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논란 뒤에 거대한 쓰나미 몰려온다

[포털 사태 진단...더 무서운 건 독자 변화]

인터넷입력 :2018/05/15 15:01    수정: 2018/05/16 14:5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생각 하나] ‘나는 가수다’에서 ‘복면가왕’으로

‘나는 가수다’가 가요계에 던진 울림은 꽤 컸다. 노래를 업으로 하는 가수들을 가창력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가창력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국민가수 김건모 씨는 예능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참여했다가 호되게 망신을 당했다.

그래도 ’나는 가수다’는 약과다. ‘복면가왕’은 아예 가수란 신분의 장벽 자체를 무너뜨려버렸다. 이론상으론 가수 아닌 사람들에게 가수가 패할 수도 있는 쪽으로 경기 규칙이 바뀌었다.

[장면 하나] 비주류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12년 6월 28일. 전 미국인의 시선이 연방대법원으로 쏠리고 있었다. 미국 의료행정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오바마케어’ 합헌 여부에 대한 판결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9인의 현자’들이 내놓을 판결에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취재 경쟁도 엄청났다. 속보경쟁을 벌이던 CNN과 폭스뉴스는 ‘오바마케어 위헌’이란 오보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전통 강자들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이날의 승자는 일반인들에겐 이름도 생소한 스카터스블로그(SCOTUSBlog)였다. 변호사 두 명과 법조 출입기자 한 명으로 구성된 스타커스블로그는 뛰어난 법률지식과 발 빠른 분석 능력을 앞세워 연방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줬다.

■ 독자들은 '편집된 뉴스'보다 '내가 관심 가질 뉴스'를 더 선호

뉴스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드루킹 댓글 공방이 몸체인 뉴스 서비스까지 뒤흔들어놨다.

여론에 떠밀린 네이버는 ‘모바일 첫 화면 뉴스포기’ 선언을 했다. 카카오도 모바일 다음에서 뉴스를 빼기로 했다. 첫 자리를 차지했던 ‘뉴스’ 탭 대신 ‘추천’ 탭을 전진 배치할 계획이다.

언뜻 보면 여론에 떠밀린 듯한 모양새다. 실제로 그런 측면도 적지 않다. 정치권과 언론이 포털의 뉴스 서비스에 대해 워낙 집중포화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뉴스 이용 행태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움직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털 관계자들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던 작업”이라면서 최근 사태와 곧바로 연결하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보고서)

그렇다면 이용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2016년 로이터연구소 조사 결과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당시 로이터보고서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기자나 편집자들의 가치 판단을 토대로 제시되는 기사(30%) 보다는 ‘내가 이전에 읽은 것들을 토대로 자동 분류해주는 기사’(36%)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았다. 또 친구들이 소비한 것을 토대로 자동 분류해주는 기사(22%)에 대한 선호도도 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 성향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보는 기사를 토대로 자동 분류해주는 기사에 대한 선호도(58%)가 전통적인 편집행위결과물(30%)의 두 배에 육박한 셈이다.

(사진=로이터보고서 2017)

한국의 독특한 뉴스 소비 행태 역시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연구소가 공동으로 발간한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7- 한국’ 편에 따르면 한국은 ’검색 및 뉴스 수집서비스’의 디지털 뉴스 의존도가 7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언론사 홈페이지는 4%로 전 세계 꼴찌였다.

물론 로이터보고서 조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독자들이 어느 쪽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 분석하는 데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진=로이터보고서 2017)

■ 디지털 뉴스 시장 평평하게 만들었던 포털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포털들의 최근 행보를 다시 살펴보자. 네이버나 카카오 모두 사람 편집자가 일괄적으로 편집하는 행위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다. 대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뉴스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포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로이터연구소가 전해주는 이용자들의 새로운 뉴스 소비 행태와 상당히 유사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뉴스 정책 변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3천 만 명이 소수의 뉴스에 관심을 갖는 위험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태만 놓고 보면 이 설명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이 말은 “3천만 명이 똑 같은 뉴스에 관심을 갖는 구조를 계속 유지하는 건 (네이버의 장기 경쟁력 차원에서도) 위험하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여지도 적지 않다.

네이버가 주요 면 편집을 인공지능에 맡긴 이후 “뉴스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됐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IT 섹션은 주요 기업의 실적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부분 역시 외부 환경 변화 때문에 네이버가 당초 목표보다 서둘러 자동 편집 체제로 전환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따라서 포털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디지털 뉴스 지형도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 앞에서 꺼낸 ‘복면가왕’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성숙 대표가 네이버 뉴스 및 댓글 개선 정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그 동안 포털이 중심축을 차지한 디지털 뉴스 시장은 ‘나는 가수다’와 같은 경쟁 문법이 지배했다. 내로라하는 수 많은 가수들(언론사들)이 중립 플랫폼에서 노래 경연을 벌였다.

물론 이 대목에서 판을 깔아준 네이버의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뉴스 시장을 ‘평평한 운동장’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포털이 있기 전엔 몇몇 인기 가수(언론사)들이 노래(뉴스) 소비를 주도했다. 하지만 포털 덕분에 그 동안 무명에 머물렀던 가수(언론사)들도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물론 포털들이 평평한 운동장 관리자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점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 '나는 가수다'에서 '복면가왕'으로

‘나는 가수다’가 가요계에 던진 충격파는 꽤 컸다. 청중들이 가수들의 순위를 매기고, 꼴찌한 가수를 탈락시킨다는 설정 자체가 기존 가요계 문법으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가수 김건모 씨였다. 잘 아는 대로 김 씨는 가창성과 대중적 인기를 겸비한 가수다. 1994년 내놓은 ‘잘못된 만남’은 286만장으로 국내 판매 신기록을 갖고 있다. 2001년 나온 김건모 7집은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100만 장 판매 고지를 넘어선 음반이다.

하지만 김건모 씨는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다가 1회전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당시 김건모 씨는 탈락한 뒤 “단순한 예능 프로로 생각하고 가볍게 임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포털을 중심으로 한 ‘나는 기자다’ 무대가 한국의 내로라하는 메이저 언론사들에게 던진 메시지도 이와 비슷했다. 국내 최고를 자부했던 메이저 언론사들이, (적어도 그들이 보기엔) 듣보잡에 불과한 중소 언론사들과의 의제설정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그 문법마저 흔들리고 있다. ‘복면가왕’ 식 경쟁 문법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다. ‘가수(기자)’란 신분 장벽까지 무너지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선 최고 인기 가수 김건모 씨가 (상대적으로) 무명 가수에게 패배하면서 충격을 안겨줬다. ‘복면가왕’ 경쟁에선 가수가, 노래 비전문가인 다른 영역 경쟁자에게 패배할 수도 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선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뉴스 시장의 현실 속 복면가왕에선 이미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포털의 최근 행보는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카카오가 모바일 다음 첫 화면을 ‘추천’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이용자들은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기사와, 다른 수 많은 콘텐츠 중 좀 더 입맛에 맞는 걸 추천받게 된다.

네이버 모바일 뉴스도 마찬가지다. 아직 모바일 첫 화면을 어떻게 구성할 지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얘기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네이버 역시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물론 포털들이 영향력에 걸맞은 ‘공론의 장’ 역할을 하도록 감시하는 건 중요하다. 그건 언론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MBC TV의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기자들은 앞으로 '나는 가수다'가 아니라 '복면가왕' 무대에서 경쟁을 펼쳐야 할 수도 있다. (사진=MBC)

하지만 최근의 여러 변화는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어쩌면 미래 뉴스 시장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네이버나 다음의 변화가 아니라 독자들의 변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포털 감시와 견제’ 못지 않게 ‘21세기에 뉴스 사업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인 성찰을 할 필요도 있다.

■ 스타커스블로그의 지혜의 저널리즘은 미래 언론사의 또 다른 모형

그 얘길 하기 위해 이번엔 서두에서 소개한 ‘스카터스블로그’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카터스블로그는 미국 연방대법원 전문 사이트다. ‘스카터스’는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S)의 약어다. 대법원 소식만 다루는 ‘작지만 강한 매체’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는 연방대법원 역사상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였다. 오바마케어에 대한 판결에 따라 전국민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도 경쟁에서 스카터스블로그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그 승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변’이라거나 ‘전통언론의 망신’이란 등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집중된 전문지식(focused expertise)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인 미첼 스티븐스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스카터스블로그가 보여준 집중된 전문지식을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이란 말로 표현했다.

(사진=스카터스블로그)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첨예한 쟁점에 대해 탁월한 분석과 해석을 보여줬단 점이다. 스티븐스는 아예 “미래 저널리즘의 경쟁력은 단순 사실보도가 아니라 분석과 해석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스 소비 시장은 갈수록 더 평평해질 가능성이 많다. 그 동안 ‘전통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들은 ‘스카터스블로그’ 같은 수많은 재야 전문가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뉴스의 장점은 24시간 업데이트된다는 점이다. 꼼꼼한 데스킹 과정을 거친 콘텐츠란 점 역시 매력적이다. 반면 포털 입장에선 양에 비해 차별화된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포털 관계자들은 “하루 3만 건에 이르는 뉴스들이 쏟아져들어오지만 정작 차별화된 면 편집을 하려고 하면 풍요속의 빈곤 상황이다”고 털어놓는다.

포털들의 이번 변화는 이런 인식까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뉴스는 특별한 콘텐츠’라고 믿는 언론사 입장에선 ‘뉴스도 여러 콘텐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포털들의 행보가 쉽게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냉정한 현실은 이미 그 곳을 향해 가고 있다.

■ 포털의 변화보다 더 무서운 쓰나미는 독자들의 변화

이런 상황에서 언론들은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할까? ‘그렇고 그런 수많은 뉴스’를 쏟아내던 20세기 언론 문법부터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충실한 전달자’이자 ‘제너럴리스트’였던 기자에 대한 기본 인식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미첼 스티븐스는 지금 상황에서 모두 다 제공하는 뉴스를 생산하는 것은 “공짜로 물을 제공하는 노점상들이 몰려 있는 해변에 또 다른 노점상을 차리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조금 과장된 부분은 있을 지 모르지만, 충분히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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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사건으로 촉발된 포털들의 변화는 디지털 뉴스 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줬다. 하지만 그건 막 시작될 새로운 변화의 신호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포털이 아니라 독자들의 변화란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쓰나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엔 디지털 뉴스 시장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더 무서운 건 바로 그 부분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