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금융혁신? 실탄 동난 인터넷은행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③] 은산분리

금융입력 :2018/07/23 13:43    수정: 2018/07/23 14:48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을 위해 규제 혁파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달라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에따라 혁신성장의 도구이자 핵심인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 12개를 골라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③말로만 금융혁신? 실탄 동난 인터넷은행...은산분리 완화

'금융의 메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초기에 반짝했을 뿐 갈수록 영업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 은산분리 제도 탓이 크다. 이 규제 때문에 자본 확충이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아, 새롭고 혁신적인 사업 모색은 물론 안정적인 고객 서비스마저 쉽지 않은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정부 역시 기존 은산분리 제도가 인터넷전문은행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는 쪽이다. 58년 된 이 제도가 일부라도 완화할 지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때문에 과감한 투자 어렵다"

은산분리 제도의 핵심 내용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의결권 지분 소유 제한이다. 비금융주력자는 은행 의결권 지분을 4%까지만 소유할 수 있으며, 지방은행의 경우에는 15%까지 보유할 수 있다.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을 경우 지분을 10%까지 가질 수 있다.

현재 두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에도 핵심주주인 카카오와 KT가 비금융주력자이기 때문에 의결권 주식 4%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자본금 확충에 애를 먹고 있다. 두 핵심주주가 사업에 필요한 자본을 더 투자하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은행의 경우 ICT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은행권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핵심 전략이지만 이 법에 발목이 묶인 것이다. 카카오와 KT가 의미 있는 자본 투자를 해야 하지만 현행법으론 할 수가 없는 탓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김우진 연구위원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감독당국은 설립 초기단계인 인터전문은행이 본래의 설립목표를 달성하고 경영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시켜 줄 필요가 있다"며 "자기자본 부족으로 대출 자산 확대에 애로가 발생하는 등 지속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증자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케이뱅크의 심성훈 은행장은 "인터넷은행의 성장을 위해 ICT기반의 혁신적 융합 서비스 개발은 물론 시장의 판을 흔들 수 있는 과감한 의사 결정과 증자가 필요하다"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주주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심 은행장은 "특례법 제정을 통해 인터넷은행이 국내 금융 혁신은 물론 4차 산업 혁명의 촉매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요청했다.

카카오뱅크의 윤호영 공동대표 역시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하고 있는 ICT기업들의 낮은 보유 지분 때문에 지난 1년간 보여준 혁신적인 성과가 단지 한 차례 실험으로 끝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는 게 현장의 판단"이라며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소유 지분 완화 논의가 장기화될 경우 핵심 인재들의 유출 및 동기 저하로 혁신의 원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 대표는 "ICT 기업에 대한 인터넷전문은행 소유 지분 완화는 '은산분리' 대원칙의 훼손이 아닌 혁신 기업을 통해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금융시장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이뤄나갈 수 있는 기회의 시작이자 우리나라 금융에 산적한 과제를 풀어나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국회 토론회에서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뉴스1)

■ 특례법 발의된 상태…시민단체 반발 '큰 산'

이런 분위기에 맞춰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일부 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의결권 지분 소유 제한을 풀어주자는 특례법이 발의된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비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IT기술력이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에 입법적 보완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대신 소유 지분을 늘려주지만 그 은행은 대주주에게 신용공여를 할 수 없으며, 대주주의 지분 증권도 취득할 수 없게하겠다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재호 의원과 바른미래당의 김관영 의원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비금융주력자가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을 34%이내까지 보유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바른미래당의 유의동 의원은 비금융주력자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50%이내에서 주식을 보유할 수 있도록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그 은행의 대주주에게 할 수 있는 '은행법'상 신용공여의 한도를 자기자본의 10% 범위 이내로 축소하는 등의 법안을 내놨다.

특례법이 발의됐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 참여연대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 측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가 초래할 잠재적 위험을 모두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참여연대 측은 "은산분리 규제는 금융의 공공성과 건전성 확보, 재벌 및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대원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산분리 제도의 출발이 대기업의 은행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이를 인터넷전문은행에게만 풀어주는 것은 제도 취지를 뒤집는다는 논리다.

금융당국이 은행업 인가 당시 심사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조대형 금융검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은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은행업 인가 심사 기준의 중요 사항의 하나인 은행업 경영및 사업계획에 소요되는 자금조달이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 심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를 지적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조 입법조사관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법적 불확실성 해소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도 건전성 감독 및 금융소비자 보호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인터넷전문은행 천국 일본, 은산분리 규제 풀어

핀테크와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면서 해외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유도하거나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본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의 업력이 평균 3.5년 정도가 됐으며, 흑자 전환의 성과도 일궜다. 현재 일본에는 재팬넷은행, 세븐은행, 다이와넥스트은행, 수미신SBI넷은행, 라쿠텐은행 등이 영업 중이다. 최근에는 IT기업인 GMO가 블록체인 기반의 인터넷전문은행 'GMO아오조라넷은행'을 출범하는 등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일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일본은 2000년 비금융기업 등 타 분야의 은행업 진출 시 면허 심사 및 감독지침을 담은 은행법을 발표했다. 철저한 심사 규정아래 비금융기업이 '새로운 형태의 은행'을 설립하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이 규정에는 ▲은행 경영의 독립성 확보 ▲모회사 사업 리스크 차단 ▲개인정보보호 장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일본 6개 인터넷전문은행 중 4개의 대주주는 산업자본으로 경영권을 행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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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 제한이 없으며 적격성 여부만 심사한다. 유럽공동체(EC) 제2차 은행업 지침(the EC Second Banking Directive)에 따라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 건전성 차원의 적격성 심사로 부적격자 진입을 방지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특정 국가에서 은행업 인가를 받으면 다른 유럽연합 내 다른 국가에서 은행업도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들은 "사전 규제가 아닌 사후 감독과 관리 강화 방안으로 가고 있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ICT기업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외 사례를 참고해달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