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을 위해 규제 혁파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달라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에따라 혁신성장의 도구이자 핵심인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 12개를 골라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⑥소비자 원하는 원격의료, 왜 반대만 하나
안경을 오프라인 매장의 5분의 1가격으로 온라인 판매하는 미국 스타트업 와비파커. 와비파커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기준 12조원을 넘겼다. 그러나 국내선 의료기사법의 대면판매 원칙이 위배돼 이런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없다. 안경사들과 의사들이 '환자를 직접 돌봐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마존은 온라인 약국 필팩을 인수했다.
필팩은 환자가 약국에 가지 않고 복용할 수 있도록 1회 복용량을 개별로 포장해 배송하는 맞춤형 온라인 약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지만, 비대면진료와 처방이 불법이라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라도 꼭 병원에 가서 의사와 만나야 하고, 약국에 가서 직접 처방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규제혁신대토론회 등을 열며 바이오헬스나 의료기기 분야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고 나섰다. 또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헬스케어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원격의료나 의료기기 사업 육성에도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문가나 업계 의견청취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료기사법을 다루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규제혁파 추진 방안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연구용역과 업계 의견수렴 후 돋보기 안경의 온라인 판매 허용 범위를 결정하고 9월부터 통신판매를 허용해야 했다.
■ 도수 없는 칼라렌즈도 불법…직구로 내몰린 소비자
정부는 2011년 청소년층의 무분별한 콘텍트렌즈 구입이 우려된다며 렌즈의 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를 금지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수 없는 칼라렌즈도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없다. 오프라인 안경점보다 저렴하다고 해도 구매대행으로 렌즈나 안경을 사는 것도 불법이다. 소비자들은 대행구매 업체를 통하지 않고 해외사이트에서 직접 상품을 구매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말 정부는 국민생활 밀접 분야에서 신규진입제한이나 사업활동 제약 등으로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중소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경쟁제한 규제혁파 추진방안을 확정 발표하면서, 돋보기 안경 통신판매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무조정실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시력보정용 안경에 대해선 그동안 일률적으로 통신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나, 양안 도수가 같은 일정도수 이하(저도수)인 경우 통신판매를 8월부터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돋보기안경 시장에서 온오프라인간 경쟁체제가 도입돼 소비자들이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을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어 소비자 편익이 증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외국사례를 고려했을 때도, 5~30% 정도 해당 상품 가격 하락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돋보기를 인터넷이나 편의점에서도 판매한다.
정부는 당초 6월 내 연구용역과 의견수렴을 통해 허용범위를 취종 결정한다고 했으나, 아직 이렇다할 소식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저도수 돋보기 안경의 통신판매 허용과 관련해서는 현재 연구용역을 진행중"이라며 "9월 말쯤 나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안건에 대한 연구용역은 대한안과학회에서 진행중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안과학회를 선정했다"며 "학회에서 렌즈나 안경의 온라인 판매 안정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비대면진료는 깜깜무소식…원격의료 언제부터 가능해지나
앞서 언급했던 미국 스타트업 필팩은 처방전에 나와있는 복용량에 따라 1회 복용량을 포장해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필팩은 미국 50개주에서 약유통이 가능한 면허를 보유하고 있어 만성질환 환자를 위한 약뿐만 아니라 비타민, 연고 등도 배달해준다.
환자가 처방전과 보험 정보, 가장 최근에 방문한 약국 등에 관한 정보를 가입시 입력하면 된다. 처방전 유효기간이 끝나면 필팩이 담당 의사에게 요구해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본인이 아닌 가족이나 간병인도 추가로 등록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전화상담으로 비대면 관리만 할 수 있으며, 비대면진료가 불법이다. 약사법상 온라인 약 유통도 불가능하다.
만성질환 환자의 관리와 편의성을 위해 비대면 진료나 비대면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나왔지만, 대면진료-판매 원칙이 훼손되고 큰 범위에서 봤을 때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 수순을 밟을 수 있어 의료계의 반발이 심해 관련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시작되면 대형병원에 환자가 쏠릴 것이라는 지방 군소병원들의 반대도 있다.
최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원격의료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원격진료 방향 자체를 반대할 건 아니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이나 중증장애인에 한해 원격의료로 1차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 대형병원에 환자가 쏠리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원격의료와 연결돼 있는 비대면 처방과 관련해서는 논의가 진행된 적 없다"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헬스케어특위 관계자 또한 "현재 다루고 있는 분야는 6대 프로젝트 외엔 없다"며 "원격의료에 대한 규제 논의는 포함돼있지 않다"고 했다. 헬스케어특위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는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 구축 ▲인공지능 활용 신약개발 ▲스마트 임상시험센터 구축 ▲스마트 융복합 헬스케어기기 개발 및 제도개선 ▲체외진단기기 시장진입 촉진 ▲헬스케어 산업 생태계 조성 등이다.
한 신경외과전문의는 "의사협회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고 있지만, 원격의료는 시대 흐름이라 거를 수 없다"며 "이를 통해 생명을 구하고 국민 건강에 이바지 한다면, 이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문의는 원격의료가 제대로 실행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진통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만성질환 환자의 불편함과 비대면 처방 등으로 진료비를 줄이기 위해서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국민 의료비 지출 절반 가까이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고 있는만큼 비대면 진료를 얼마나 이해하고 활용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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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환자의 의학적 지식을 포함한 지적능력과 의사의 자질에 따라서 원격진료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 "대면 진료로 환자들이 모르는 질병들도 의사가 알아챌 수 있고, 더욱 더 꼼꼼히 환자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규제혁신을 통해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도 약 처방을 위해 환자나 보호자가 1초라도 의사를 꼭 만나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며 "이해관계자의 첨예한 대립으로 유통업계나 스타트업업계에서의 혁신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환자와 소비자도 불편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