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전북)=안희정 기자] 지디넷코리아와 네이버는 앞선 세대의 기술과 정신을 배우고 가업을 이어나가는 소상공인을 조명하고자 '가업 잇는 청년들' 탐방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창업 열풍 속에서도 가업과 전통을 이으며,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꿈 많은 2030 창업자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편집자주]
"정말 예쁘지 않나요?"
인삼이 예쁘게 생겼다니. 어떻게 생겨야 인삼이 예쁘게 생긴 건지 아직 감이 없는 기자에게 김태엽 백산인삼 대표는 꼭 자식에게 건네는 말처럼 통통하면서도 길쭉한 인삼을 칭찬했다.
30년 경력을 가진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한 김태엽 대표. 잠도 줄여가며 고군분투하는 그를 만나러 2월 어느 날 김제로 향했다.
광명역에서 KTX를 타니 약 1시간 정도 후에 익산역에 도착했다. 익산에서 김제 백산인삼까지는 차로 약 15분 정도 거리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 김제는 평온했다.
김태엽 대표는 기자를 익산역에서 픽업해 백산인삼 공장으로 데려갔다. 이 공장은 김 대표가 홍삼추출액을 직접 제조하는 공장이다. 농사부터 가공까지 백산인삼에서 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에는 인삼 원물을 직거래 업체에 넘겼는데,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삼 판매를 가을에 하고 나면 목돈이 나오는데, 거기서 끝이었죠. 원물은 원물대로 팔고, 인삼을 가공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적은 돈이지만 수입이 꾸준히 있어 그 점이 좋아요."
김 대표의 고향은 충남 금산이다. 어렸을 적 김제로 이사온 후 아버지 농사를 계속 도왔다.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대학교 때 우연히 아르바이트 동료로부터 이스라엘 키부츠라는 곳에서 하는 봉사활동 얘기를 들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데 이스라엘에 봉사활동을 갔어요. 몇몇 대학생들과 한 팀이 돼 34시간을 걸려 이스라엘로 갔죠. 영어를 못하니 생긴 에피소드도 많아요. 무기 있냐는 질문에 제가 'YES'라고 해 잡혀가기도 했고(웃음). 히치하이킹도 하고, 빈병도 팔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때 우연히 알게된 사람을 만나 이집트까지 가서 가이드를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왔어요. 부모님께 천 만원 받아서 이집트 룩소르라는 동네에서 민박집을 해 돈을 좀 벌었죠."
김 대표는 맨몸으로 간 이스라엘과 이집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민박집이 잘 돼 이집트에 땅을 사기도 했는데 사기를 당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아이가 어려서 뭐든 해야했다.
그는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일반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 후 성실함을 인정 받아 매니저가 됐다. 그런데 그 해 아버지가 아프셔서 농사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아버지가 괜찮으실 때까지만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귀농을 결심했다. 태풍 볼라벤으로 인삼농사에 큰 피해를 입으면서다.
"당시 피해액이 3억원 정도였어요. 인삼이 큰 것부터 썩기 시작했죠. 복구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눈물이 나면서 '부모님이 이렇게 힘드셨나'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2014년 봄부터 농사를 시작했는데, 네이버 교육도 받았습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웃이 늘어났고, 인삼 구입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김제가 인삼이 유명한 지역이 아니지만 직거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는 네이버 블로그로 인해 종편 방송에도 나오게됐다. 슈퍼푸드 관련 방송이었다. 그 후 하루에 블로거에 들어오는 사람이 20명에서 2천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공한 게 없어서 팔 게 없었다.
"그 때 가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설비가 없어서 OEM 방식으로 홍삼액을 팔았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정부 보조를 받아 작은 공장을 만들었죠. 2016년에 인삼아빠 브랜드를 만들고, 와디즈 펀딩을 통해서 박스도 만들었어요. 박스를 만들고 나니 점점 길이 열렸어요. 온라인에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판매하면서 판로를 확대했어요."
김 대표는 홍삼에 첨가물을 넣지 않고 홍삼 추출액 100%로 판매하고 있다. 단맛이 없고, 홍삼 특유의 향과 씁쓸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네이버 가업 잇는 청년들 웹툰에 소개되면서 이동건 작가의 웹툰 '유미의세포들'에 영감을 받아 홍삼액 '세포(3개)' 구매 가능한 상품도 내놓았다.
김 대표는 차근차근 내공을 쌓으며 농사도, 상품판매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지역 내 256명 혼자 사는 어르신 건강을 위해 홍삼을 기부하는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김제 인삼도 더 많이 알리고픈 마음도 굴뚝같다.
김 대표는 귀농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억대 매출을 내는 농부가 됐다고 하더라도 가족 모두가 매달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익은 인건비 빼면 거의 안 남는다. 무작정 귀농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겐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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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청년 농업자를 장미빛으로 조명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하죠. 농사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고, 가공식품도 만들어야 하고 택배도 매일 보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사업을 키워나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보다는 서로 협업해 좋은 경험들을 공유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점심을 먹지 못한 기자에게 김 대표는 인삼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인삼라면 먹방 영상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