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은, 못생긴 채소가 더 값져요”

[안희정이 만난 가업 잇는 청년들] 채소소믈리에 청년 귀농 이야기

인터넷입력 :2018/09/28 17:02    수정: 2018/09/28 22:16

[청주(충북)=안희정 기자] 지디넷코리아와 네이버는 앞선 세대의 기술과 정신을 배우고 가업을 이어나가는 소상공인을 조명하고자 '가업 잇는 청년들' 탐방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창업 열풍 속에서도 가업과 전통을 이으며,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꿈 많은 2030 창업자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편집자주]

"개굴, 개굴."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청개구리가 유기농 채소 가족농가 '알알이거둠터' 사무실 문고리 위에 앉아있다. 이곳은 채소소믈리에 송예슬씨가 유기농 채소를 배합해 주스를 만드는 공간. 아버지인 송재혁 대표와 박순님 어머니도 바쁠 땐 주스 제조에 투입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밭에서 자란 유기농 채소를 먹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무더운 날씨가 한풀 꺾인 날, 충북 청주에 터를 잡고 있는 알알이거둠터를 찾아갔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5년 전 도시에서 귀농한 송예슬씨와 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알알이거둠터(사진=지디넷코리아)

송예슬씨는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졸업 후 연구소에서 수질 토양 분석하는 일을 했다. 부모님이 재배한 유기농 채소의 온라인 판매를 도와드리곤 했었는데, 배송처리에 문제가 가끔 생겼다. 그때마다 송씨는 부모님을 대신해 고객 문의를 받으며 이 일에 점점 스며들었다.

어느날 한 외국인이 유기농 채소를 주문하면서 아버지와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생겼다. 중간에서 송씨가 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 때 송씨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겠다고 결심했다. 2년 정도 고민 후 내린 결단이었다.

송씨는 부모님 일을 도와 신선초와 케일, 당근 등을 재배했다. 동생인 송새결 씨도 함께 했다. 자연스럽게 재배한 채소를 갖고 2차 생산물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미국에서 불어온 디톡스 열풍을 토종 문화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 농작물로 만들면 더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올해 2월부터 송씨는 신선초와 케일로 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주스마스터와 채소 소믈리에 과정도 수료했다.

"시중에 나오는 즙은 열탕처리가 됐어요. 파우치에 담으려면 끓이거나 삶는 등 멸균처리를 해 유통기간을 확보해야 하지요. 그게 싫었어요. 첨가물과 물을 넣지 않고 열도 가하지 않고 싶었어요. 당일 수확한 채소로 신선한 주스를 만드려고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직접 즙을 짜고 있어요. 10팩을 만드는데 1시간이 걸려요. 엄마, 아빠 모두 밤늦게까지 착즙에 매달리기도 하세요."

알알이거둠터(사진=지디넷코리아)

송씨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수수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판매 채널을 한 곳으로 집중했다. 알알이거둠터는 네이버가 2014년 산지직송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부터 연을 맺었고, 푸드윈도가 생긴 후 처음으로 입점한 23개 농가 중 하나였다. 여러 오픈마켓에도 입점했었지만, 현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다.

송씨가 녹즙 주스가 처음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려했다. 신선초와 케일, 당근, 비트나 미니사과의 배합을 난이도에 따라 다르게 하니 소비자 만족도도 올라갔다. 자체제작, 당일수확, 당일착즙 원칙은 언제나 지킨다.

농사를 직접 지을수록 농업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올해 5월엔 교보생명의 대산농촌재단 유럽 연수단에 뽑혀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농가를 보고 왔다. 재단에서는 1년에 두 번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해 농업인이나 관련단체 실무자 등을 20명 이내로 뽑아 농업 선진국에서 연수를 진행한다.

친환경 주스를 직접 마셔봤다. 몸에 좋을 것 같은 맛이었다.

"젊은 청년인데 여성인 사람은 연수 받는 농가인들 중 제가 유일했어요. 유럽 여러 나라들을 가보니 우리나보다 더 농가다움을 강조하더라고요. 전통을 중요시 여기고, 돈보다는 삶의 질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어요. 교육 환경과 생활환경도 보고 배우며 농촌의 미래를 경험하고 왔습니다."

송씨는 연수 후 친환경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독일 농가처럼 400년, 500년을 이어가는 알알이거둠터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강해졌다.

송씨는 아직도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다른 채소도 키워보고 싶고 아이디어도 많지만, 주스 착즙에도 잠이 모자랄 정도라 고민도 많다.

"부모님이 유기농 채소를 위해 희생하신게 너무 아까웠어요. 도시 생활을 포기한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생활이 나에게 잘 맞고 계승하고 싶어요. 독일 농가처럼 전통을 갖고 있는 알알이거둠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왼쪽부터)송재혁 아버지, 박순님 어머니, 안희정 기자, 송예슬씨

송씨의 유기농 사랑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아버지 송재혁 대표의 유기농 사랑은 남다르다. 송 대표는 가족이 재배한 유기농 채소를 먹고 건강해졌다는 연락을 받을 때 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돈 보다는 좋은 땅, 좋은 물에 대한 갈증이 크다. 친환경적이고 농사짓기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 도시에서 더 먼 곳으로 들어갈 계획도 있다.

"농민은 진실해야해요. 작물한테 거짓말을 하면 죽죠. 농사 잘 짓는 사람이요? 성실한 사람이에요. 몸은 고되지만 다른 사람의 병을 유기농 채소로 고치는 일이 너무 좋고 보람돼요. 칭찬도 받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라고 할까. 입소문이 퍼져 점점 농사 규모도 커지고 있어요. 농업도 잘 하면 전망 좋고, 안정적인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요. 유기농 쌀도 비싸다고만 생각하죠. 쌀이라도 유기농 드세요. 제초제 안 쓰는 것만으로도 큰 차이가 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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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을 위해서 농가들이 친환경쪽으로 가야해요. 사회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대우를 해줘야 하고요. 판매상들도 농민들한테 깨끗한 농작물만 가지고 오라고 하면 안됩니다. 농약을 안 치고는 작물이 깨끗할 수가 없지요. 인식 부터 변해야 해요.

저희는 하도 벌레먹은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소비자들이 벌레먹은 채소를 더 좋아해요. 못생긴 채소가 더 값어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