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적으로 4차 산업혁명 촉진 정책을 발굴하거나 규제를 발굴해 조정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두고 지난해 말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린 평가다. ‘4차 산업혁명 대응 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의 이같은 지적은 국회와 산업계는 물론 일부 정부부처 내에서도 쓴소리를 내고 있다.
4차위는 출범부터 시작해 2기 활동이 시작된 이후에도 같은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연임으로 다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장병규 위원장도 언론의 지적에 심의 조정 기능만 갖추고 있다는 위원회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혁신성장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을 맡고 있지만, 집행 권한이 없는 무늬만 컨트롤타워일 뿐이다.
인수위원회 활동 없이 출범하면서 조직의 기능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 기구에 기대한 수준의 권한을 여전히 못 갖추고 있는 점은 4차 산업혁명 대응이라는 무게감과 큰 차이가 있다.
■ 갈등 봉합+정책 선도..알맹이가 빠진 껍데기
4차위의 문제점은 결국 태생적인 한계를 피할 수가 없다. 정책의 결정 권한을 갖추지 못하고 심의 조정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없다는 뜻이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논의 당시에는 규제 개혁과 4차 산업혁명의 대응 목적 등을 다룰 수 있고 범부처를 아우르는 독립기구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4차위가 출범하면서 어떤 결정 권한을 갖지 못하면서 외부 전문가 위주의 임기 1년 형태 자문위원회로 전락한 측면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 직속기구로서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했지만 모법 없이 대통령령으로만 조직이 설치되면서 존재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바이오헬스 분야를 다룰 때 힘을 싣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부 장관도 참여해야 했지만 당연직 위원에서 빠지게 됐다”며 “외부 특정분야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한 분야보다 여러 분야에 걸쳐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분석할 수 있는 위원이 더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조직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참여자, 법적 근거 등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한도 없다보니 범부처의 통합 논의를 이끌지 못하고 다시 개별 부처로 안건이 돌아가는 등 조정 기능까지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이끌어냈지만...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권한을 갖지 못했지만, 해커톤을 통한 이해관계자 간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점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혁명’이라는 표현처럼 4차 산업혁명 관련 주요 의제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4차위가 초점을 맞춘 셈이다.
이를 통해 가명정보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은 일부 합의를 이끌어냈다. 물론 수차례의 논의 후에 4차위의 권한이 아니라 국회의 힘을 빌려 입법을 거쳤지만 활발한 논의를 진행한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반면 수차례의 해커톤이 모두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해커톤으로 모든 주제의 결론을 쉽게 지을 수는 없지만, 카풀과 같은 공유경제 논의에서는 택시업계의 불참으로 4차위의 위상을 무색하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또한 4차위 출범 직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논의가 한창이었지만 당시 4차위는 어떤 논의도 하지 못했다. 각 부처 공직자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쏟아져 나왔지만 4차위는 한발 빠져있는 태도를 취하면서 블록체인 업계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전통적인 ICT 분야인 방송통신 관련 논의도 결여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데이터 기반의 방송통신 규제 개선 과제 발굴이나 초연결 인프라 위에서 소비될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5G 통신과 10기가 인터넷과 같은 인프라 정책과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안이 심의된 적은 있지만 이외의 방송통신 분야 논의는 전무했다.
■ 4차 산업혁명 대응 중심에 설 수 있을까
4차위가 앞으로 기대를 받은 만큼의 기능과 권한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예산조정권이나 장관급 부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연직 정부위원인 과기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다섯 명에 불과한 장관의 회의 참석을 강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국회 입법조사처의 의견이다.
즉, 범부처 정책 심의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범 정부 차원의 추진체계 정비를 위해 입법조사처는 “4차위는 개별 부처가 담당하기 어려운 종합전략 수립, 과제 추진의 모니터링, 이해관계자의 갈등 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역할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부처 간 정책 조정은 국무회의, 관계장관회의, 국무조정실, 정보통신전략위원회 등 기존 공식 경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면서 “기존의 공식적인 정책조정 체계의 업무가 아니거나 개별 부처가 담당하기 어려운 기능인 범정부 종합전략의 수립, 과제 추진의 모니터링, 이해관계자의 갈등 조정 등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 D학점...혁신이 가능한 조직으로 변해야
4차 산업혁명은 결국 혁신 없이 불가능하다. 정부 차원의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청사진을 제시하고, 갈등 조정을 위해 공론장을 마련하고, 파편화된 담론을 정리한 권고안을 내놓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민간의 혁신은 쉽지만 오히려 정부의 혁신은 어렵다. 민간 전문가가 많이 참여하고 있더라도 대통령 직속 기구로서 책임과 성과를 중시해야 하는 관료조직이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실패도 용인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질 용기가 4차위에게 바람직한 혁신이다.
장병규 위원장이 줄곧 강조해 온 ‘팀플레이’도 성공을 쫓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논의 과정에서 나온 논의를 밟고 새로운 논의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각 부처 외에 국회에 마련된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도 팀플레이 대상이다. 특별 상임위 형태로 입법권을 갖지 못했지만 함께 고민하며 논의한 결과를 의원들이 개별 입법 시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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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4차위는 이때 국회가 챙길 수 없는 이해관계자의 논의에 더욱 집중하고 정책 마련은 행정부와 국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패를 용인하고 과정을 중시하는데 집중해야, 현재까지 4차위를 둘러싼 평가는 비록 박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를 지날 수 있다는 것이 4차위 안팎의 걱정어린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