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암호화폐의 미래

[이균성 칼럼] 공부부터 제대로 하자

데스크 칼럼입력 :2018/01/31 17:30    수정: 2018/11/16 11:23

인간이 무엇인가의 실체를 정확하게 안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유전자처럼 초미세한 것이든, 우주처럼 광대무변한 것이든, 공룡이 날던 까마득한 옛날이든, 로봇이 활보할 먼 미래든, 심지어는 매일 같이 살고 있는 짝꿍의 마음이든......인간의 인지 능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를 모르는 인간일수록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아는 게 많은 인간일수록 모르는 게 천지에 널려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 옛 사람들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을 자주 썼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사회적 소양이 풍부하면 바람에 쉽게 휩쓸릴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국내 정치 지형에까지 영향을 미칠 초대형 화두로 떠오른 암호화폐에 대한 생각을 같이 해보자는 뜻에서 다소 철학적인 말로 글을 시작했다. 정권을 위기로 내몰 정도로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많은 논쟁을 지켜보면서 모두 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를 먼저 밝히자면, 암호화폐란 신기술 혹은 새로운 철학의 장단점을 차분히 살펴보자는 쪽이다.

비트코인

기술 이슈인 암호화폐가 정치 이슈로까지 비화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돈(혹은 욕망)과 관련돼 있고, 둘째 우리 정치 사회 풍토가 그만큼 천박하기 때문이며, 셋째 암호화폐 자체가 갖는 혁명적 철학 때문이다. 세 요소 다 바짝 마른 불쏘시개와 같은 것들이어서 조금만 마찰을 일으켜도 큰 불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 그렇게 불이 났고 이제 그 불을 어떻게 관리할 지가 숙제로 남았다.

그 불이 세상을 삼키는 화마(火魔)가 될지 새로운 경제를 싹틔우는 온풍기가 될지 여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 정부 당국과 투자자는 물론이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기업 그리고 선행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엉뚱하게 뒷다리를 잡는 법제도를 잘 정비해야 하는 국회 등 각 섹터마다 자기 몫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어느 한 쪽에 책임을 물어서 될 게 결코 아니다.

암호화폐를 ‘혁명적 악동’으로 비유하면 어떨까 한다. 세상을 혁신하는 근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과학기술이라고 했을 때 이 ‘혁명적 악동’은 촘촘하게 네트워킹 되는 세계에서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태어났는데 그 기질이 혁명적이고 매우 반항적이다. 최첨단 기술 기반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상당기간 대세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고 혁명적이고 반항적이라는 점에서 소란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암호화폐 정책과 관련해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했다고 보는 까닭은 이 악동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먼저 주홍글씨를 찍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럴만하긴 하다. 대부분의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다. 하지만 이 악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반정부적이다. 국가 권력이 발행을 독점하는 화폐제도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대체할 수단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탄생 배경이 반정부적이로되 쉽사리 소탕할 수 없을뿐더러 어쩌면 대세가 될 가능성까지 갖고 있다는데 있다. 이에 대해 각 주체마다 생각과 전망이 다르므로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너무 섣불리 판단한 듯하다. 반항적이긴 하지만 그 장래성을 깊이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면서 범죄자 취급부터 하고 말았다. 인체를 탐구하지도 않고 신생아에 메스부터 들이댄 꼴이다.

정부를 돌팔이 의사로 만든 데는 투자자도 한몫 했다.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게 뭔지도 모른 채 돈을 갖다 들이부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전문가들조차 감당할 수 없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에 대한 최근 투자 열풍에 대해 ‘욕망이 부른 광풍’이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합리적인 규제’를 해달라고 사정하고 다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투자는 개인의 몫이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투자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 없이 요행을 바라는 건 투기다. 투기가 만연하면 그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기에 사회 문제가 된다. 지금 일부 투자자에게 암호화폐는 경제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무식한 선의’에 강렬하게 반발하는 태도는 목숨을 걸고 종교 전쟁에 나선 ‘신의 전사’처럼 보인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사업 기회로 삼는 기업들은 본질적 의미의 비즈니스보다 돈벌이에만 탐닉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소중한 까닭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킹 세상을 한 단계 진화시킬 기술과 철학이라는 점에 있다. 이른바 분산원장 원리를 통해 인터넷 거래의 신뢰 문제를 진일보시킨 게 핵심이다. 거래의 신뢰를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첫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기반 인프라이자 기술로서 블록체인이 갖는 그런 강점을 현실로 입증하기 위해 나온 첫 활용 사례이면서 이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관련 기업가들은 이를 소중히 다뤘어야 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혁신할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 개발에 진력하는 게 그 길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어렵고 힘든 그 창조적인 길보다 손쉬운 거래소 사업에만 주력하였다.

세계적으로 이미 1300여개의 암호화폐가 유통되고 있다고 하는데, 지난 10여 년 동안 암호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모은 기업들 가운데 블록체인을 활용해 유의미한 서비스와 상품을 개발하고 성공했다는 소식은,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모범적인 블록체인 서비스는 굳이 암호화폐를 발행하지 않고도 블록체인 철학을 구현한 프라이빗(폐쇄형) 블록체인 서비스일 뿐이다.

일부 기업가들은 성공한 서비스 모델이 나오려면 좀 더 기술이 발전해야 하고 시간도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이미 10여연 동안 세계적으로 수백조원이 퍼블릭(개방형)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투입된 셈인데 그 많은 돈으로 아직 눈에 띌 만한 사례 하나가 없다면 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할까. 기업가들은 이 물음에 대답을 해야만 한다.

관련기사

장담할 수 없지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논하는 정치인 가운데 이를 1주일 이상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공부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지 않을까 한다. 그들은 지금 입으로 거들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입은 정부처럼 ‘무식한 선의’마저 기대하기 힘들다. 오로지 정략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불난 집에 가 부채질하는 건 ‘밀양’에서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키워드일 수 있는 암호화폐가 지금 화마(火魔)처럼 세상을 할퀴는 존재로 부각되는 까닭은 이처럼 정부, 투자자, 기업, 정치인 등 각 주체가 너무 섣불렀다는 데 있다. 이를 잘 관리하려면 무엇보다 각 주체 간에 진정성 있게 토론하고 깊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잘 모르는 상태로 각각의 목소리만 키운다면 4차 산업혁명의 총아가 화마로 변해 민생만 할퀴고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