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진 배달앱 ‘일방’ 토론회

[기자수첩] "주장 근거 오류에 반론권도 없어"

기자수첩입력 :2018/10/02 18:42    수정: 2018/10/02 18:48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진다는 뜻이다. 장님은 코끼리 코를 만지고도 다리라고 말하고, 넓은 옆구리를 만지고 벽인 줄 알 수 있다. 전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 줄은 단시간에 알기 어렵다.

지난 1일 배달앱이 외식 골목상권을 훼손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가 주관한 토론회였다. 이 자리엔 가맹점주 단체 및 전문가, 소비자 단체 측에서만 참석했다. 정작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배달앱 관계자들은 토론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각자 자기가 만진 코끼리가 어땠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3대 배달앱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요기요·배달통(알지피코리아)이 가맹점주 및 개별 음식점주에게 과도하게 광고료나 수수료를 가져가고, 프랜차이즈 업계가 만들어놓은 배달음식 지형을 마음대로 재편하려 든다며 이른바 ‘슈퍼 갑’으로 군림했다고 주장했다.

코끼리(사진=pixabay)

대중들은 종종 정부나 국회의 탁상공론을 비판한다. 실제 현장은 들여다 보지도 않고 책상 앞에서만 그럴 듯한 말만 내 뱉을 때, 답답힘을 느낀다. 이번 토론회가 그랬다.

한 프랜차이즈 산업 전문가는 “제가 ‘배달앱을 안 써봐서’ 발제하기 위해 (여전히 배달앱을 사용해보진 않은 채) 따로 공부를 하고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고 말했다. 영향력 있는 토론회에서 혁신적인 IT 서비스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면서 해당 서비스를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피자, 치킨을 하는 가맹사업까지 뛰어들어 골목 상권을 뒤흔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는 피자·치킨 가맹 사업을 하지 않는다.

또한 광고비와 배달 수수료가 엄연히 다름에도 음식점주 시각에선 배달앱이 비용을 떼어간다는 점에서 다른 점이 없었는지, 이들을 통칭해 수수료라고 지칭하며 틀린 사실을 거침없이 말하기도 했다.

토론회 패널도 일방적으로 구성됐다. 배달앱 업계의 입장을 들어볼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춰졌다.

가까스로 배달의민족만 토론회 참관자 자격으로 참여해 토론회가 끝난 후 질의 응답시간에야 10분간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다. 배달의민족은 "광고비를 상대적으로 많이 내는 점주는 전체의 0.2%밖에 되지 않고, 광고비를 투입한 만큼 매출 효과도 큰데 그 점은 부각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별다른 의견 교환 없이 토론회는 곧 끝났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로고

토론회에 참석 못한 알지피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요기요·배달통 서비스를 선보인 후로 수수료를 낮춘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높인 적이 없다”며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이후로 이를 앞세워 수수료나 광고비를 상향 조정했다면 갑질이라 표현할 수 있겠으나, 외부결제수수료를 3.6%에서 3%로 조정하는 등 낮추기만 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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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론회에 대해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기존 업계가 혁신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에 없던 배달앱이 등장해 확산돼 가는 지금, 기존 외식산업 종사자는 물론 배달앱 회사 모두 서로 의견을 경청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이 때, 국회의 역할은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중재에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이번 토론회 처럼 객관성을 잃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