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와 관료주의

[방은주기자의 IT세상] 아쉬운 천재원 MP 사의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16 09:26    수정: 2018/08/16 11:22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 부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사업 총괄책임자가 갑자기 물러났다.

잠시 시계를 지난 4월말로 돌려보자. "정부가 올해부터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세종 5-1 생활권, 부산 에코델타시티)는 뇌 공학자와 스타트업 육성 기업가 등 창의적 혁신 인재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 사람 중심의 스마트시티 조성을 본격 이끌어 갑니다".

당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도 자료 내용이다. 자료에서 말하는 뇌공학자는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스타트업 육성 기업가는 천재원 전 영국 엑센트리(XnTree) 대표다. 이중 천 대표가 사의했다.

부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의 총괄책임를 맡은 천재원 MP(Master Planner)

스마트시티는 문재인 정부의 8대 선도사업 중 하나다. 문 정부의 성공 여부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본인이 취임초부터 스마트시티를 강조했고, 지금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스마트시티를 제일 잘아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다.

세종과 부산 스마트시티는 문 정부의 가장 대표적 스마트시티 사업이다. 그만큼 중요성이 남다르다. 당국이 두 도시 사업을 지휘할 총괄책임자로 전문 민간인 두명을 선임, '마스터플래너(MP)'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일 것이다.

■커튼 뒤에 숨겨진건 무엇일까?

MP 역할에 대해 당국은 "국가 시범도시 비전과 목표 수립을 시작으로, 사업 전반을 이끌어 나가고, 입주 시점(2021년~)까지 스마트시티 조성사업에 총괄 감독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간MP를 선임한 것에 대해 "과학기술과 민간기업 전문가가 맡아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혁신성을 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두 MP 중 한명이 갑자기 물러났다. MP로 선임된지 3개월만이다. 당연히 사임 이유는 석연치 않다. 이런 일이 생기면 늘 나오는 "일신상 이유" 때문이다. 천 MP는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맡고 있던 대표직까지 그만둔다며 열의를 보인 바 있다. 천 MP를 영입할때 당국이 말한 "창의적 혁신인재" "2021년까지 총괄 감독 역할" 운운이 우습게 됐다.

'일신상의 이유'에 가려진, '커텐 뒤'에 숨은 건 무엇일까. 관료주의가 일차로 떠오른다.

천 MP처럼 공직사회에 들어간 민간인(어쩌다 공무원이 됐다해 어공이라 부른다)이 '늘공(늘 공무원)'과 함께 일하고, 더구나 이들을 지휘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기업인이라면 우선 눈 아래에 둔다. 그러니 창의적이고 혁신인재라면 마찰은 더 컸을 것이다. 천 MP가 3개월이라는, 잠깐동안의 '어공' 생활에서 느꼈을 '그 관료주의의 아득함'을 이해한다.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천 MP의 처신과 리더십도 그의 사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얼마전 세종시 MP를 맡고 있는 정재승 교수는 모 언론에 이런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처음으로 만나 MP로서의 비전과 구상을 밝혔는데 LH가 "마스터플랜을 직접 만드시게요?"라며 놀라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LH가 "용역회사를 통해 우리가 만들겠다"고 해 정 MP를 어리둥절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 MP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습게도 MP 운영 규정을 만드는 것이였고, 이의 내용은 MP가 마스터플랜을 만든다는 것이였으며, 이 당연한 걸 만드느라 지난 100일간 제대로 임명도 못 받은채, 예산 지원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무보수로 일하는 MP...지식 카피나 다름없어

당국이 민(民)을 대하는 자세와, 얼마나 준비없이 MP제를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구나 당국은 민간의 이런 고급 인력을 총괄책임자로 쓰면서 정규 보수를 한푼도 책정하지 않았다. 예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고급 인력을 보수 없이 쓰려는 건 일종의 '지식 카피'나 다름없다.

어제 당국은 천 MP후임으로 황종성 전 NIA 연구위원을 위촉했다. 그는 10년 이상을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일했고,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 사무국장을 맡는 등 이 분야 전문가다. 무엇보다 천 MP 밑에서 부산스마트시티 AP(Assistance Planner)로 활동해 사업 연속성 면에서 안정적이다.

스마트시티는 우리나라만 하는게 아니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도 앞다퉈 세계적 스마트시티 구축에 나서고 있다. 세종과 부산 스마트시티는 국내 롤 모델은 물론 이들 나라와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여기에 "이전의 u시티와 다른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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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흔히 이런 농담을 한다. 우리나라 여자 골프와 K팝이 왜 세계최고가 됐는지 아냐는. 답은 "정부가 간섭하지 않아서"다. 관료주의를 풍자한 것 중 압권인 듯 하다. 관료주의에는 부처간 칸막이도 포함된다. 스마트시티는 여러 부처가 관여돼 있다.

당국에 당부한다. 당국이 할 일은 관리보다 지원이다. 스마트시티 MP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 해야 한다. 세종과 부산 스마트시티 성공은 관료주의 극복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