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콘텐츠 삭제'는 어떤 의미일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알렉스 존스와 인포워스' 톺아보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09 15:38    수정: 2018/08/09 17:1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플랫폼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콘텐츠 검열’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포털 편집을 놓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번 따져봅시다.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거하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그리고 플랫폼 사업자의 권한은 어디까지 미칠까요?

미국 IT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알렉스 존스와 ‘인포워스’ 사건을 통해 이 문제를 한번 따져봅시다.

알렉스 존스와 인포워스는 요 며칠 미국 언론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애플, 페이스북, 유튜브, 스포티파이 같은 미국 주요 기업들이 연이어 차단조치한 때문입니다.

미국 IT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포워스 진행자 알렉스 존스. (사진=씨넷)

■ 애플, 팟캐스트는 삭제…앱스토어 앱은 그냥 놔둬

알렉스 존스는 미국 내에선 극우 성향 방송 진행자로 유명합니다. 직접 운영하는 인포워스를 통해 온갖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게 존스가 제기한 대표적인 음모론입니다. 최근 들어 총기 규제 여론이 고개를 들자 ‘ 샌디훅 고교 총기난사 사건은 조작됐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 방송 때문에 총기난사 피해 학부형들이 온갖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인포워스’를 차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혐오 발언이 유포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가짜 뉴스 때문에 홍역을 겪었던 미국 IT업체들에게 인포워스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방송 차단이 말처럼 쉽진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미국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진=버즈피드)

그런데 애플이 총대를 메고 나섰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아이튠스와 팟캐스트앱에서 인포워스의 팟캐스트 6개 중 5개를 내려버렸습니다. 그러자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페이스북,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도 행동에 나섰습니다.

‘혐오 발언(hate speech)’을 이유로 인포워스 팟캐스트를 제거했던 애플이 8일 또 다른 논란 거리를 던져줬습니다. 앱스토어에선 인포워스 오피셜(Inforwars Official) 앱을 삭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때문입니다.

당연히 궁금증이 제기됩니다. 애플은 왜 아이튠스에 올라온 팟캐스트는 삭제하면서 앱스토어에 있는 앱은 그대로 놔뒀을까요? 팟캐스트 삭제 때 문제 삼았던 ‘혐오발언’이 포함된 방송을 앱에서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데 말입니다.

■ 삭제 행위, 엄밀히 말하면 '물리적 제거'가 아닌 경로 차단

이 질문 속에 IT 기술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번 사건 보도를 주도했던 버즈피드가 그 해답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튠스에서 인포워스 팟캐스트를 삭제했다는 사실과, 앱스토어에선 앱을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는 소식은 모두 버즈피드가 특종 보도했습니다.)

애플 팟캐스트 플랫폼엔 인포워스의 에피소드 리스트가 올라와 있습니다. 애플 입장에선 그 내용을 손쉽게 검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앱은 다릅니다. 인포워스 방송을 스트리밍 서비스하지요. 따라서 애플 플랫폼에 있는 앱 내엔 방송 내용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보는 순간만 나타난 뒤 바로 사라져버립니다. 똑 같은 내용을 인포워스 사이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 서비스의 이런 차이 때문에 애플이 신속하게 팟캐스트를 제거할 수 있었다는 게 버즈피드 분석입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팟캐스트 역시 ‘삭제’한 게 아니란 겁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해당 팟캐스트로 연결되는 링크를 끊은 조치란 설명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앱에는 팟캐스트나 방송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트리밍 하는 순간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차단할 링크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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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피드 표현대로 애플의 이번 조치는 ‘실제로 삭제했다기보다는 겉모양을 살짝 바꾼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들 눈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삭제된 것’이라고 느낄 따름입니다.

물론 링크 차단이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큽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거대 플랫폼에서 검색되지 않는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일각에선 알렉스 존스 콘텐츠 제거에 대해 수정헌법 1조 위반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합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