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게임 정책은 지난 정부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와 학계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낙제점을 간신히 면한 수준이다.
규제 개선과 진흥 그리고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 등 게임 관련 정책이 모두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산업은 문화콘텐츠 중 일자리 창출과 수출 주역이다. 그럼에도 게임 산업은 지난 정부부터 지금까지 약 12년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게임 인식 개선과 규제 개선 제자리걸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당시 게임 인식 개선과 자율 규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지난 정부의 게임 규제 일방통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였다.
문체부가 지난 2017년 7월 민관 합동 게임 제도 개선 협의체를 출범 시킬 때만해도 규제 완화는 임박해 보였다. 협의체에서 활동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강제적 셧다운제와 PC 게임 월 결제 한도 폐지 및 개선에 한껏 목소리를 높였던 영향이다.
강제적 셧다운제와 PC게임 월 결제한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대표적인 게임 규제법이다. 이중 강제적 셧다운제는 여가부가 지난 2011년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 등을 이유로 시행했지만, 객관적인 실효성은 없어 규제 폐지 1호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부모가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도 존재해 이중규제 논란 역시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협의체가 내놓았던 의견 대부분은 묵살 당했다. 협의체가 문체부의 전시성 사업으로 평가 절하된 이유다.
규제 개선은 커녕 오히려 게임 인식은 더 나빠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과물입(중독) 질병 코드 등재 추진 소식이 전해진 이후다. WHO는 다음 달 게임과몰입 질병 코드 등재를 재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게임 관련 질병 코드 추가가)확정되면 바로 받아드린다"는 입장을 전해 게임 인식 개선을 기대했던 업계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의 대응도 모자란 상황에 복지부가 WHO 정책 추진에 동조했다며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게임 산업 수출 역군이지만...업계 "진흥 기대 없고, 새 규제만 없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업계는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도 게임 규제 및 진흥 정책 개선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새 규제가 없기만을 바랐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어느 누구도 현 정부의 진흥 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 새 규제만 없기를 바라고 있다"며 "소통하겠다고 했는데, 더 이상은 희망 고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어떤 결과물도 없지 않았나. 정부와 관련 부처의 무능함이다"고 질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업계에선 규제 개선을 떠나 문재인 대통령이 게임 산업의 인식 개선을 해주기를 어느 때 보다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게임은 콘텐츠 산업 중 해외 수출 비중 절반이 넘는다. 해외에선 우리나라 게임 산업을 부러워하는데, 유독 우리 정부는 게임을 찬밥 취급을 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2018년 대한민국 게임 백서'에 따르면 2017년 국내 게임 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80.7% 증가한 59억2천300만 달러(약 6조 6,980억 원)다. 게임이 콘텐츠 산업의 수출 비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임 종사자 수는 약 8만 명으로, 콘텐츠 산업 종사자(약 64만 명)의 비중 6%가 넘는다.
게임 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중대형 게임사들이 주도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중론이다. 반면 업계 일각에선 규제 탓에 중소게임사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A 중소게임사 대표는 "셧다운제와 PC게임 월결제한도 규제는 스타트업과 중소게임사들에게 독약과 다름없다. 두 규제 이후 PC 게임 개발은 포기 상태다. 모바일 게임으로 사업을 전환했지만 이젠 희망은 안 보인다"며 “속도 경쟁력이 높은 중국 게임사, 자금력과 인력풀이 강점인 중대형 게임사들과 경쟁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게임 사업을 포기하는 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게임 협단체와 학계 "아쉽고 답답"
게임 협단체들과 학계에서도 현 정부의 게임 정책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소통한 만큼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삼하 서강대 평생교육원 게임기획과 교수는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게임 산업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산업 제도 개선과 생태계 변화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셧다운제는 미래 게임 사업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규제다. 게임물 등급을 사전에 관리하는 것도 일종의 규제"라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게임 콘텐츠 관련 정책 쪽에는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 (규제 개선에)답답한 마음이 있다. 결과적으로 나온 게 없으니 더 그렇다. 게임 협단체와 업계, 정부, 국회 모두 함께 규제 개선에 노력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아쉽고 답답하다. 이전 정부와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게임 만을 위한 전담 기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잘 적용해야 답답함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온고지신이 필요하다. 새로 취임한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적극 나서주셨으면 한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게임법 개정을 위해 문체부 등 관련 부처와 국회가 같이 공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 정부가 자율 규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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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게임자율정책기구 초대 의장)는 "(규제 개선 등 게임 관련 정책은)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풀린 규제는 없다. 노력에 비해 결과도 미흡했다고 생각한다"며 "자율 규제는 이제 시작 단계다. 나름 사정이 있겠지만, 규제 모델이 개선되기 위한 과도기로 보인다"고 전했다.
규제 개선에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힌 황 교수는 "자율 규제에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규제 이슈가 발생하면 자율 규제를 우선시하고, 정부는 뒤로 빠져야한다. 그래야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