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스마트'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움직임의 총합이 결국 스마트시티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스마트시티는 그 도시를 구성하는 시민들, 관리자 및 이해 당사자들의 지적 역량과 협업 역량에 따라 발전상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 조대연 스마트시티 사업단장은 스마트시티의 발전은 시민 역량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스마트시티 특별위원이기도 한 그는 2015년부터 KAIA에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PD를 맡아 진행해 오고 있다. 이전에는 한국도로공사에서 10년 동안 몸담으며, 고속도로 하이패스 서비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국가전략프로젝트인 스마트시티 실증도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실증도시는 대구광역시와 경기도 시흥시로, 각각 도시문제 해결과 비즈니스 창출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세계프로젝트경영 한국협회(IPMA Korea) 사무총장을 맡아,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표준화 논의도 함께 이끌어간다.
KAIA는 최근 용산에 사무실을 추가로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스마트시티 업계 사람들과 여러 논의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을 꾸릴 준비도 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사업보다도 스마트시티 자체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는 그를 새로 연 용산 사무실에서 만났다.
■ “스마트시티 되려면 대도시는 생산성 높이고, 중소도시는 자족 기능 갖춰야”
그는 스마트시티의 철학은 조선 시대 실학 개념인 ‘이용후생(利用厚生)’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시민의 일상생활의 질을 높이고, 도시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 보편적인 스마트시티의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마트'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움직임이 결국 스마트시티의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서울을 예로 생각해보면, 서울에 집이 없으니 집값이 올라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에 신도시를 많이 만들다 보면 집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여전히 서울에 있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 주변 신도시들은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결국 수도권 중심의 집중화, 과밀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조 단장은 “이렇게 신도시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 과연 '스마트'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시티를 만들어가는 방법의 첫 번째 단계는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도시의 생산성 저하와 자족 기능 여부다.
"서울과 같은 수도권은 현재 생산성이 오르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 4차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맞는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또 중소도시는 아직 자족 기능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스마트시티 정책은 고령화되고 생산성이 저하돼 쇠퇴하는 도시에 활력을 되찾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 “수평적 협업체계 부재는 걸림돌…시민이 나서야”
스마트시티를 만들어가는 두 번째 단계는 수평적인 협업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 범죄를 담당하는 경찰, 검찰, 법무부, 지자체가 서로 소통하는 환경이 잘 안 돼 있다”며 “아무리 기술이 좋다 해도 부처, 기관별 연계가 잘 안 돼 있는 체계에서는 스마트시티로 나아가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부처별 칸막이 행정과 협업 부족은 우리 사회에 늘 지적돼오던 문제다. 수평적 협업체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결국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서비스 제공자의 관점에서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시민들이 어떤 형태의 목소리를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 정부의 목소리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공공기관은 시민에게 모든 정보를 주지 않아, 시민이 어떤 부분의 변화를 유도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며 “이런 블라인드 긴장 관계가 계속 고착화되면 사회 변화의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따라 "단절되고 정보가 차단된 사회가 변화하려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오픈 거버넌스, 오픈 데이터 정책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시민들이 어떤 서비스를 좋아하고, 제공받길 원하는지는 직접 의견을 받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다”며 “시민들의 밀도 있고 지속적인 의견들이 결합해 정책에 반영되고, 그 정책에 피드백하면서 디지털 민주주의까지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시티로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도시를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조 단장은 “도시가 인간의 뇌처럼 몸에 어떤 반응이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제는 단순한 CCTV 설치를 넘어, IoT와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결합하면서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 포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시민 반응 변화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며 “이 설계를 어떻게 최적화해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아낼 수 있느냐가 스마트시티의 중요한 미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도시 문제를 인식하고, 부처별 협업을 하고, 시민들이 참여해 도시가 전체적인 유기체 모양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스마트시티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 스마트시티 공동체 만들기 힘든 구조…공동 공간도 중요”
그는 스마트시티 공동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모든 스마트시티 구축 과정의 근간에는 공동체가 복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복원 없이는 사회적인 합의도 이뤄질 수 없어 결국 그 어떤 과정도 내디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공동체가 복원돼야 대중교통을 더 이용하자고 얘기하든, 혹은 다른 부분을 제안하더라도 훨씬 쉽게 정리되지 않겠냐”며 “건전한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형성하느냐는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움직임(movement)이 필요하고, 그 움직임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동기 유발과 집단적 인식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시민 유형별로 다르게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시민들 중에는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얼리어답터가 있는 반면, 굳이 기술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혹은 스마트시티가 그들에게 중요한 현안으로 작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적응력이 빠른 얼리어답터에게는 정확한 정보만 제공해줘도 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정서에 맞춰 (스마트시티에 대한 철학, 기술, 정보 등을) 함양시키면서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조 단장은 "지금의 한국은 스마트시티 공동체를 만들기 힘든 구조"라고 평가했다. “시민의 의식이나 의지는 나름 충분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나 집단으로 논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사회적인 이슈가 증폭되면 정치적으로 흘러가버려, 공통의 문제가 확장되는 순간 오히려 해결되기 어려워지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며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편화된 주거 문화 형태도 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발전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는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터가 확고하게 안정될 필요가 있는데, 현대 주거문화 형태는 그런 안정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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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그는 공간적으로는 ‘플레이스 메이킹(Place Making)’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플레이스’는 공동 공간이다. 그는 공동 공간을 혁신의 공간으로 바라봤다. “도시 공간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소통하는 것이 생각의 다양성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그게 곧 공동 공간이 혁신의 공간이 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그런 공동의 공간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커피숍이 많아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을 자본이 잠식한다”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역 주변 공간이 공동 공간이 돼야 하는데, 가장 비싼 상업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 그는 “국가는 공동 공간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