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탄생 25돌…마냥 기쁘진 않은 이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8/08 14:00    수정: 2016/08/08 14:5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991년 8월6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웹 사이트가 하나 등장합니다. 그 때까지 연구소가 추진해온 하이퍼텍스트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페이지였습니다.

물론 이 페이지가 그날 처음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IT 전문매체 엔가젯에 따르면 이 웹페이지는 한해 전인 1990년 12월20일 첫 등장했습니다.

한동안 CERN 내부망에서만 볼 수 있던 이 페이지는 1991년 8월6일에야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인터넷의 동의어나 다름없는 월드와이드웹(WWW) 기반 웹페이지가 첫 등장하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세계 첫 웹사이트 주소는 http://info.cern.ch입니다. 이 사이트는 지금도 접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WWW 프로젝트와 CERN 등에 대한 정보가 링크돼 있습니다. 지금보면 이미지 하나 없는 조잡하기 그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사진=씨넷)

■ WWW와 그래픽 브라우저, 인터넷 대중화 양대 축

하지만 팀 버너스 리가 만든 WWW는 인류에겐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선물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문서우주를 맘껏 누비고 다닌다는 초기 하이퍼텍스트 이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선 역사 속으로 조금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닦은 건 배너바 부시입니다. 부시가 1945년에 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As We May Think)’이 그 이론을 담아낸 논문으로 꼽히구요. 부시는 이 논문을 토대로 정보와 지식을 빠르게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는 ‘메멕스’란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부시의 뒤를 이어 테오도르 넬슨이 ‘제너두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문서우주(Docuverse)란 야심에 한 발 더 다가갔습니다. 특히 넬슨은 ‘하이퍼텍스트’란 말을 처음 쓴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우리가 요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링크로 연결된 텍스트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인터넷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배너바 부시의 논문 'As We May Think.' (사진=애틀랜틱)

부시에서 넬슨으로 이어지는 초기 하이퍼텍스트 학자들의 연구는 인터넷의 기반을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중의 손으로 넘어오기 위해선 두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월드와이드웹입니다. 지금은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이 동의어로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입니다.

월드와이드웹은 쉽게 말해 각 문서가 고유의 웹 주소(URL)를 갖고, 이 문서들을 하이퍼링크로 연결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월드와이드웹에 접속할 땐 인터넷망을 이용하지요.

TCP/IP 등 복잡한 방법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버너스 리의 WWW은 구세주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후 WWW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뿐 아니라 쇼핑과 비즈니스, 교육 방법에 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물론 이 모든 건 ‘그래픽 기반 브라우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인터넷을 쓸 수 있다면 제 아무리 월드와이드웹이라도 쉽게 대중화되긴 힘들었을 겁니다. 일리노이대학원 재학생인 마크 앤드리슨이 1994년 선보인 넷스케이프가 인터넷 대중화의 또 다른 축 역할을 했습니다.

윈도 3.1에서 구동됐던 넷스케이프 1.2 버전. [사진=위키피디아]

■ 4년 전 런던올림픽 땐 개회식 초대 받기도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하기까지 CERN이란 뛰어난 연구소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너스 리가 인터넷 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발명품인 월드와이드웹에 특허 보호막을 씌우지 않았습니다. 그 결정은 인류에겐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월드와이드웹 발명자인 버너스 리는 돈을 포기하는 대신 엄청난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는 2007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4년 전 열린 런던올림픽 때 연출됐습니다. 팀 버너스 리는 당시 셰익스피어와 비틀스가 키워드였던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팀 버너스 리를 개막식 단상에 세움으로써 인터넷 발상지는 미국이지만, 그 인터넷을 세계인의 손에 안겨준 것은 자신들이라는 점을 은근히 과시했습니다.

팀 버너스 리가 만든 월드와이드웹이 최초로 구현된 브라우저. (사진=CERN)

25년 전 버너스 리가 씨앗을 뿌린 인터넷은 국경을 뛰어넘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줬습니다. 전 지구촌을 이어준 올림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이 자본과 정치 논리로 심하게 오염된 것처럼 인터넷도 요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페이스북, 구글 같은 거대 기업들의 정보 독점으로 인해 또 다른 빈익빈 부익부 부작용이 생기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을 중심으로 인터넷 보호 운동에 힘을 쏟고 있는 버너스 리 역시 요즘 이런 현실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 버너스 리, 구글-페북 등의 인터넷 사유화에 강한 우려

버너스 리는 몇 년 전엔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웹을 ‘고립된 섬’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 공짜로 내놓은 선물이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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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은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 켠엔 페이스북처럼 ‘고립된 정원(walled garden)’을 꾸미고 있는 기업들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고, 또 한 켠엔 모바일 혁명이란 새로운 바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탄생 25돌을 기념하는 이 글에 흔쾌한 축하만 담기 힘든 건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년 전 팀 버너스 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해선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담아보냅니다. 그리고 그의 뜨거운 열정이 처음 향했던 바로 그 방향으로 인터넷이 계속 발전해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