주는 10兆로 뭘 할까

데스크 칼럼입력 :2019/01/04 11:30    수정: 2019/01/04 17:16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가 자신과 부인의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하려고 추진한다는 소식이 충격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줄곧 게임 업계 1위였던 회사의 최대주주가 기업을 매각하려 한다는 점과 그로 인해 한국 게임 시장에 적잖은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충격이 컸던 만큼 언론들은 그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는지 그 배경을 추정하고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배경 파악이 중요한 까닭은 그게 그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토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에 따라 그의 진로 또한 달라진다는 뜻이다. 또 ‘그의 진로’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넥슨 매각으로 확보한 10조원이라는 거금을 갖고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의 문제다. 여기에 관심을 갖는 건 10조원이라는 거금과 그의 상징성이 그저 한 개인의 문제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김정주 NXC 대표.

#언론이 분석한 배경은 크게 보아 한 가지고 잘게 나누면 세 개다. 본질적으로 “(사업에) 지쳤다”는 것이다. 지친 이유가 세 가지다. 첫째가 규제(그리고 나쁜 여론)다. 둘째는 넥슨 사업의 비관적 전망이다. 셋째는 친구인 진경준 전 검사장의 ‘공짜 주식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세파에 시달린 것이다. 이중에 첫째 이유에 대해서는 넥슨 측이 여러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부인한 바 있다.

#첫째와 둘째는 구분은 했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여러 이유로 게임 사업 특히 넥슨의 미래에 대해서 밝게 보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합리적이고 타당한 비즈니스 전망에 따라 투자자의 입장에서 사업을 철수하는 셈이 된다. 투자 업계에서는 이를 엑시트(Exit)라 부른다. 가장 낮은 가격에 참여해 가장 높은 가격에 빠지는 게 가장 합리적인 엑시트다.

#이는 김정주 대표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처럼 ‘게임의 장인’으로 보기보다 ‘인수합병(M&A)의 귀재’로 여기는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 최적의 매각시기이고 그로서는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면 그는 애초의 분석(“지쳤다”)과 달리 투자자로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10조원은 또 다른 투자의 샘물이 된다.

#김 대표가 수년전부터 게임 외 다른 분야 투자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는 여러 증언이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이 가능성이 높다면 기술 스타트업에겐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바이오 등 미래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분야에서 확장성이 큰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이 주목된다. 어쩌면 이들 기업을 발굴하는 데는 국내로 제한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김 대표 결정은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대규모 투자 유인효과가 있다. 성숙 시장인 게임 분야엔 좀 더 안정 희구적인 자본(국내외)이 들어오고 김 대표 자금은 다소 리스크가 있더라도 미래지향적으로 쓰이면서 시장의 구조개혁과 자금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김 대표의 지분 매각 결정이 현실이 됐을 때 김 대표 본인이나 국가의 산업발전을 위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관련기사

#김 대표의 매각 결정 배경은 실제로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겠지만 만약 세 번째 이유가 결정적인 것이라면 10조원의 향방, 즉 ‘그의 진로’를 점치는 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또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 되어서 전망조차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그게 결정적인 이유라면 김 대표는 꼭 게임 사업이 아니더라도 기업하는 일과 세상 그리고 민심에 적잖게 환멸을 느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라면 김 대표 스스로 삶과 세상에 대해 재정립하기 위한 상당한 여유기간이 필요할 거다. 돈을 떠나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다시 찾고 남은 인생을 무엇으로 채워나갈 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더 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세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이제 무슨 이유에서건 삶의 전반기를 정리하려는 듯하다. 후반기의 새 출발을 위해. 그의 인생 후반기에는 어떤 타이틀이 주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