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와 중국 CATL 등이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 폭스바겐 그룹의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연간 150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내 3사는 물론 중국기업도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건은 어느 기업이 얼마나 많은 물량을 가져갈 수 있느냐다.
28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친환경 자동차사업 전략 ‘로드맵(Road map) E’를 발표하며 오는 2025년까지 새로운 전기차 모델 50종을 출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간 150GWh 규모 이상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이 필요하다. 폭스바겐그룹은 최소 4개의 기가팩토리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기가팩토리 하나당 약 37GWh 생산 능력(capacity)이 요구되는 셈이다.
기가팩토리(gigafactory)는 기가(10억)급 규모 전기차 배터리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뜻한다. 테슬라가 2014년부터 오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네바다주에 짓고 있는 공장에 처음 붙여졌다.
폭스바겐그룹은 목표 수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CATL 등 여러 글로벌 배터리기업에 손을 내밀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3월 LG화학, 삼성SDI를 유럽에서 판매되는 폭스바겐그룹 전기차의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했다. CATL에는 중국 물량을 맡겼다. 같은해 11월에는 SK이노베이션과 북미와 일부 유럽(2022년부터)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폭스바겐그룹은 유럽 기가팩토리 설립도 추진 중이다.
현재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파트너 협의대상은 SK이노베이션이다. 그러나 연간 150GWh 규모 배터리 확보를 위해서는 LG화학, 삼성SDI, CATL 등이 모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규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폭스바겐그룹 배터리 물량은 SK이노베이션은 물론 LG화학이나 삼성SDI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며 “결국 CATL까지 포함해 글로벌 빅4, 빅5 배터리기업들이 모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기업들이 이미 폭스바겐그룹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럽 공장에 추가 투자를 진행하거나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 27일 헝가리에 제 2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과 삼성SDI가 지난해 말 자사 헝가리 공장에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 역시 폭스바겐그룹을 염두했다는 시각이다.
관건은 국내 3사가 폭스바겐그룹 물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다.
현재 가장 많은 물량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2017년 폴란드에 연간 6GWh(연간 전기차 10만대 분량)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짓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같은 해 11월 폴란드 공장의 연간 배터리 생산 능력을 15GWh으로 높이기 위해 6천513억원의 현금 출자를 결정,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삼성SDI도 지난해부터 연간 5만대 전기차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헝가리 공장을 가동 중이다. 헝가리 공장의 생산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 말 이사회를 열고 5천6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투자금 4천억원까지 고려하면 헝가리 공장에만 1조원 가까이 투입됐다.
삼성SDI는 추가 투자 후 기대하는 생산 능력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투자 규모로 봤을 때 현재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가동 중인 배터리 공장이 국내 서산 공장뿐이다. 헝가리에 7.5GWh 생산 규모인 제 1공장을 짓고 있지만 내년 초부터 양산이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7일 제1 공장 건설 부지를 일부 활용해 제 2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9천452억원으로 올해 3월부터 착공해 오는 2022년부터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 2공장이 완공되면 헝가리 공장의 생산 규모는 2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결국 현재 가장 빨리 가장 많은 배터리를 폭스바겐그룹에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순이다. 해당 기업들이 추가 건설 중인 유럽 공장 완공 시기가 가까워지면 기업 간 수주 물량 경쟁은 더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폭스바겐그룹 같은 유럽 고객사들이 원하는 고품질 배터리를 제 때 공급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선도기업”이라며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은 우선 고객사 주문을 수주한 후 공장에 투자하는 전략을 따르고 있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3사가 폭스바겐그룹 등 유럽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공장을 증설하거나 증설을 추진할 것이란 얘기는 이미 예전부터 나왔다”며 “삼성SDI의 헝가리 공장 투자 역시 그 수순”이라고 말했다.
■ 1위 기업 CATL도 독일에 기가팩토리 짓는다
폭스바겐그룹 배터리 수주전에는 또 다른 막강한 경쟁자가 있다. 바로 CATL이다. 중국 전기차시장을 발판 삼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CATL 역시 폭스바겐그룹을 노리고 있다.
마티아스 젠트그라프(Matthias Zentgraf) CATL 유럽 지사장은 지난 4일 독일 전기차 전문매체 일렉티브(elective)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에르푸르트에 건설 중인 CATL 공장이 오는 2026년까지 최대 연간 100GWh 생산 규모를 갖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CATL은 당초 오는 2022년까지 2억4천만 유로(약 3천69억원)를 해당 공장에 투자해 연간 14GWh 생산 규모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유럽 고객사들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늘어난 만큼 독일 공장에 확대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젠트그라프 지사장 또 잠재고객으로 폭스바겐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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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역시 중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CATL이 유럽시장 점유율도 높이기 위해 폭스바겐을 적극 공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및 이차전지 전문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의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전기차 장착 배터리 용량 기준)은 21.9%로 1위다. 그러나 중국에 출시된 전기차에 탑재된 중국산 배터리 사용량을 제외한 CATL의 지난해 점유율은 0.08%로 12위에 그쳤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폭스바겐그룹은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이자 배터리시장의 핵심 잠재 고객이므로 CATL은 당연히 주요 고객으로 거론했을 것”이라며 “현재 업계에선 100GWh라는 생산 규모가 굉장히 큰 만큼 CATL이 실제 목표한 시기에 공장을 완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사들 역시 CATL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