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페이스북, 구글을 분할하겠다.”
지난 주말 한 유력 대권주자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을 분할 규제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그는 또 후속 인터뷰에선 “애플도 규제 대상”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제안을 내놓은 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입니다.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 출신은 워런 의원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유력 주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워런은 지난 주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을 미디엄에 올렸습니다. (☞ 워런 글 바로가기)
워런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연매출 250억 달러를 웃도는 기업을 분할하겠다는 겁니다. 또 연매출 9천만~250억 달러 규모 회사들은 ‘공정 의무’를 부과받게 됩니다.
■ "플랫폼 사업자, 정보 이용해 사익 챙긴다"
물론 워런의 규제안은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워런은 ‘플랫폼 시설(platform utility)’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대중들에게 제3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거래소, 혹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을 ‘플랫폼 시설’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기준에 부합한 곳이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애플입니다.
워런은 ‘플랫폼 시설’들이 크게 두 가지 전략으로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 제한
둘째. 장터를 활용해서 경쟁 제한
첫째 기준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입니다.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같은 기업들을 인수한 뒤 시장에서 경쟁을 말살해버렸다는 게 워런 의원의 주장입니다.
구글이 지도회사 웨이즈나 광고 전문기업 더블클릭을 인수한 것도 비슷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외신들이 많이 보도한 건 두 번째 방안입니다. 구글, 애플 같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플랫폼 내에서 오가는 정보를 활용해 자기 주머니를 더 챙겼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터 운영기업’은 그 장터에 구매자나 판매자로 참여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워런 의원은 이 기준에 따라 애플은 앱스토어만 별도 기업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존이나 구글 역시 플랫폼 기업과 상용 서비스 기업으로 분할하겠다는 겁니다.
미국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깜짝 놀랄 만한 제안입니다. 하지만 전혀 유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 역사 속엔 거대 기업에 대한 분할(혹은 견제) 사례로 가득차 있습니다.
서부 개발 초기 철도 회사부터 AT&T 같은 통신사업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들어선 1990년대 대표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타깃이 됐습니다. 워런 의원이 미디엄에 올린 글은 MS 사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잘 아는대로 MS는 PC시대 지배자였습니다. 윈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오피스, 브라우저 같은 상용 소프트웨어까지 지배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반독점 소송 때 MS를 운영체제와 상용 소프트웨어 회사로 분할하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됐습니다.
워런 의원은 “MS에 대한 반독점 소송 덕분에 구글과 페이스북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요즘 잘 나가는 기업을 분할하자는 자신의 제안이 결코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아예 “우리 모두 빙 (검색엔진) 대신 구글이란 선택권을 갖게 된 걸 기뻐하지 않는가?”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예 그 부분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해놓기도 했습니다.
■ "인위적 분할 땐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 훼손" 비판도
최근 페이스북을 비롯한 거대 IT기업들의 독점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해 불거진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엔 ‘정보 독점’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워런 의원의 주장은 그런 정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방안이 발표되자마자 미국 언론들은 엄청난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워런 의원이 설익은 ‘파퓰리즘적 주장’을 내놨다는 겁니다.
IT전문매체 더버지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를테면 애플 앱스토어는 아이폰을 좀 더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걸 어떻게 떼어내겠냐는 겁니다.
이 질문에 대해 워런 의원은 “그들(애플)은 앱 개발자들과 경쟁하고 있지 않느냐? 그게 문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 판매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자신의 물품을 판매해선 안된다. 두 가지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꼽은 두 가지 이점은 ‘정보 습득’과 자기 상품을 유리하게 배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부분은 망중립성 공방 때도 중요한 논쟁거리가 됐던 사안입니다.
합병한 기업을 다시 해체하겠다는 제안에 대해선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더버지는 “AT&T와 타임워너 합병을 막으려던 법무부가 소송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미 합병이 끝난 기업을) 어떻게 다시 분할하려는가?”란 돌직구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경제전문매체 CNBC도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워런 의원의 분할안이 적용될 경우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파괴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나, 구글 검색을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건 모두 결합된 덕분이란 겁니다. 인위적으로 분할하게 되면 이런 이점이 사라져 오히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게 CNBC의 비판입니다.
IT전문매체 테크더트는 워런 의원의 비유 자체가 잘못됐다고 꼬집었습니다. MS 반독점 소송 때문에 구글, 페이스북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겁니다. 실제로 반독점 소송 당시 미국 법무부가 MS로부터 얻어낸 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 민주당은 왜 전통적 지지층인 실리콘밸리 공격할까
워런 의원의 페이스북, 구글 분할 제안 글은 아직까지는 ‘아이디어’ 수준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긴 선거운동 기간 동안 계속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안은 한 가지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동안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대표적인 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제안은 바로 그 실리콘밸리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지지층을 옥되는 제안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분석이 있습니다.
첫째. 페이스북 정보유출 사건 이후로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둘째. 버니 샌더스 돌풍 이후 민주당이 진보적인 공약을 좀 더 강하게 들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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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여러 요인들도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 자체가 좌파 성향의 학자 출신이란 점도 한 요인이 됐을 겁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거대 IT 플랫폼 사업자를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워런 의원의 논리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꽤 거세게 계속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