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점차 마케팅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요금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통신비 인하와 투자 여력 확보를 위해 과거와 같이 단말에 보조금을 퍼붓는 마케팅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 같은 이통사의 마케팅 기조가 이어진다면 고가요금제에 많은 보조금 주고 최신형 단말로 소비자를 가입시키는 형태에서 벗어나 점차 자급제 기반으로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최근 이동통신 3사가 내놓은 새 요금제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선택약정할인 기반 ▲저가요금제 데이터 용량 확대 ▲가족결합 할인 확대 ▲데이터 공유 ▲속도제한 없는 무제한 요금제 등 크게 다섯 가지다.
■ 저가요금제 용량 확대
최근 요금제 개편에 나선 이통 3사의 가장 큰 변화는 정부가 추진하는 보편요금제 취지를 반영해 저가요금제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들은 가장 저렴한 3만2천890원 요금제 구간에서 동일하게 300MB의 데이터를 제공했다.
지난 5월 KT가 월 3만3천원에 기존 제공 데이터 용량에 약 3배인 1GB를 제공하는 LTE베이직 요금제를 출시한 데 이어, SK텔레콤은 19일 동일한 금액에 데이터 1.2GB를 제공하는 T플랜 스몰 요금제를 내놨다. 선택약정 할인 시 양사 모두 2만4천750원이다.
다만, LG유플러스가 아직까지 저가 구간의 요금제를 내놓지 않고 있어 향후 SK텔레콤, KT와 어떤 차별화 된 요금제를 내놓을지는 관심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보편요금제 압박에 KT와 SK텔레콤이 순차적으로 저가요금제의 데이터 확대에 나섰으나 향후 지속적으로 저가요금 경쟁에 나설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에 대해,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KT와 SK텔레콤의 요금 개편에 대해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하면서도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추진하지 않았을 때도 사업자들이 이러한 요금제를 내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 보고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가에 대해서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선택약정 대세로
요금 개편에 나선 이통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선택약정을 대세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요금제를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내용이 ‘선택약정 선택 시 얼마’라는 문구다.
정부가 선택약정 할인의 폭을 20%에서 25%로 확대할 때까지만 해도 이통 3사는 매출 감소와 경영 간섭이라며 반발했지만 이제는 선택약정 할인 혜택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분위기다.
이통사들이 이처럼 선택약정 할인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마케팅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통신비 인하 요구를 받고 있는데다 5G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어 과거와 같이 보조금을 투입해 가입자 확보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런 상태다. 또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앞장서서 보조금 경쟁을 지양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전투구식 경쟁도 자취를 감춘 상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와 5G 투자 등으로 인해 마케팅비에 대한 여력도 없고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때문에 제조사가 플래그십 단말을 내놓는다 해도 이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도 예년처럼 진행하기는 어렵고 점차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가족 결합 혜택 확대
그동안 이통사들이 가입자 해지를 방어할 목적으로 확대해왔던 가족 결합도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이 역시 마케팅비를 줄이는 대신 효율적으로 가입자를 모집하면서 이탈을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통 3사가 내놓은 요금제도 이 같은 경향이 뚜렷하다. 가족 결합 할인 혜택을 늘리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가요금제를 사용하는 가족 구성원이 나머지 가족에게 데이터를 나눠주고 더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LG유플러스는 4인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월 8만8천원의 ‘속도, 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하면 나머지 3명에서 월 13GB, 연간 156GB의 데이터를 나눠줄 수 있도록 했다. SK텔레콤은 가족 중에 월 7만9천원의 ‘패밀리’나 월 10만원의 ‘인피니티’에 가입할 경우 각각 매월 20GB, 40GB의 데이터를 나머지 가족 구성원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보조금으로 고가요금제로 유도하는 방식에서 기존 요금제에서 데이터 제공 용량을 크게 늘려 가족 전체 구성원의 요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통사들이 선택약정 할인에 이 같은 가족 결합 상품을 확대하면서 번호이동 수치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단통법 시행 이전 연간 700만건이었던 번호이동 수치는 연 500만건 수준으로 감소했으며 지난달에는 월 45만건을 기록했다.
다만, 이통사들이 데이터 제공 용량을 크게 늘리면서 5G 투자를 앞두고 4G망의 안정성을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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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외산폰이나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국내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선택약정이 자리 잡고 가족 결합 형태로 통신비 인하에 나서는 가입자들이 늘어나면 이 같은 기조가 바뀔 수 있다”며 “최근 20만원대에 출시된 샤오미의 홍미노트5 같은 단말이 인기를 끌 수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과거에는 최신 단말로 소비자들의 요금제를 상향시키는 전략을 펴왔다”며 “하지만 점차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