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뉴스 편집은 망했다

[이균성 칼럼] 香이 사라졌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8/05/04 10:33    수정: 2018/11/16 11:22

향(香)은 존재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표상 가운데 하나다. 향은 특히 살아 있는 존재한테서 빛을 발한다. 향은 살아 있는 존재들한테 무언(無言)의 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향이 없다면 아마 사랑도 증오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무감(無感)해질 것이고, 무감하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과 진배없다. 특히 인간에게 그렇다. 향수 산업의 지속적인 호황은 이를 파고든 상술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라고 했다. 겉이 비슷하다고 속도 같은 건 아니다. 짝퉁과 진품이 같을 리 없다. 추사 김정희가 서예의 도로 기(技)를 멀리하고 향(香)과 기(氣)를 높이 여겼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추사가 말한 향기(香氣)를 몰라도, 지난 10년간 온갖 짝퉁이 범람했지만 아이폰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것을 보면, 향기에 대한 추구는 어쩜 인간의 여러 본성 가운데 하나일 지도 모른다.

향기는 그래서 인간이 창작한 모든 것에 숨어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심지어 상품에도. 같은 차원에서 뉴스에도 향기는 있다. 때론 그 향기가 지나쳐 독선적으로 흐리기도 하지만 향기가 빠진 뉴스는 맥아리가 없다. 단순 팩트를 전달하는 뉴스에도 그것을 취재하고 전하려는 자의 추상같은 고뇌가 서려 있어야 한다. 그 추상같은 고뇌야말로 추사가 문자향서권기라고 부르는 실체다.

안타깝게도 지난 3일 네이버가 자사 뉴스 서비스에서 이 향기를 지워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네이버 뉴스에는 생명을 잃은 죽은 팩트들만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글쎄다. 인공지능(AI)이라는 인간 아닌 것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세상이 됐다 하니 언젠가는 이 또한 받아들여야겠지. AI가 뉴스를 편집한다고 해서 불법은 아닐 테고, 기계의 그 무감함이 어쩌면 독향(毒香)을 지닌 인간보다 낫겠지.

네이버가 제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과 사익 앞에 청맹과니가 된 언론인들의 등쌀에 몹시 시달려온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면피의 수단으로 서둘러 AI 편집을 전면화한 걸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유는 간명하다. 아직 AI가 인간의 향기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향기를 도려내는 행위는 뉴스 제작자에 대한 큰 모독이다. 그건 독자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향기는 정성적인 것이다. 방향제를 선택하고 내뿜게 하는 AI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은 가끔 접하고 있지만 아직 AI가 뉴스의 향기까지 맡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정량적인 곳에 AI를 적용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클릭수를 체크한다거나, 독자의 공감 수량을 모니터하거나, 한 뉴스에 어떤 단어가 몇 개 들어가 있는 지 등을 알아내는 데는 AI가 인간보다 뛰어날 거다.

딱 거기까지여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추상같은 고뇌까지 건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불완전한 것이 인간이지만, 그래서 향기가 있는 거고, 추상같은 고뇌가 필요한 것이다. 완벽한 AI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불완전하고 그러므로 많은 갈등을 낳지만, 끝내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향기에 관한 것이 그런 것 중 하나다. 네이버는 지금까지 그 일을 잘해 왔었다.

네이버 뉴스가 온갖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언론 역사에 세 가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봐야 한다. 첫째 향기보다 권력에 취한 기득권 언론의 영향력을 상당히 해체시킨 것이다. 뉴스를 모아 향기 경연을 하게 함으로써 군소 언론에도 매력적인 향이 있다는 팩트를 독자들이 알게 해준 것이다. 둘째 뉴스 수용자인 독자에게 매개 기사에 대한 향(香)을 품평케 해 언론 권력을 견제케 한 것이다.

셋째 족적이 가장 크다. 향기는 소수 지식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뉴스를 접하는 독자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도록 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지지난해 겨울 촛불이 되었고, 권력자와 몇몇 언론의 위선을 까발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을 한반도 평화의 바람의 기반이 되고 있다. 다른 단점을 다 메울 만큼 큰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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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면적으로 바뀐 기계 편집을 보면서 우려스러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계는 출고되는 기사 숫자를 먼저 체크할 것이고, 그걸 이슈로 정할 것이며, 이슈가 정해지면 그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짝퉁 기사들이 난무할 것이다. 뉴스 시장은 발주자 중심의 짝퉁 기사들로 넘쳐날 것이다. 인간의 추상같는 고뇌와 향기는 구닥다리 유물이 될 것이고, 기계가 짠 죽은 팩트가 쓰레기처럼 널릴 것이다.

하긴, 향기는 늘 가난하고 외로운 것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