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창시자’의 인터넷 반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팀 버너스 리는 최근 페이스북, 구글 같은 거대 IT 기업에 넘겨준 ‘데이터 주권’을 되찾는 것을 골자로 하는 ‘솔리드’ 시스템을 공개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솔리드’ 시스템의 전모가 공개된 것은 지난 9월말이었다. 당시 팀 버너스 리는 미국 IT 전문잡지 ‘패스트 컴퍼니’와 인터뷰를 통해 솔리드 시스템을 통해 거대 기업의 정원으로 전락한 인터넷을 구해내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솔리드를 상용화하기 위해 인럽트란 스타트업도 새롭게 만들었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을 전 세계인에게 무료로 배포하면서 인터넷 혁명의 불씨를 지폈던 팀 버너스 리로선 첫 비즈니스 활동이나 다름 없다.
■ 모든 데이터에 고유주소 부여…개인이 '접속 허용' 결정
팀 버너스 리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솔리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미국 IT매체 씨넷에 따르면 2천명 수준에 머물렀던 솔리드 가입자 수가 버너스 리 인터뷰 직후 순식간에 4만 명까지 늘었다. 팀 버너스 리의 파워와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존 브루스 인럽트 최고경영자(CEO)는 씨넷과 인터뷰에서 “솔리드 계정을 개설한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밝혔다.
솔리드 계획이 공개된 직후 싸움 붙이기 좋아하는 일부 언론들은 “웹 창시자가 자신의 피조물을 없애자고 외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 버너스 리의 ‘솔리드 플랫폼’은 웹을 없애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곡된 웹을 제 자리에 돌려놓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핵심은 ‘데이터 통제권’이다.
그 동안 우리는 페이스북, 구글 같은 인터넷 서비스업체의 서버에 중요한 데이터를 맡겨 왔다. 대신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그 데이터를 불러 와서 사용했다.
이 방식은 두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중요한 내 개인 정보가 속절 없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 데이터 유출 사태가 이런 위험성을 잘 보여줬다.
또 하나는 소중하게 모아놓은 데이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점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가정해보면 이런 우려를 쉽게 알 수 있다.
인럽트의 솔리드 시스템은 이런 우려를 피하기 위해 개인들의 자기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갖도록 한다. 서비스 이용자들은 ’팟(pods)’이란 곳에 정보를 저장한 뒤 선별적으로 접속을 허용할 권한을 갖는 방식이다.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을 만들 때 했던 결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문서가 고유의 주소를 갖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웹의 혁신을 꿈꾸면서 준비한 솔리드에도 이 방식이 원용됐다.
이번엔 고유 주소를 갖는 객체가 모든 데이터다. 솔리드 이용자들이 팟에 개인 정보를 저장할 때마다 고유 주소가 생성되도록 해 선별적으로 접속을 허용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하도록 했다.
개인이 USB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등의 결정은 정보 소유자가 하게 된다.
이 방식이 주효할 경우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에 균열을 일으킬 것이란 기대를 가질만하다.
■ 이용자들이 '유료화·데이터 관리 부담' 감당하려할까
그렇다면 이 방식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미국 씨넷은 ‘글쎄요’란 답변을 내놨다. 씨넷은 솔리드가 크게 두 가지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유료화’다. 씨넷에 따르면 인럽트는 솔리드를 비롯한 모든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제는 아무리 뛰어난 서비스라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과연 돈을 내고 이용할 것이냐는 부분이다.
또 다른 장벽은 ‘데이터 관리’다. 솔리드 기반 웹은 이용자들에게 데이터를 세세하게 관리하는 책임을 부여했다. 데이터 소유 대가로 관리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굉장히 이상적이다. 이를테면 내가 올린 글에 붙어 있는 원치 않는 사람의 댓글을 내가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일반 이용자들이 이런 귀찮은 작업을 하려 들지 의문이란 게 씨넷의 지적이다.
솔리드는 팀 버너스 리의 웹 비전이 그대로 구현된 시스템이다. 그걸 상업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존 브루스 인럽트 CEO의 몫이다. 이론가와 기업가의 결합을 통해 웹 혁명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둘은 ‘거대 기업에 포획된 웹’을 대중의 손으로 돌려줄 수 있을까? 개인이 모든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함께 관리 의무까지 부담하는 이상적인 웹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30년 전 ‘불가능해 보였던 혁명’을 성공시켰던 팀 버너스 리는 또 다시 쉽지 않은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쪽을 택했다. 어쩌면 이번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월드와이드웹 혁명보다 수 십 배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거대한 빌딩을 허물어 뜨리는 것은 맨 땅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 리는 일단 불특정 다수보다는 '개발자의 혁명 열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 열기를 불쏘시개 삼아 웹 혁신이란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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