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법에 따라 공개 심의를 거쳐 인터넷 불법 정보를 더 강력하게 차단키로 한 조치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검열 혹은 통신 감청으로까지 확대 해석될 정도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음란과 도박 등 불법 정보를 유통하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접속차단 기능을 강화했다고 밝힌지 하루 만에 청와대 청원에는 10만명이 넘는 반대 목소리가 모였다. 또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를 우려하는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반기는 목소리도 종종 눈에 띈다.
여러 비판 목소리 중에서도 정권이 인터넷 세상을 입맛에 맞게 바꾸려한다는 주장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HTTPS와 SNI 필드와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 용어가 나오고 있지만, 불법정보 차단 절차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탓으로 보인다.
■ 접속 차단 실행 단계에는 정부가 없다
방통위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부에 의한 감청이나 이용자 사생활 침해는 절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인터넷 접속 차단의 실행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방통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지난해 6월부터 SNI 필드 차단 방식을 민간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와 협의를 거쳤다. 이후 12일부터 HTTPS를 포함한 차단 방식을 도입했으나, 차단 사이트는 방심위의 공개 심의를 거쳤고 실제 차단 결정에 대한 실행은 KT 등 7개 ISP 회사가 하고 있다.
정부가 실제 차단 과정에서는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누리꾼이 신뢰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차단 실행 과정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딱히 없다. 사실 여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 여야 추천 인사가 공개 논의로 결정한 불법정보
차단 내용을 고르고 결정하는 방심위의 논의 과정을 보면 정부에 의한 검열이라고 보기 더욱 어렵다.
국민들이 잘 아는 방심위는 불법 유해정보 차단 안내 사이트(warning.or.kr) 외에도 방송 내용에 대한 공정성이나 선정성, 폭력성 등의 심의 일을 맡고 있다. 형식 심의가 아닌 내용 심의를 맡고 있기 때문에 방심위는 현 정권의 인사로만 구성되지 않고 정부와 여권 추천 위원 외에도 야권 추천 위원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특히 방심위 심의를 거친 불법 해외사이트 895건을 결정한 회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심위 내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으로, 논의 기준은 정보통신망법 제44조 7항이다. 현행법의 잣대로 불법정보를 공개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통신심의소위를 이끌고 있는 소위원장은 현 정권과 정치적인 대립 관계에 있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전광삼 상임위원이 맡고 있다. 통신심의소위에 속한 이상로 위원도 자유한국당 추천 인사다.
다섯명으로 이뤄진 통신심의소위에서 다수결 구도가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에 불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경찰이 삭제를 요구한 유튜브에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 영상을 두고 통신심의소위는 정부 추천 위원까지 전원 합의로 삭제 요청을 각하했다. 정부 추천 위원도 바람직한 정보는 아니나 개인의 표현을 통신심의규정 잣대로 제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불법정보의 인터넷 접속 차단을 강화하면서 검열에 나섰다고 주장할 논리는 희박해 보인다.
■ 불법도박 사이트 차단과 표현의 자유
처음으로 돌아가 불법정보의 접속차단 강화 조치는 전 연인과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범 정부 차원의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부터 시작됐다.
4기 방통위는 디지털성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정책적인 방안을 강구했고, 강상현 위원장이 취임한 방심위는 곧장 디지털성범죄 대응 전담팀을 만들었다.
합법 성인물은 차단하지 않는다는 점에 또 다른 논란이 붙어있고, 리벤지 포르노를 겨냥해 발전해온 정책 방향이지만 실제 차단 사이트를 살펴보면 웃지 못할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방심위의 통신심의 시정요구에 따라 접속 차단한 사이트 895건 가운데 대다수인 776건이 불법 도박 사이트다. 또 음란물은 96건, 저작권 위반 11건, 불법 식품 의약품 8건, 기타 4건이다.
불법도박 이용자에게는 하루 아침에 굉장히 불편한(?) 정책이 되겠지만, 이 같은 조치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거나 인터넷 검열 시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 표현의 자유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를 두고 누리꾼들의 뜨거운 관심을 넘겨볼 수는 없다. 국민의 관심이 이토록 높다는 점에서 행정당국 뿐만 아니라 학계와 정치권도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다.
우선 불법정보 인터넷사이트 차단이 능사는 아니다. 기술은 쉼 없이 진화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차단해야만 하는 정보가 많아질 수도 있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13일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창과 방패의 역할이 아니겠냐”면서 “방패가 튼튼하면 창이 예리해지고 또 다른 우회방법이 나올 수 있으니 국민 우려가 많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가 제도를 도입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합리적인 제안은 수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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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제안으로 제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고쳐나갸야 한다는 뜻이다. 제도의 도입 목적만 달라지지 않으면 된다.
이같은 정부의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표현의 자유 논쟁이다. 누군가는 불편한 논란이겠지만 논쟁 자체는 사실 반갑게 여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