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아 수백억 원 대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여러 ‘슈퍼개미’가 25일 기소됐다고 한다. 이를 도운 증권사 직원들도 같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자주 봐온 뉴스여서 심드렁하게 지나갈 수 있는데 이날 유독 눈길을 끈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를 시사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가 조작과 관련해 누가 이런 주장한다고 치자. “이참에 주식시장을 폐쇄합시다.”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주가조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피해를 없애려면 시장을 폐쇄하는 수밖에 없지요.” 여론조사를 해보지 않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이 주장에 대해 한심한 소리라고 생각할 게다. 그런데 지금 드루킹 댓글과 관련해서는 이처럼 한심한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극단은 이참에 아예 댓글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한 언론사가 우리처럼 자체 포털 서비스를 갖고 있어 그나마 구글에 점령당하지 않는 나라의 댓글 상황을 조사해보니 아예 없앤 곳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뿐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 외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자체 포털이 사실상 없다. 그래서 철저히 구글에 종속돼 있으며 온갖 정보를 구글 DB에 상납한다.
댓글에 부작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선플 운동을 시작한 지도 이미 십 수 년이다. 그렇더라도 강제로 폐지하자고까지 주장하는 건 넌센스다. 댓글 기능을 넣을지 말지는 서비스 사업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순리다. 쌍방향 소통을 중히 여기면 그 기능을 넣을 것이고, 그걸 관리할 능력이 없거나 이것저것 다 귀찮아 일방향 소통만 하겠다면 없앨 수도 있을 거다.
주식시장에 문제가 적지 않지만 주식을 상장하든 말든 그건 기업이 알아서 판단하듯 이 또한 기업의 전략일 뿐이다.
그 다음 많은 주장은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실명제를 도입하면 댓글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에 따른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주식을 실명으로 거래해도 주가를 조작하는 범죄자들이 있는 것처럼 댓글 또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실명제는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를 도입하려면 헌법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 최근에 눈 빤히 뜨고 지켜봤든 헌법 바꾸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실명제 도입을 위해 개헌을 하려면 개악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는 쪽으로 헌법을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과연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게 그런 것일까. 그래서 스스로를 권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빅브라더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실명제 주장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웃링크 제도화 주장도 난무한다. 하지만 이 또한 시장주의를 거스르는 주장이다. 아웃링크를 할지 인링크를 할지는 사업자 선택사항일 뿐이다. 콘텐츠를 주고받는 두 사업자의 쌍방간 계약사항일 뿐인 것이다. 일방적으로 제도화할 사안이 아니다. 뉴스로 제한해 논할 경우 언론사는 원하면 얼마든지 아웃링크를 할 수 있다. 그게 구글 방식이다. 검색 제휴만 한다면 지금 그렇게 할 수도 있다.
대신 돈은 포기해야 한다. 국내 포털은 초기부터 부족한 웹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구글과 달리 인링크 방식을 도입했다. 포털 DB로 뉴스를 가져와 쓰는 대신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료는 정기적으로 재협상한다. 언론사는 이 방식이 싫으면 돈을 포기하고 검색 제휴만 하면 된다. 그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언론사가 선택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리 하지 않고 비판만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드루킹 사건을 기화로 댓글 대책이라며 제기되는 이 3대 주장은 하나같이 설득력이 약하다. 억지에 가깝다. 지난 십수년 간 주로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앵무새처럼 되풀이 되고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한 주장들지만 지금까지 채택되지 않은 것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허점이 많은 논리기 때문이다. 팩트와 합리 그리고 상식에 기반한 주장이라기보다는 이권과 당리당략에 따른 어거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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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줄이기 위한 진정한 토론이 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해 보인다. 첫째, 네티즌 언로가 충분히 보장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둘째, 기술을 악용한 범죄자들에 맞서기 위해 대응 기술과 수사력을 높이는 고민이어야 한다. 셋째, 문화적인 수준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셋 다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그게 위의 극단적인 세 선택보다는 미래지향적이다.
그리고 정치인 덕에 꼼수를 알아채는 데 도사가 되어가고 있는 네티즌, 그러니까 보통사람을 믿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