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정말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걸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드루킹 공방을 보는 삐딱한 시각

데스크 칼럼입력 :2018/04/26 10:33    수정: 2018/04/26 10: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이쯤되면 도를 넘었다. 정치인들이 사기업인 네이버에 불쑥 찾아가 호통을 친다. 소중한 근무 시간에 핵심 임원들을 불러낸 뒤 범죄자 다루듯 마구 질책한다. 뉴스 서비스와 댓글이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부친다.

최근 며칠 동안 연이어 벌어진 일이다.

물론 포털 뉴스와 댓글 정책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늘 비판적인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댓글이 문제를 일으키니, 아예 폐쇄하잔 얘기까지 나온다. 네이버에 가선 “아웃링크로 전환해라”면서 압박한다.

이런 논리가 얼마나 허점 투성이인지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 굳이 나까지 나서서 입 아프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에선 딱 두 가지만 따져보려고 한다.

해킹에 따른 보안 이슈처럼 댓글 조작도 묘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작 시도에 대한 기술적 대응이 쫓고 쫓기는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 조작만 아니라면 다소간의 악플도 여론 다양성엔 도움될 수도

첫째. 댓글이 정말로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할 정도로 나쁜 것일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방어막을 좀 치자. 드루킹 사태를 비롯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한 댓글 조작은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확하게 조사해서 책임질 사람에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려선 안된다. ‘공론의 공간’을 오염시킨 책임은 결코 적지 않다.

그 전제 위에서 한번 따져보자. 과연 댓글 문제가 온 나라 정치인들이 달려들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일까?

난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적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사 제쳐놓고 한 마디씩 보탤 일은 아니란 의미다.

학자들은 대체로 댓글이 '확증편향'이나 '사회적 쏠림' 현상을 강화하는 정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넛지'로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 교수다.

물론 선스타인 교수는 댓글 연구를 통해 이런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 그는 인터넷 자체가 '확증편향'과 '사회적 쏠림' 현상을 유발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뭉치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단 얘기다.

국내 연구 중에선 지난 2016년 박남기 연세대 교수가 석사과정 졸업생인 정지은 씨와 공동 발표한 '뉴스 댓글에 대한 편향 지각이 이슈에 대한 여론지각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이 눈에 띈다.

이 논문 저자들은 댓글을 읽는 행위가 거울반사지각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분석했다. 거울반사지각이란 "다른 사람도 나와 유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선스타인 교수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의견을 담은 댓글에 노출할 경우 댓글의 논조를 적대적이기보다는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 얘기하자면, 다양한 의견을 접할 경우 거울반사지각을 완화해주는 효과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연구 결과는 댓글을 읽는 행위가 여론을 잘못 지각할 가능성을 오히려 줄여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 댓글이 아니라 악용하는 세력이 절대악이다

둘째. 그렇다면 현재 불거진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첫번째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한번 따져보자. 포털이 여론의 중심지가 된 이래 '댓글 문제'는 늘 논란거리였다. '선플 운동'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앞에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욕설'이 가미돼 있을 지라도, 여러 댓글을 접하는 것이 오히려 건전한 여론 형성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논리를 토대로 드루킹 사태를 한번 살펴보자.

조금은 뻔한 얘기지만 드루킹은 프로그램을 동원해 특정 의견을 인위적으로 대량 생성한 것이 문제가 됐다. 댓글창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댓글창을 악용한 나쁜 세력이 문제란 얘기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를 찾아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네이버를 검찰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런 기초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댓글 자체가 절대악이라고 규정해버리는 건, 사안의 본질과 현상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댓글을 없애버리라고 하는 건 좋게 보면 '제3자효과'에 매몰된 것이고, 나쁘게 보면 정략적 주장이란 혐의를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참고로 '제3자효과'란 "나는 괜찮은데, 남들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현상을 의미한다.)

연이틀 네이버를 방문한 정치인들이나, 댓글이 만악의 근원이나 되는 듯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언론들 역시 이 부분을 좀 더 찬찬하게 따져봤으면 좋겠다.

댓글이 나쁘니 댓글을 없애자는 단편적인 주장을 할 게 아니라, 그나마 몇 안 되는 소통 창구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 것이냐는 고민을 좀 더 깊이 할 필요가 있단 얘기다.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태를 정말로 걱정한다면, 오히려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과격한 주장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포털과 관련 기관들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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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드루킹 사태 역시 네이버가 수사 의뢰를 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향후 대책 역시 그런 측면에서 서비스 사업자와 관련 전문가들이 힘을 합할 필요가 있다. 쓸데 없이 목청만 높일 게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깊이 있게 논의하고 협력할 때다.

그게 21세기 소통 시대의 진정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